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최진승 기자] 충남 당진시 송악읍 기지시리는 해마다 봄이 오면 거대한 줄을 만들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 줄을 함께 당긴다. 500여 년을 이어 온 이 줄다리기는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공동체 의례다.
전해지는 설화에 따르면 이 일대의 지형은 옥녀가 베를 짜는 모습과 같다고 여겨졌다. 베를 짜고 나면 마전을 하듯 두드리고 당기는 과정이 필요했는데 그 움직임이 놀이로 이어지며 줄다리기가 시작됐다는 것이다. 또 다른 전승에서는 마을의 형세가 지네를 닮아 이를 본떠 만든 큰 줄을 당긴 데서 비롯됐다고도 전한다.
조선시대에는 이 일대에 해일과 전염병이 이어지며 큰 피해가 발생했다는 전승이 남아 있다. 마을 사람들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제사를 지내고 줄다리기를 하며 재앙을 막고 평안을 기원했다. 이후 줄다리기는 공동체의 안녕과 풍요를 바라는 의례로 자리 잡았다.
행사는 국수봉에서 지내는 제사로 시작된다. 마을의 평안과 풍년을 기원하는 의식을 마치면 사람들은 마을을 두 편으로 나누어 각각 줄을 만든다. 물 위쪽 마을이 수줄을 아래쪽 마을은 암줄을 맡는다. 완성된 줄은 들판으로 옮겨져 줄다리기가 펼쳐진다. 줄이 움직이는 모습은 용이 몸을 틀며 올라가는 장면에 비유되기도 한다.
줄다리기에 사용하는 줄은 규모부터 특별하다. 길이 약 200m, 지름 1m에 이르는 대형 구조물로 수천 단의 볏짚을 엮어 만든다. 한 사람이 아니라 많은 사람이 함께해야 비로소 움직일 수 있는 크기다. 줄 위에 사람이 올라서도 발이 땅에 닿지 않을 정도로 굵다. 당진시는 2월부터 이달말까지 매일 20여 명의 인원이 참여해 짚 6천 단으로 줄을 제작하는 중이다. 암숫줄 길이 각 100m의 큰 줄에 머릿줄, 곁줄, 손잡이가 되는 젖줄까지 올해의 기지시줄다리기를 위한 줄이다.
줄다리기가 시작되면 마을 사람들과 방문객이 한데 섞인다. 나이나 신분, 사는 곳에 관계없이 누구나 줄을 잡을 수 있다. 승패를 가르기도 하지만 중요한 것은 함께 힘을 모으는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형성되는 공동체의 결속이 행사의 핵심으로 여겨진다.
기지시줄다리기에는 당진 지역의 전통 농악놀이도 함께 어우러진다. 두레농악을 바탕으로 한 웃다리 풍물 계열로 꽹과리와 징, 북, 장구 등의 타악기 중심 연주와 ‘칠채’ 장단이 특징이다. 빠르고 느림의 변화가 분명한 가락과 절제된 구성 속에서 줄다리기의 흐름과 현장의 분위기를 이끄는 역할을 한다.
줄다리기가 끝난 뒤에는 줄을 잘라 나누는 풍습도 이어진다. 집으로 가져가 보관하거나 달여 먹으면 건강과 복을 가져다준다고 믿어 왔다. 줄다리기가 생활과 신앙이 함께 어우러진 문화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민간에서 시작된 기지시줄다리기는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된 이후 2015년 여러 나라의 줄다리기 문화와 함께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공동체가 함께 참여해 풍요와 안녕을 기원하는 의례라는 점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올해 축제는 4월 9일부터 12일까지 기지시줄다리기박물관 일원에서 열린다. 행사 기간에는 제례와 개막식, 공연을 비롯해 국내외 줄다리기 시연, 전통놀이와 체험 프로그램, 각종 대회 등이 진행될 예정이다. 구은모 기지시줄다리기보존회장은 “협력과 도움으로 줄 제작이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으며 축제를 통해 많은 분들이 기지시줄다리기의 매력을 접하길 바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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