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매거진=구씨 작가] 작년 말부터 청년 지원 사업만 퍼 나르는 블로그들 사이에서 청년 창작자에게 900만 원을 준다는 이야기가 떠돌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부모님이 어느 날 카카오톡으로 블로그 링크 하나를 보내왔다. 그런 블로그에서 추천하는 사업들이 늘 그렇듯, 막상 들어가 보면 내 몫이 아니거나, 이미 지난 공고이거나, 정말 특별한 경우에만 해당되는 사업이겠거니 싶었다. 그러다 주변에서 하나둘 같은 소식을 전해오면서 그 사업은 비로소 실체를 드러냈다.
사업 신청 시기는 지자체 문화재단의 예술 지원 사업과 비슷하게 맞물려 있었다. 안내문을 하나씩 읽어 내려가다 보니 여러 벽과 마주쳤다. 이 사업에 선정되어 900만 원을 받으면 지자체 사업에 선정되더라도 포기해야 했다. 재단의 예술인 리서치 사업도,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이 격년으로 지급하는 활동 지원금도 받을 수 없었다. ‘예술로’를 통한 기업 협력 사업 참여도 불가능했다. 900만 원이라는 말 앞에 크고 작은 벽들이 줄지어 세워졌다.
각각의 포스터는 공고문과 신청서를 올려두고, 친절한 안내들 사이에 작은 글씨로 모든 내용을 적어두었다. 그 내용을 가장 잘 알고 있을 각 사업의 담당자는 이 벽들과는 무관해 보였다. 한 명의 예술인이 이것저것 중복으로 받으며 여기저기 자랑을 한다면 하루쯤 씁쓸할 수 있겠지만, 그만큼 공정한 심사 기준이 뒷받침된다면 이해 못 할 일도 아니다. 오늘도 나는 ‘지원’이라는 단어를 눈을 비비며 다시 들여다본다.
900만 원이 지원금으로 꽤 큰 금액인 것은 분명하다. 기타 소득세를 공제한 뒤 영수증 처리 없이 지급되는 이 사업은, 담당자 스스로도 들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신청하는 입장에서 이런저런 조건들을 살펴보다 보면 자꾸만 허공을 바라보게 되는 순간이 찾아왔다.
개인 소득과 거주 중인 집의 가격을 묻고서 내미는 그 돈은, 예술이라는 것을 정말 존중하여 지원하겠다는 의미보다 돈이 없는 이를 찾아서 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맞는 말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지원’이라는 단어에서 조금의 따뜻함을 기대했다면, 아직 내가 그 단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거나, 덜 어른인 탓이거나, 그런 사소한 이유들이 있을 것이다. 나는 그런 사소한 ‘지원’을 원한다.
사업에 선정되면 중간 평가를 거치지만, 900만 원은 올해와 내년 2년에 걸쳐 지원받을 수 있다. 3,000명의 청년 창작자, 그들의 2년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그래서인지 주최 측은 2년치 계획을 요구했다. 사실 4, 5월이 되어서도 별다른 계획이 없는 상태였지만, 예전부터 기획서를 쓰던 버릇처럼 이런저런 것들을 텍스트로 옮기기 시작했다.
다 쓴 지원서를 검토하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자유롭게 살아가는 어른이 자신의 2년을 이토록 명확히 알 수 있을까. 이 사업을 통해 숨통이 트이는 이들이, 서류를 잘 작성해서가 아니라, ‘예술인’이라는 명칭을 갖고 있어서가 아니라, 정말로 2년의 지원이 필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문서 너머로 파악해 내길 바란다. 서류를 쓰면 쓸수록 기대 없이 주최자에게 모든 것을 맡긴 수동적인 인간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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