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장기 계획에 명시하고도 논란 일자 뒷수습 급급한 보건복지부
가격 인상 효과는 단 4개월뿐…비가격 정책과 병행해야 목표 달성
(서울=연합뉴스) 서한기 기자 = 최근 우리 사회를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 1만원 담뱃값 인상 소동은 단순한 해프닝 이상의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보건복지부가 뒤늦게 당장 인상할 계획이 없다며 진화에 나섰지만, 이는 정부가 스스로 세운 장기 계획과 현실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며 빚어낸 소통의 실패에 가깝다.
서민들의 고단함을 달래주는 담배 한 개비의 무게를 두고 벌어진 이번 논란은 역설적으로 우리 사회가 흡연율 하락이라는 목표를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사실 이번 논란의 발단은 갑자기 튀어나온 헛소문이 아니었다. 정부가 이미 2021년에 발표한 제5차 국민건강증진종합계획(HP2030)에는 담배 가격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으로 인상하겠다는 중장기적 방향이 명확히 담겨 있다.
하지만 정책의 추진 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세밀한 설득 과정 없이 수치만 부각되자, 정부는 여론의 뭇매를 피하기 위해 서둘러 오해라는 방패 뒤로 숨어버렸다. 정책의 일관성이 무너진 자리에는 국민의 불신만 남았다.
그렇지만 정치적 계산을 걷어내고 과학적인 수치만 놓고 본다면 상황은 전혀 달라진다.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김하나 박사의 최근 연구(한국 담배가격 정책의 성인 흡연행태 영향 분석:코호트 자료 분석과 모의실험모형의 활용)에 따르면 성인 남성의 흡연율을 정부 목표치인 25% 미만으로 낮추기 위해서는 현재 4천500원인 담배 가격을 최소 8천원 수준으로 대폭 올려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는 담뱃값이 국제 평균에 비해 여전히 낮고, 마지막 가격 인상으로부터 10년이 흐르면서 가격 장벽으로서의 힘을 잃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가격 인상이라는 채찍이 생각보다 금방 무뎌진다는 점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분석 결과(담배 판매량에 대한 담뱃세 인상의 영향)에 따르면 담뱃값을 올린 직후에는 판매량이 일시적으로 줄어들지만 불과 4개월 정도가 지나면 판매량은 다시 이전 수준으로 돌아온다. 중독성이 강한 담배의 특성상 가격이 올라도 소비를 크게 줄이지 못하는 비탄력적인 수요가 확인된 셈이다. 결국 한 번에 대폭 가격을 올리는 방식은 단기적인 충격 요법에 그칠 뿐, 장기적인 금연으로 이어지기에는 한계가 뚜렷하다.
전문가들은 가격 정책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비가격 정책과의 조화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담뱃값을 올려 흡연의 진입 장벽을 높이는 동시에 흡연자들이 담배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돕는 세밀한 지원이 병행돼야 한다는 뜻이다.
금연구역 확대와 담배 광고 금지는 물론, 담뱃갑의 경고 그림을 더욱 강화해 흡연에 대한 경각심을 지속해서 일깨워야 한다. 특히 최근 늘고 있는 궐련형 전자담배에 대해서도 일반 담배와 동일한 수준의 강력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더 나아가 매년 물가 상승률에 맞춰 담뱃값을 조금씩 자동으로 올리는 물가연동제 도입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 이는 가격 인상 때마다 반복되는 정치적 소모전을 줄이면서도 담배의 실질적인 가격이 낮아지는 것을 막아 지속적인 금연 동기를 부여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여기에 담배의 니코틴 함량을 점진적으로 낮춰 중독성을 줄이는 기본 설정(Default) 정책이나 노담 캠페인(보건복지부에서 2020년부터 진행하는 청소년 대상 금연 캠페인 공익광고. 'No + 담배'라는 뜻에서 노담이다)처럼 흡연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노력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야 한다.
결국 담배 없는 사회는 정부의 말 바꾸기나 일시적인 가격 충격만으로 이뤄낼 수 없다. 이번 소동은 정부가 국민에게 정책의 장기적인 비전을 솔직하게 공유하고 가격이라는 쉬운 길 대신 비가격 정책의 강화라는 어렵지만 올바른 길을 함께 가자고 설득하는 데 실패했음을 보여준다. 흡연율 하락이라는 공공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정치적 결단만큼이나 정교하고 따뜻한 정책의 조합이 절실하다.
sh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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