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 너머의 마음에 대하여
히가시노 게이고가 쓴 가장 따뜻한 이야기 〈녹나무의 파수꾼〉이 애니메이션 영화로 다시 쓰인다. 녹나무 아래, 말로 다할 수 없는 마음이 오가는 아름다운 순간이 생동하는 그림으로 펼쳐진다.
이따금 돌아가신 할머니 생각이 날 때마다 실재할 수 없는 장면을 상상한다. 한 번도 정확히 말하지는 못했던 고맙고 미안한 마음을 속속들이 털어놓는 순간을 자세하게 그리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이 마음이 논리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어떤 방법으로 가닿을 수도 있지 않을까 낙관하게 되는 날도 있다. 영화 〈녹나무의 파수꾼〉은 이러한 상상을 현실로 그린 판타지다. 제목 속 ‘녹나무’는 혈연관계로 이어진 사람들 사이의 말하지 못한 진심을 저장하고 전달하는 매개다. 누군가의 염원이 나무에 저장되면 보름달이 뜬 밤, 혈연관계에 있는 또 다른 누군가가 수념(受念)한다. 주인공 ‘레이토’는 녹나무를 지키며 마음을 주고받기 위해 찾아오는 무수한 타인의 삶을 들여다본다.
사실 나는 알고 있다. 설령 꿈에서라도 할머니를 만나 작별 인사를 할 시간을 벌었다 한들 진심을 말로 다 하진 못했을 것이다. 말 못할 고민은 가족보다 차라리 처음 만난 사람에게 털어놓는 것이 편한 것과 같은 이유랄까. 그동안 고생하셨다, 자주 찾아 뵙지 못해 죄송하다, 사랑한다 몇 마디 말로 납작하게 전하고 말겠지. 가족 사이 깊고 복잡한 마음을 말로, 왜곡이나 축약 없이 정직하게 쏟아내는 일은 판타지 애니메이션 영화에서나 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영화는 국내에서 〈용의자 X의 헌신〉,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백야행〉 등으로 잘 알려진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가 쓴 동명의 소설을 바탕으로 한다. 이 작품을 두고 ‘오랫동안 마음에 품고 있던 이야기’라 공언한 작가는 2020년 한국, 중국, 일본, 대만 등에서 책을 동시 출간하며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긴 것으로 전해진다. “트릭을 쫓는 것이 아니라, 말로는 다 전할 수 없는 마음이 어떻게 전달될 수 있는지를 정성스럽게 그려보고 싶었습니다. ‘인간의 선의’라는 것을 믿어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녹나무의 파수꾼〉은 그의 소설이 애니메이션 영화로 만들어진 첫 사례다. 나에게는 이것이 실존할 수 없는 녹나무가 영화 안에서라도 보고 만질 수 있는 현실이 되길 바라는 작가의 욕심으로 읽힌다. 아마도 작가는 자주, 나와 같은 상상을 했던 것 같다. 사랑하는 가족 앞에서 가슴에 꼭 움켜쥔 마음을 뱉어보는 일. 어떤 후회나 미련도 없이 그 마음이 고스란히 전달되는 기적 같은 것을.
※ 영화 〈녹나무의 파수꾼〉은 3월 18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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