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시카고에서 최초의 에어 조던을 신고 등장한 마이클 조던.
1984년 11월 17일. 뉴욕의 매디슨 스퀘어 가든 관중석에 앉아 있던 그 누구도 자신들이 곧 목격하게 될 일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알지 못했다. 그날 밤 벌어질 사회문화적 사건은 이전까지 단 한 번도 일어난 적 없는 규모였다.
그날은 마이클 조던이 뉴욕에서 첫 경기를 치른 날이다. 동시에 스포츠, 소비 그리고 스타의 탄생 방식 사이의 관계를 완전히 바꿔놓을 새로운 시대의 시작이기도 했다. 그는 나이키 에어 쉽을 신고 있었고, 이 운동화는 훗날 등장할 에어 조던 1의 전신이 되었다. 문제는 이 나이키 에어 쉽이 당시 NBA의 복장 규정을 정면으로 위반했다는 점이었다. 그 시절 NBA는 철저한 통제와 원칙에 따라 운영되었고 깨끗한 흰색 혹은 절제된 색상, 균일한 스타일을 기준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시카고 불스의 등번호 23번 선수가 신은 검정색과 빨간색이 섞인 농구화는 리그 입장에서 확실히 문제였고, NBA는 조던에게 규정에 맞지 않는 신발을 착용했다는 이유로 경기당 5000달러의 벌금을 부과했다. 그러나 나이키의 반응은 전혀 달랐다. 그들에게 이것은 위기가 아니라 역사적인 기회였기에 나이키는 단 한 번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모든 벌금을 대신 지불했다. 그리고 그 제재를 하나의 전설적인 신화로 만들었다.
“NBA는 이 신발을 금지했지만 당신이 신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다.”
당시 가장 유명했던 광고 문구 중 하나다. 금지된 것들이 늘 그렇듯, 이 조치는 제품의 인기를 떨어뜨리기는커녕 오히려 욕망의 대상으로 만들었다. 상업적인 관점에서 그 영향은 즉각적이었고 압도적이었다. 나이키는 에어 조던을 통해 처음 4년 동안 300만 달러의 매출을 올릴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단 1년 만에 그 수치는 1억2600만 달러를 넘어섰다. 그전까지 운동화의 역할은 비교적 단순했다. 이미 컨버스 올스타, 아디다스 슈퍼스타, 푸마 스웨이드 같은 상징적인 신발들도 존재했지만 그 신발들이 지니는 사회적 의미는 아직 완전히 형성되지 않은 상태였다. 에어 조던은 단지 하나의 모델 운명을 바꾼 것이 아닌 나이키라는 기업의 경제적 구조 자체를 새롭게 정의했다. 이러한 에어 조던 현상을 단순히 매출 숫자로 설명하는 것은 본질을 놓치는 일이다. 진짜 혁명은 사회학적 패러다임의 변화. 처음으로 한 켤레의 운동화가 단순한 스포츠 장비가 아니라 상징적 물건으로서 가치가 확장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단순히 농구화를 사는 것이 아니라 마이클 조던이라는 인물의 일부를 구매하는 것이었다. 그의 재능, 카리스마 그리고 신화적인 오라까지 포함해서. 사회학자 데이비드 앤드루스는 이렇게 썼다. “조던은 최초의 포스트모던 운동선수다. 농구를 하는 움직이는 브랜드다.” 에어 조던은 하나의 문화적 장치처럼 작동하기 시작한다. 코트 위에서는 탁월함의 상징이었고, 거리에서는 지위의 표시로 미국의 아프리카계 커뮤니티에서 운동화는 자동차나 보석만큼 강력한 사회적 지표가 되었다.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에는 운동화를 마치 종교적 성물처럼 상자에 보관하는 문화가 등장하기도 했다. 아스팔트에 닿지 않도록 보호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이 산업에서 늘 그렇듯 영화와 음악도 현상을 확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86년 영화 〈She’s Gotta Have It〉에서 스파이크 리는 마스 블랙몬이라는 캐릭터로 등장해 반복해서 묻는다. “신발 때문이야?” 극 중에서 농구 실력이나 스타일이 유난히 돋보이는 순간마다 능력의 비결이 신발에 있는 것 아니냐며 집요하게 질문을 던지는 장면이다. 장난스러운 농담처럼 보이지만, 이 대사는 곧 스니커즈 문화의 상징적인 문장으로 자리 잡았다. 이후 마스 블랙몬 캐릭터는 나이키의 에어 조던 광고에서 마이클 조던과 함께 다시 등장하고, “신발 때문이야?”라는 말은 퍼포먼스와 스타일을 신발과 연결 짓는 스니커즈 신화의 출발점처럼 회자됐다. 신발이 사람을 바꾸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그렇게 믿게 하는 문화가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문화 자본주의는 그렇게 자신에게 가장 효과적인 서사 중 하나를 발견한 것이다. 인종과 사회적 맥락에서도 그 영향은 깊었다. 마이클 조던은 미국 사회에 여전히 심각한 불평등이 자리 잡고 있던 시기에 대중적으로 글로벌 아이콘으로 인정받은 최초의 흑인 운동선수였고 에어 조던 안에는 도시 흑인 문화의 미학과 서사, 정체성이 담겨 있었다.
소더비 역사상 처음 경매에 올라간 나이키 문 슈즈. 낙찰가는 43만 7000 달러였다.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에 이르기까지 이 현상은 코트에서 거리로 확산됐다. 힙합의 부상, 길거리 농구 문화, 스트리트웨어의 성장과 함께 스니커즈는 문화적 자본의 상징이 되었다. 특히 젊은 세대와 다양한 인종 공동체에서 그 의미는 더욱 컸다.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이렇게 말했다.
“취향은 결코 순수하지 않다. 취향은 구별하고, 위계를 만들며, 배제한다.” 스니커즈는 정확히 그런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특정 시기에 유명 모델을 갖고 있다는 것은 지위를 의미했고, 그렇지 못하다는 것은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스니커즈는 하나의 상징적 경제 속으로 편입되었다. 그 세계에서 진정성, 희소성, 새로움은 돈만큼 중요한 가치였다.
그리고 운동화는 어느 순간 팝아트 작품처럼 수집되기 시작한다. 여기서 스니커즈헤드라는 존재가 등장한다. 단순한 소비자가 아니라 날짜와 역사, 레퍼런스와 내부 코드까지 기억하는 집요한 수집가를 말한다. 이를 가장 잘 설명하는 인물 중 하나가 사이먼 ‘우디’ 우드다. 그는 2002년 호주 멜버른에서 창간된 세계 최초의 스니커즈 문화 전문 매거진 〈Sneaker Freaker〉의 창립자이자 편집자다. “스니커즈헤드가 된다는 것은 단순히 신발을 사는 것이 아닙니다. 왜 그 신발이 존재하는지, 누가 디자인했는지, 누구를 위해 만들어졌는지, 어떤 문화적 맥락 속에서 탄생했는지를 알고 싶어 하는 것이죠. 거기에는 강한 감정적 요소도 작용합니다. 첫 운동화의 기억, 잡지 표지, 인상적인 경기나 뮤직비디오에 나온 장면 같은 것들 말이죠. 운동화가 단순한 신발을 넘어 개인의 이야기가 되는 순간, 그때 스니커즈헤드가 탄생합니다.”
새로운 세기가 시작되면서 이 현상은 또 한 번 진화했고 마침내 제도화되었다. 브랜드들은 희소성을 관리하는 법을 배우며 출시 수량을 조절하고 디자이너와 뮤지션, 심지어 럭셔리 패션 하우스와 협업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2차 시장은 폭발적으로 성장해 리셀 플랫폼은 운동화를 투기 자산으로 바꾸어 놓았다. 어떤 모델은 주식처럼 가격이 움직였다. 현재 전 세계 스니커즈 리셀 시장 규모는 100억 달러를 넘어서며 어떤 모델은 예술 작품에 가까운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이러한 제도화 과정을 거치며 스니커즈 시장은 변모했다. 마드리드의 스니커즈 전문 매장 ‘Numbers Sneakers’ 창립자 알렉스 테헤로는 이렇게 설명한다. “지금은 농구화가 시장을 지배하던 시기와는 완전히 다른 시대입니다. 선택지는 훨씬 다양해졌고 농구화 모델의 영향력은 분명 줄어들고 있습니다. 대신 1970년대 클래식 실루엣이나 최신 러닝화 모델들이 점점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죠.”
바로 이런 시점에 마드리드에서 열린 전시 〈Nike. Diseño en movimiento〉는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이 전시는 디자인이라는 관점에서 스니커즈 문화 현상을 다시 읽어보려는 시도로 큐레이터 글렌 애덤슨은 이렇게 말한다. “지금이야말로 나이키의 역사를 돌아보고, 무엇보다 그 브랜드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디자인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평가하기에 적절한 시기라고 생각했습니다.” 전시는 제품을 기술과 형태, 상징성이라는 세 가지 축에서 바라본다. 하지만 그것을 사회적 맥락에서 분리하지 않는다. 오히려 디자인을 문화적 변화를 만들어내는 능동적인 요소로 제시한다. 흥미롭게도 이 철학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는 물건은 에어 조던이 아니라 문 슈즈다. 이 신발은 나이키 공동 창립자 빌 바우어만이 러닝화의 접지력을 개선하기 위해 만든 실험적인 프로토타입이다. 와플 기계로 고무 밑창을 찍어내는 방식으로 새로운 아웃솔을 만든 신발인데 1970년대 초 선수들을 위해 극소량만 제작된 이 신발은 당시에는 어디까지나 퍼포먼스를 위한 기술적 실험에 가까웠다. 애덤슨은 이를 이렇게 설명한다. “퍼포먼스를 목표로 한 실험적 장인정신의 유물입니다. 그 과정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타일이 탄생했죠.” 이 말은 스니커즈 문화와 미학이 처음부터 의도된 결과라기보다 성능을 향한 연구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등장했음을 시사한다. 전시는 또 하나의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스니커즈, 정체성, 자기표현 사이의 관계다. 스니커즈 문화의 핵심에는 언제나 이 요소가 존재했다. 신발은 눈에 보이는 소속의 코드처럼 작동하는데, 한정판, 기간 한정 출시, 커스터마이징 프로젝트 같은 요소들이 더해지면서 그 체계는 점점 더 복잡해졌다. 대량생산 시장 속에서 개인성을 약속하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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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함과 스타일의 관계를 바꿔놓았다. 또한 클리프톤은 오늘날 쿠셔닝, 인체공학, 가벼움이 하나의 정체성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 사라 안델만, 전 콜레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지금 매우 흥미로운 순간을 맞고 있다. 이 모델은 편안함,
러너 스타일의 미학, 그리고 현재 소비자와 연결되는 디자인을 담고 있다.”
- 알렉스 테헤로, 넘버스 스니커즈 창립자
“아주 잘 에이징된 스니커즈라고 할 수 있다. 그 성공의 이유는
트렌드에 의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역사와 기능적 디자인을 결합했다.”
- 루이스 미겔 로사노, 컬렉터
“트렌드를 넘어 하나의 문화적 기본 아이템이 되었다. 절제된 디자인이면서도 알아보기 쉽고, 카우보이 스타일부터 테일러드 슈트까지 모두 잘 어울린다.”
- 제라르 에스테브, 24킬라테스 공동 창립자
“이 신발은 새로운 미학을 보여주며, 다재다능하다. 현대 도시의
옷장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스포츠 퍼포먼스를 위해 만들어졌다.”
- 루벤 가르시아, Footdistrict 창립자
새로운 세대는 이 문화를 또 다른 방식으로 받아들인다. 애덤슨은 이렇게 말한다. “예전에는 특정 도시나 특정 커뮤니티 안에 있어야 특별한 출시 정보를 얻을 수 있었지만 지금은 모든 것이 SNS를 통해 퍼집니다.” 접근성은 전 세계적으로 확대되었다. 거리에서도 변화는 분명하게 드러난다. 테헤로는 이렇게 설명한다. “5년 전만 해도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레트로 농구화를 찾았습니다. 조던, 덩크, 뉴발란스 550 같은 모델이었죠. 지금은 뉴발란스, 살로몬, 호카 같은 러닝 브랜드가 훨씬 인기가 많습니다.”
그는 또 흥미로운 변화를 덧붙였다. “15년 넘게 이 업계에 있었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입니다. 젊은 친구들 사이에서 세바고 스타일의 로퍼나 팀버랜드 부츠가 다시 유행하고 있어요.”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현상이 두드러질수록 문화적 뿌리와의 거리는 오히려 멀어졌다. 정체성의 표현으로 시작된 문화는 어느 순간 금융적 도구로 변했고, 스니커즈헤드라는 존재의 의미도 달라졌다. 열정적인 수집가에서 투자자로 이동한 것이다.
우드는 이렇게 설명한다. “이 문화는 비교적 폐쇄적인 서브컬처에서 글로벌하고 대중적인 현상으로 바뀌었습니다. 예전에는 지식이 곧 권력이었죠. 남들이 모르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요. 지금은 모든 것이 즉각적으로 공유되고 증폭됩니다.” 그는 이어 이렇게 덧붙인다. “긍정적인 면도 있습니다. 다양성과 접근성이 늘어난 거죠. 하지만 동시에 포화, 과잉생산, 그리고 신비로움의 상실이라는 부정적인 면도 나타났습니다. 지금은 일종의 정화 과정에 들어선 단계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문화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다시 정의될 뿐입니다.” 이 변화가 위기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견이 엇갈린다. 한편으로 시장은 포화의 징후를 보이고 있다. 테헤로는 이렇게 말한다. “지금 주요 소비층은 40대 이상입니다.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에 청소년이었던 세대죠.” 이 사실은 중요하다. 열정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더 이상 세대 전체를 움직이는 현상은 아니다. 리셀 시장의 속도가 점차 느려지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럼에도 스니커즈는 여전히 패션과 럭셔리, 일상생활의 풍경 속에 깊이 스며들어 있다. 사람들은 어느 때보다 많은 스니커즈를 신고 거리를 걷는다. 그러나 그 풍경이 곧 이전과 같은 열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우리는 스니커즈를 가장 많이 소비하는 시대에 살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가장 당연한 물건으로 받아들이는 시대를 지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다음 단계는 다시 ‘의미’로 돌아가는 과정일 가능성이 크다. 한때 투기의 언어로 설명되던 리셀 시장의 버블은 서서히 가라앉고 있다. 그렇다고 스니커즈 문화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과열된 욕망이 한 겹 벗겨지면서 스니커즈가 처음 지녔던 맥락과 가치가 다시 또렷해지는 국면에 가깝다.
독립 리테일 현장에서 바라보는 시각은 훨씬 덜 비관적이다. 테헤로는 이렇게 말한다. “몇 년 동안 이 시장에는 신발 자체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돈을 벌기 위해 들어온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지금은 훨씬 차분하고 선택적인 소비자들이 보입니다. 자신이 산 신발을 실제로 신는 사람들 말이죠.” 오랫동안 이 업계에 몸담아온 사람들에게 이것은 위기가 아니라 본질로 돌아가는 과정이다. 그리고 그 변화는 스니커즈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전혀 어울리지 않던 공간으로 들어가면서 더욱 분명해졌다. 경매 시장이다. 2019년 7월, 소더비는 역사상 처음으로 운동화를 경매에 올렸다. 앞서 언급한 1972년 제작된 나이키 문 슈즈다. 낙찰가는 43만7000달러. 예상가의 세 배. 2020년 5월에는 마이클 조던이 직접 사인한 에어 조던 1이 56만 달러에 거래됐다.
이것은 단순히 기이한 사건이나 일시적인 유행이 아니었다. 스니커즈가 문화적이고 수집 가능한 오브제로 자리 잡았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그럼에도 스니커즈는 여전히 패션과 럭셔리, 그리고 일상 깊숙한 곳에 자리하고 있다. 사람들은 어느 때보다 많은 스니커즈를 신고 있지만, 정작 그 어느 때보다 덜 갈망하는 시대일지도 모른다. 지금 이 흐름의 다음 단계는 ‘의미’로의 회귀에 가까워 보인다. 투기적 버블로 팽창했던 리셀 시장은 분명 식어가고 있다. 그렇다고 스니커즈 문화가 끝났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스니커즈 본래의 가치로 돌아가는 과정에 가깝다. 과열된 가격과 과장된 서사가 걷혀간 자리에는 결국 스타일이 남고, 그보다 오래 지속되는 의미가 남는다.
브루클린 창고에 보관된 스니커즈 수집가 크리스 로사리오의 컬렉션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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