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주요국 대비 비싸다는 지적을 받아온 제네릭(복제약) 가격구조를 손질해 약가 인하에 나섰다. 2012년 약가제도 일괄인하 이후 14년 만에 가장 큰 변화다. 이번 개편에 따라 제네릭 의약품 약가는 4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끌어내려 최종 45% 수준까지 조정된다. 이같은 인하 폭은 당초 정부가 검토했던 최대안(40%)보다 다소 완화됐지만 제약 업계가 제시한 하한선인 48.2%보다는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희귀질환 치료제의 건강보험 급여 적용에 걸리는 기간은 최대 240일에서 100일 이내로 줄어들고, 필수의약품 공급체계도 강화된다.
27일 업계에 따르면, 보건복지부는 26일 2026년 제6차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를 열어 이러한 내용의 '국민건강보험 약가제도 개선방안'을 심의·의결했다.
◇ 제네릭 약가, 오리지널의 53.55%에서 45%로 단계적 인하
복지부는 우선 제네릭과 특허 만료 의약품 약가 산정률을 현행 53.55%에서 45%로 조정한다.
높은 약가 때문에 신약 개발은 소홀한 채 제네릭에만 의존하는 영세 제약사가 난립하고, 이에 따른 비가격 경쟁으로 불필요한 건보 재정이 지출된다는 지적을 고려한 조치다.
이미 등재된 약제는 등재 시점(2012년)을 기준으로 그룹을 나눠 조정하되, 업계가 받을 영향을 고려해 그룹별로 연차별·단계적 조정을 11년간 진행한다.
다만, 의약품 연구개발비 비중이 높은 혁신형·준혁신형 제약기업의 경우 약가 산정률을 49%와 47%로 우대해 각 4년과 3년의 특례기간을 준다.
동일 성분 제네릭이 난립하는 것을 막기 위해 현재 20번째 제네릭부터 적용했던 '계단식 약가 인하'는 13번째 제네릭부터 적용하는 것으로 제도를 강화한다.
또한 동일 성분 제제 13개 초과를 유발한 제네릭에 대해서도 계단식 약가 인하를 적용하는 '다품목 등재 관리' 제도를 도입한다.
사후관리제도도 예측 가능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손볼 계획인데 사용범위 확대 등에 따른 약가 인하 시기를 연 2회로 정례화하고, 급여적정성 재평가는 재검토 필요성이 확인된 약제 중심으로 시행하기로 했다.
약가 산정률을 내릴 경우 소비자 입장에서는 본인부담금이 16%가량 줄어들게 된다.
권병기 복지부 건강보험정책국장은 "(등재 시점에 따라 약가 인하를 두 그룹으로 나눠 진행할 경우) 1단계(가 끝나면) 연 1조1000억원, 2단계 1조3000억원 등 (건보재정 절감 효과가) 11년 뒤에 연간 2조4000억원 규모에 도달한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 희귀질환 치료제 100일내 등재…의약품 수급안정 체계 마련
복지부는 또한 올해부터 희귀질환 치료제 등재 기간을 현재 최대 240일에서 100일 이내로 단축하기로 했다.
국내 개발 의약품의 대외 경쟁력 향상을 위해 약가 유연계약제 적용 대상을 올해 2분기부터 신규등재 신약, 특허만료 오리지널, 바이오시밀러 등으로 대폭 확대한다.
약가 유연계약제는 환자 접근성을 높이고자 건보공단과 제약사 간 별도 계약을 체결해 건강보험에 신속·안정적 등재를 지원하는 제도다.
연구개발(R&D) 등 혁신 노력에 대한 보상체계로 혁신형 제약기업에 대한 약가 가산(60%)을 최대 4년까지 보장하고 '준혁신형' 제약기업을 새로 지정해 역시 약가를 최대 4년간 가산(50%)해준다.
정부는 현재 48개인 혁신형 제약기업에 준혁신형 제약기업을 새로 지정할 경우 60여개 안팎의 기업이 혜택을 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와 함께 정부는 의약품 수급 안정을 위한 대응체계를 강화하고, 채산성 낮은 의약품 공급에 대한 보상을 강화한다.
우선 퇴장방지의약품 지정을 활성화하기 위해 지정기준을 손보고 직권 지정을 활성화하는 한편, 원가 보전 기준도 현실화한다.
퇴장방지의약품 공급 비중이 높은 기업을 '수급안정 선도기업'으로 지정해 최대 4년간 별도의 약가 우대(50%)도 적용한다.
생산기반 유지 등 정책적 우대가 필요한 약제에 대해서는 큰 폭으로 약가를 우대(68%)하고, 보상 강화가 필수의약품의 안정적 공급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10년 이상의 우대 기간을 보장한다.
복지부는 새 약가 제도 시행을 위해 관련 법을 개정하고, 특히 기 등재 의약품의 약가 조정은 올해 하반기 안에 착수할 방침이다.
복지부는 "약가 제도를 주요국 수준으로 선진화해 국민의 치료 접근성·보장성은 대폭 높이고 약품비 부담은 경감할 것"이라며 "또한 연구개발·필수의약품 수급 안정 노력에 대한 보상 체계를 구축함으로써 국내 제약·바이오 산업이 한단계 도약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복지부는 이날 건정심에서 특정 분야 24시간 진료체계 유지 및 야간·휴일 의료 대응을 위한 필수특화 기능 강화 지원사업에 알코올 분야를 포함하고, 소아 등 기존 분야도 추가 공모하는 방안을 함께 의결했다.
이에 따라 지원사업은 기존 △화상 △수지접합 △분만 △소아 △뇌혈관 등 5개 분야에서 6개 분야로 늘어난다.
◇제약업계 "수익성 악화 우려 여전해"
제약·바이오 업계는 정부의 약가 인하 단행에 고심이 깊어지는 분위기다.
제네릭 약가 산정률이 기존 발표된 내용보다 상향됐다는 점은 일부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수익성 악화에 대한 우려는 여전하다는 입장이다.
제약·바이오 업계는 이번 개편안이 영업이익과 연구개발(R&D) 투자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필수의약품 생산 중단과 일자리 감축 등 부작용도 생길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약가 인하는 단순 매출액 감소가 아닌 영업이익 저하로 직결된다"며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제약사는 몇 년이 걸리는 R&D 투자보다 비급여 의약품, 미용 의료기기 등 '탈 급여' 분야로 전환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이어 "인건비와 원료비, 물류비용이 계속 증가하고 있어 업계가 체감하는 손해는 더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간 제약업계는 약가 산정률 마지노선을 48.2%로 제시해왔다.
미국·이란 전쟁에 따른 유가 및 환율 동반 상승으로 업계 부담이 커진 상황에서 산정률이 하한선 밑으로 내려가면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이었다.
업계는 약가 인하를 기점으로 기업이 본격적인 비용 절감을 추진하면서 R&D와 인건비, 시설 투자 등이 저해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는 결국 신약 개발에도 악영향을 준다는 게 업계 시각이다.
특히 제네릭은 특허 회피 소송과 원료 확보 등 고려할 점이 많고 품목 개발에만 3~5년에 걸린다는 측면에서, 이미 R&D 투자가 이뤄진 제네릭 품족이 이번 약가 인하로 중단될 우려를 제기한다. 제약업계 평균 영업이익률이 약 5.5%에 불과한데 약가가 10% 이상 떨어지면서 제약사 경영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제약업계 관계자는 "약가를 한 번에 큰 폭으로 내리는 것보다는 충격이 분산되는 효과가 있을 수 있다"면서도 "혁신형과 준혁신형 기업에 정책적 혜택을 줬어도 이는 단순 충격을 완화하는 정도에 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 2012년 약가인하로 부도 위기에 놓였던 의약품 유통업체들이 또 다시 곤경에 처할 수 있다는 시각도 제기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의약품 유통업체들의 마진율은 1~2%로 극도로 적은 수준"이라며 "이 상황에서 제네릭 약가인하 부담을 안은 제약사가 추가 마진 축소를 요구한다면 유통업체들의 입지가 위태로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복지부는 이번 개편안으로 약가 제도를 주요국 수준으로 선진화해 국민 치료 접근성을 높일 수 있다는 입장이다.
또 연구개발과 필수의약품 수급 안정 노력에 대한 보상 체계를 구축해 산업 경쟁력을 높인다는 구상이다.
업계와 정부 시각이 엇갈리면서 진통은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제약업계가 약가 인하 대응을 위해 꾸린 '산업 발전을 위한 약가제도 개편 비상대책위원회'는 27일 회의를 열고 대응책 마련에 착수할 계획이다.
김현정 기자 / 경제를 읽는 맑은 창 - 비즈니스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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