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endaya
Fendi
McQueen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속 패션 매거진 ‘런웨이’의 기획 회의 신. 편집장 ‘미란다’(메릴 스트립)가 “봄에 꽃무늬? 정말 획기적이네”라고 비꼬던 장면을 기억하는가. ‘봄=플라워’라는 패션계의 오래된 공식을 냉소적으로 꼬집는 장면이다. 익숙하고 예쁘지만 동시에 조금은 예상 가능한 풍경. 그래서인지 늘 S/S 시즌 속 플라워 모티프를 볼 때면 감탄보다는 그저 보고만 있는 순간이 더 많았지만 이번 시즌은 조금 다르다. 2026 S/S 런웨이에서 발견한 플라워 모티프는 더 이상 프린트나 패턴에 머물지 않는다. 디올과 샤넬, 펜디, 맥퀸 등 하우스 곳곳에서 수백 장의 꽃잎, 봉오리처럼 말린 패브릭 등 저마다의 감각을 더해 마치 한 송이 꽃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입체적인 디테일이 런웨이 곳곳에서 피어났다. 옷 위에 그려진 것이 아니라 옷 자체의 형태가 되는 방식으로 말이다. 그 변화가 가장 극적으로 드러난 퍼포먼스는 조나단 앤더슨의 2026 S/S 디올 오트 쿠튀르 쇼였다. 실크와 페더, 시폰, 오간자 등 다양한 소재를 활용해 해체와 재구성을 보여줬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피스는 실크 시클라멘 꽃잎으로 뒤덮인 드레스. 조나단 앤더슨이 데뷔 쇼를 앞두고 존 갈리아노에게 컬렉션을 먼저 보여주었을 때, 갈리아노는 시클라멘꽃과 케이크를 선물로 건넸다. 이 꽃은 앤더슨에게 큰 영감을 주었고, 그 아이디어를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룩이 바로 이 드레스다. 디올 아뜰리에 내 칵테일·이브닝 드레스 등 유려한 실루엣을 담당하는 플루팀과 슈트·코트처럼 구조적인 실루엣을 다루는 타이외르 팀이 수많은 꽃잎을 손으로 염색하고 수놓는 과정을 거쳐 마침내 실제 꽃이 피어난 듯한 장면이 펼쳐졌다. “자연은 고정된 결론이 아니라 끊임없이 진화한다. 오트 쿠튀르 역시 아이디어 실험실로 전통 기술은 유물이 아니라 살아 있는 지식으로 계속 새롭게 태어난다”는 쇼 노트의 문장을 구현한 것이다. 무슈 디올이 사랑한 모티프에 대한 오마주이자 하우스의 장인정신을 집약한 정수로서, 새로운 수장이 꽃이라는 매개를 채택한 것. 이런 조형적인 플라워가 꼭 드라마틱한 오트 쿠튀르 쇼에서만 등장한 것은 아니다.
Susan Fang
Dior
Jennifer Lawrence
Chanel
마찬가지로 첫 쇼를 치른 샤넬의 마티유 블라지. 그는 3D처럼 입체적인 플라워를 통해 트위드 재킷과 블루종, 드레스 위에 꽃이 막 피어난 듯한 생동감을 더하며 룩 전체에 로맨틱한 움직임을 불어넣었다. 또한 전통적 코드인 백의 체인은 사라지고, 카멜리아는 구겨지고 재배열돼 소담한 장식부터 거대한 아플리케까지 다양한 형태로 표현되며 샤넬의 새로운 시대를 예고했다. 맥퀸은 어떤가? 레더와 왁스 코튼을 한 올 한 올 엮어 완성한 크로셰 플라워 디테일은 서로 다른 질감이 교차하며 독특한 형태를 만들어내 특유의 장인정신을 드러냈다. 시몬 로샤는 바느질을 배우는 소녀의 성장 서사와 그들의 가장무도회를 레퍼런스로 삼았고, 어린아이가 장난 삼아 만든 듯한 큼지막한 플라워가 달린 드레스로 불완전한 아름다움을 풀어냈다. 색채의 만화경처럼 펼쳐진 펜디는 그야말로 꽃밭 그 자체였다. 경쾌한 컬러 팔레트의 셔츠와 드레스에는 데이지 꽃잎을 정교하게 컷아웃한 디테일이 더해졌다. 주목할 만한 대목은 단연 가방. 꽃 모양 스터드를 하나하나 섬세하게 배치하거나 꽃줄기를 따라 흐르는 라인 위에 플라워를 끼워 넣는 등의 위트를 보이기도. 이런 기류는 레드 카펫에서도 이어졌다. 젠데이아는 화이트 드레스 위에 커다란 플라워 코르사주를 얹어 조형적 존재감을 극대화했고, 제니퍼 로렌스는 섬세한 플로럴 자수가 수놓인 시어 드레스로 레드 카펫 위에 작은 정원을 보여줬다. 나탈리 포트만 역시 수많은 꽃 장식으로 뒤덮인 미니드레스를 선택해 입체적인 플라워 모티프의 매력을 강조했다.
Simone Rocha
Natalie Portman
Rabanne
이번 시즌의 플라워는 익숙함에서 살짝 벗어난다. 단순히 계절을 대변하는 요소가 아니라 소재와 텍스처를 재해석해 스타일을 확장하는 방식으로, 나아가 하우스의 새로운 코드로 진화했다. 런웨이 위에서 꽃은 접히고, 말리고, 겹쳐지며 익숙한 것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다시 바라보게 만든다. 그러니 이번 봄엔 조금 다른 방식의 꽃을 선택해도 좋겠다. 프린트나 패턴 대신 플라워 모티프가 스타일의 중심에 서게 해보자. 어쩌면 ‘미란다’가 비꼬던 그 대사가 진심 어린 감탄으로 바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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