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최진승 기자] 남한강 줄기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 역사에서 가장 역동적이었던 시대를 증언하는 비석과 마주하게 된다. 충주시 중앙탑면 입석마을에 위치한 '충주 고구려비(국보 제205호)'다. 충주 고구려비 전시관은 한반도 내 유일한 고구려비이자 5세기 동아시아의 강자였던 고구려의 천하관을 엿볼 수 있는 장소다.
◇ 대장간 기둥으로 쓰이던 돌덩이가 '국보'가 되기까지
충주 고구려비가 발견된 상황은 드라마틱하다. 1979년 이전까지 이 비석은 마을 대장간의 기둥으로 쓰이며 '입석(立石)'이라 불리는 이름 없는 돌덩이에 불과했다. 하지만 1979년 2월 지역 향토연구 모임인 '예성동호회'의 발견과 단국대학교 학술조사단의 확인을 통해 이 비석이 고구려의 비석임이 밝혀지면서 대대적인 관심이 쏠렸다. 1500년의 긴 잠에서 깨어난 고구려비의 발견은 한국 고대사 연구의 판도를 바꾼 일대 사건이었다.
그렇다면 이 비석이 왜 충주에 세워졌을까? 전시관은 당시의 역사적 배경을 상세히 설명한다. 장수왕의 평양 천도 이후 고구려는 남진 정책을 본격화했고, 남한강 유역의 요충지인 충주를 점령해 '국원성(國原城)'을 설치했다. 충주는 한반도 중앙에 위치한 교통의 요지이자 풍부한 철광석 생산지였다. 고구려는 이곳을 '나라의 근원이 되는 땅'으로 경영하며 한반도 중남부를 장악하는 전초기지로 삼았다.
◇ 비문에 새겨진 '천하의 주인' 고구려
전시관의 핵심은 비문의 구체적인 해석과 역사적 사실이다. 비문에 새겨진 글자들은 당시 삼국의 위계 관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특히 충주 고구려비의 4면 중에 제3면은 당시 고구려와 신라의 관계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마멸이 심한 다른 면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은 글자가 판독되어 5세기 한반도의 국제 정세를 생생하게 증언한다.
"신라 토내에 당주를 두고... 사람 300명을 모집하였다(募人三百)... 고려 태왕이 신라 매금과 대대로 형제처럼 지내기를 원하여... 상하가 화합하여 하늘의 도를 지켰다."
비문 제3면의 초입에는 '신라토내(新羅土內)', 즉 신라 영토 내에 고구려 군 사령관인 '당주(幢主)'가 머물렀다는 기록이 등장한다. 이는 당시 고구려가 신라 영토 안에 군대를 상시 주둔시키며 현지 신라 인력을 병사로 징발했음을 의미한다. 당시 신라의 주권이 고구려에 의해 상당 부분 제약받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비문에는 두 나라의 관계를 '여형여제(如兄如弟)', 즉 형과 아우의 관계로 규정한다. 하지만 이는 평등한 우애가 아니었다. 여기서 고구려 왕은 '태왕'으로, 신라 왕은 '매금'으로 칭해지며 명확한 격차를 둔다. 형인 고구려가 동생인 신라에게 질서를 가르치고 시혜를 베푸는 '종주국과 속국'의 관계가 '형제'라는 수사 속에 녹아 있는 것이다.
제3면 하단부에는 고구려 태왕이 신라의 왕과 신료들에게 의복(衣)과 허리띠(履) 등을 직접 하사했다는 내용이 이어진다. 고대 사회에서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옷을 내리는 행위는 '관직과 지위를 승인한다'는 정치적 의미를 갖는다. 신라 왕이 고구려 태왕으로부터 옷을 받아 입었다는 것은 신라가 고구려를 정점으로 하는 천하 질서에 편입되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 아마추어 동호인들에 의한 역사적 발견
전시관에는 고구려비뿐만 아니라 개마무사의 철갑기병 모형과 사신도 벽화 등을 통해 고구려의 강력한 군사력과 독자적인 정신세계를 보여준다. 삼족오 문양은 고구려인이 가졌던 '천손 의식'의 절정을 상징한다. 중국의 여러 왕조(남북조) 및 유목 민족, 일본 등과 교류하며 독자적인 세력권을 유지했던 고구려의 국제적 위상도 다루고 있다. 특히 대륙을 상대로 실리적 외교를 통해 동북아시아의 균형을 유지하는 중재자 역할을 했음을 강조한다.
전시관 한켠에는 1979년 예성동호회 멤버들이 입석마을에서 이 비석을 처음 발견했을 때의 긴장감과 설렘을 묘사하고 있다. 평범한 돌덩이로 치부될 뻔했던 비석이 문화유산 동호인들의 눈에 띄어 '고구려비'라는 제 이름을 찾게 되기까지 역사적인 순간들이 담겨 있다.
어쩌면 지역 주민들의 관심과 노력이 없었다면 국보급 유물인 고구려비가 영원히 묻혔을지도 모를 일이다. 지금도 우리 주변 어딘가에는 역사적 가치를 지닌 수많은 유산들이 잠들어 있을 것이다. 무심코 발견한 고구려비처럼 오늘부터 길에서 만난 이름 모를 돌덩이가 있다면 한번 말을 걸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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