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이준섭 기자] ‘인간극장’이 한 가족의 시간과 선택을 따라간다.
오는 3월 30일부터 4월 3일까지 방송되는 ‘백발 모자전(傳)’은 99세 치매 노모를 중심으로 이어진 네 세대의 일상을 담아낸다. 서로 다른 삶의 속도를 가진 가족들이 한 지붕 아래에서 부딪히고, 버티고, 다시 손을 맞잡는 과정을 통해 ‘돌봄’이라는 질문을 던진다.
경기도 용인의 한 아파트에는 네 세대 여섯 식구가 함께 산다. 아흔아홉의 증조할머니부터 14개월 된 증손녀까지, 시간의 간극만큼이나 다양한 사연이 쌓인 공간이다. 한때 단정한 품격으로 가족을 이끌던 라정임 여사는 남편을 먼저 떠나보낸 이후 긴 상실의 시간을 겪었고, 결국 치매 진단을 받았다. 이후 막내아들 혁성 씨가 어머니를 모시게 되면서 가족의 일상은 크게 달라졌다.
돌봄의 무게는 자연스레 며느리 영희 씨에게도 이어졌다. 예상치 못한 상황과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는 오랜 시간을 버텨냈다. 겉으로는 평온해 보였지만, 그 이면에는 쉽게 꺼내지 못한 감정들이 켜켜이 쌓여 있었다. 그러던 중 손녀의 탄생은 그의 삶에 작은 전환점이 됐다. 딸 가족이 합류하며 집안에는 새로운 숨결이 더해졌고, 3년 전 퇴직한 혁성 씨가 본격적으로 어머니를 돌보기 시작하면서 가족의 역할에도 변화가 생겼다.
이제 혁성 씨의 하루는 어머니의 리듬에 맞춰 흘러간다. 주간보호센터 일정에 맞춰 움직이고, 외출 역시 시간을 계산해 서둘러야 한다. 친구들과의 약속도 자유롭지 않은 그는 ‘오후 5시의 신데렐라’라는 별명을 얻었다. 오랜만에 떠난 지방 모임에서도 마음은 온전히 머물지 못한다. 결국 짧은 인사만 남긴 채 다시 집으로 향하는 선택을 한다.
그 곁을 지켜보는 가족들의 고민도 깊어진다. 딸 보현 씨는 부모의 부담을 덜기 위해 어린 딸을 어린이집에 보내기로 결심하고, 그 선택 앞에서 영희 씨는 복잡한 감정을 쏟아낸다. 세대가 이어질수록 돌봄의 방식과 책임 또한 새로운 형태로 변해간다.
상황은 점점 더 녹록지 않다. 어머니의 상태가 악화되며 돌봄의 강도는 높아지고, 예측할 수 없는 순간들이 반복된다. 혁성 씨는 잠시도 긴장을 늦추지 못한 채 하루를 보내고, 영희 씨 역시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그 시간을 함께 견딘다. 그런 두 사람에게 건네진 짧은 외출의 기회는 숨을 고를 수 있는 작은 틈이 된다. 잠시 일상을 벗어난 시간 속에서 부부는 다시 버틸 힘을 다진다.
기억이 흐려진 노모와 이제 막 세상을 알아가는 아이가 한 공간에 머문다. 휠체어와 유모차가 나란히 놓인 현관은 이 가족이 지나고 있는 시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백발 모자전’은 특별한 사건보다 일상의 선택에 주목하며, 부모를 돌본다는 의미를 다시 묻는다. 결국 그것은 한때 받았던 시간을 되돌려주는 또 하나의 방식일지 모른다.
뉴스컬처 이준섭 rhees@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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