금융당국이 다음 달 주요 은행을 대상으로 대규모 스트레스 테스트에 착수한다. 최근 중동 지역 긴장 고조로 유가와 환율이 급등하는 등 거시경제 불확실성이 확대되자, 은행권의 위기 대응 능력을 선제적으로 점검하겠다는 취지다.
31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4월 중 8개 금융지주와 20개 은행을 대상으로 건전성 점검에 나선다. 이번 점검은 향후 도입이 검토 중인 '스트레스 완충자본 제도'를 염두에 둔 사전 평가 성격을 띠고 있다.
금융권에서는 중동발 지정학적 리스크가 금융시장 전반의 변동성을 키운 것으로 보고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유가와 환율, 금리, 성장률 전망이 동시에 흔들리며 시장 불안이 확대됐다"며 "당국이 조기 점검을 통해 취약 은행의 자본 건전성을 미리 보완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통상 연 1회 진행되던 스트레스 테스트는 올해 일정이 앞당겨졌다. 당초 지난해 점검 지연 여파로 올해 시행 시점도 늦춰질 예정이었으나, 최근 대외 리스크가 급격히 커지면서 계획이 변경됐다. 점검 기간 역시 기존 4~5개월에서 단축해 5월 내 마무리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거시경제 환경도 빠르게 악화하는 모습이다. 국제유가는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기준 연초 배럴당 50달러 수준에서 최근 100달러를 넘어섰고, 원·달러 환율 역시 1500원을 돌파했다. 에너지 가격 상승은 기업 비용 증가와 소비 위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 경기 하방 압력을 키우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물가 상승 압력이 확대되면서 고금리 환경이 장기화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이러한 상황을 반영해 한국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2.1%에서 1.7%로 하향 조정했다. 이는 가계와 기업의 상환 능력 약화로 이어져 금융권 건전성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금감원은 이번 테스트에서 유가, 금리, 환율, 주가, 성장률 등 주요 거시 변수를 종합적으로 반영할 계획이다. 한국은행과 협력해 복수의 충격 시나리오를 설정하고, 각 은행의 대출 자산 구조와 연체율, 부도율, 자산 포트폴리오 변화를 점검한다. 특히 충당금 증가와 위험가중자산 확대에 따른 자본비율 하락 폭을 중점적으로 들여다볼 예정이다.
핵심은 위기 상황에서도 은행의 자본비율이 규제 수준을 유지할 수 있는지 여부다. 평가 결과가 기준에 미달할 경우, 당국은 선제적인 자본 확충을 유도할 방침이다.
이번 점검은 금융위원회가 도입을 검토 중인 스트레스 완충자본 제도의 사전 준비 단계이기도 하다. 해당 제도는 스트레스 테스트 결과에 따라 추가 자본 적립을 요구하는 것이 골자다. 보통주자본비율이 일정 수준 이하로 하락할 경우, 기존 규제 기준 8%에 더해 최대 2.5%포인트의 추가 자본 규제가 부과될 수 있다.
금융위는 당초 2024년 제도 도입을 추진했으나, 정치·경제적 불확실성 확대를 고려해 시행을 여러 차례 연기한 바 있다. 이번 점검을 통해 은행권의 자본 부담 규모를 사전에 가늠하려는 의도도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금융권 일각에서는 제도 도입 시 자본 확충 부담이 커지면서 배당 여력이 줄어들고, 기업 대출 공급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폴리뉴스 김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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