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2024년 발표에 따르면 세계 한류 팬은 약 2억2천500만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지구 반대편과 동시에 소통하는 '디지털 실크로드' 시대도 열리고 있습니다. 바야흐로'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연합뉴스 동포·다문화부 K컬처팀은 독자 여러분께 새로운 시선으로 한국 문화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매주 게재합니다.]
◇ 아니오/아니요
둘 다 맞다. 다만 쓰임이 다르다.
'아니오'는 격식체(하오체)/문어체다. '아니' 다음에 종결어미 '오'가 붙은 형태. 예를 들면 "이것은 책이 아니오./그의 잘못이 아니오."라는 문장이 있다.
'아니요'는 상대에게 가벼운 존대/높임으로 답하는 것으로 '예/네'에 반대되는 말이다.
"아니요. 좀 어려워요./ 다음 질문에 '예, 아니요'로 답하세요."
이렇게 답을 해야 맞는 표현이다.
◇ 세상 밖으로?
감옥에서 형기를 마치고 나와 자유를 얻은 시민, 혹은 오랜 병치레나 장애 문제, 또는 자발적 은둔으로 바깥세상 경험을 못 하던 이가 비로소 태양과 구름과 비를 마주할 때, 흔히 '세상 밖으로 나오다/나왔다'라고 한다. 과거 어느 시점에 일부 기자나 방송작가가 쓴 비유적 표현이 퍼진 게 아닌가 한다.
그러나 '세상'을 일그러진 대상으로 본 출발이 잘못됐다. '세상' 자체를 정상적으로 봐야 긍정적이고 일반적 통념에도 맞는다.
사람들이 자유롭게 삶을 누리고 법과 질서가 제대로 돌아가는 사회 시스템, 그 세상! 그 세상으로 이제 죄인도 장애인도 병자도 은둔자도 '안으로' 들어가 살아야 할 것 아니겠는가?
세상 밖으로 나간다고? 그것은 '적응'이 아니고 '일탈'이다. 범법을 계획하거나, 범위를 넓히면 지구 내지 태양계를 떠나겠다는 얘기다.
그 뜻이 아니라면 '세상 속으로/세상 안으로'로 바꿔야 마땅하다.
◇ '부시다'와'부수다'
무심결에 잘 틀리는 표현 중 하나다.
'마시다'처럼 '부시다'가 원형인 줄 알고 고민 없이 '부셔'라고 하기 쉽다.
'눈부시다'와 마찬가지로 여겨서 헛갈려 그럴 수도.
동사로 기본형이 '부수다'.
따라서 활용할 땐, '부수어', 줄이면 '부숴'가 된다.
뒤에 보조용언 '버리다'가 올 때도 잘 틀린다.
'부셔버리다'가 아니라 '부숴버리다'가 맞다.
◇ 쇄말성 유감
모 신문 칼럼에서 본 내용이다.
"그렇다면 중국집의 전형성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단품 식사 메뉴를 시키면 딸려 나오는 단무지, 양파, 춘장의 조합, 그리고 볶음밥과 함께 나오는 짬뽕 국물, 테이블마다 놓은 간장병과 식초병이 같은 구성의 쇄말성이 아닐까 싶다.(후략)"
쇄말성(瑣末性)을 잘못알고 있다. '시시한 것', '사소한 것' '하찮은 것'이 쇄말이다.
영어로는 'trivialism/triviality'라 할 수 있다.
여기서는 문맥상 상투성, 혹은 전형성이 걸맞다.
그러나, 문두에 전형성을 썼기에 맺으면서 또 명사형을 들먹거리는 게 안 이쁘다. 나라면, "테이블마다 놓인 간장병과 식초병 등이겠다(등일 테다)."로 하겠다.
◇격세지감
'격세지감'(隔世之感)은 세대가 건너뛴 듯, 오랜기간이나 급격한 변화로 인해 옛날과 지금의 차이가 심해 다른 세상처럼 느껴지는 감정을 뜻하는 사자성어다.
이단어 안에 느낌(感)을 나타내는 표현이 있어 주의해서 써야한다. 번갈아서 자주 쓰는데 아주 틀렸다고 하긴 어렵다. 그러나 중복 표현에 해당하기에 주의를 기울이는 게 좋다.
"격세지감이 든다/격세지감이다."
다른 예로는 이런 게 있다.
"수확을 거두다/피해를 입다/과반수가 넘다/허송세월을 보내다/둘로 양분하다/함께 동행하다/미리 예고하다/말로 형언할 수 없다" 등이다.
◇'건데'와 '건대'
이 역시 모 신문에서 본 내용이다.
'바라건데 인구정책 컨트롤타워인 저출산고령화사회위원회의 명칭부터 저출산과 고령화를 빼고 미래를 강조하도록 바꾸는 것이(후략)'
'건데'가 눈에 확 들어왔다. 이렇게 흔히 틀린다.'건대'가맞는 표현이다.
'-건대' 자체가 하나의 어미다.
'말하는 사람이, 자신의 생각이나 바람 등을 미리 나타낼 때' 쓴다.
바라건대/생각건대/짐작건대 등에 쓰인다.
'-건대' 앞의 'ㅎ/하' 요소의 성질에 따라 -건대/-컨대가 되기도 한다.
'맹세컨대/단언컨대/장담컨대' 등이 예다.
'요컨대/예컨대'처럼 아예 굳어진 경우도 있다.
◇ 배변 유감
역시 모 칼럼과 광고 내용이다.
"이번에 유독 늘어난 N수생 여러분, 특히 수고 많으셨어요. 저도 재수를 해봐서 N수생의 심정을 알아요. 똥을 싼 것도 아니고 안 싼 것도 아닌, 빼도 박도 못한 찜찜한 기분 속에서 살았으니까요. 성인이면서도 여전히 (아니 영원히) 청소년인 것 같은,(후략)"
"아침마다 죽을똥, 살똥"
먼저 칼럼을 보면 '누다'와 '싸다'를 구분 못하고 있다. 언제부턴가생각 없이 '싸다'만 냅다 쓰고 있지 않은가.
안타깝다. 이 단어는 자신의 '의지'와 '다스림'이 관건이다.
이게 있으면 '누다'요 없으면 '싸다'다.
강아지/고양이도 변을 가리면 '누다'요, 사람도 술 먹고 인사불성으로 사달이 나면 '싸다'다. '누다'를 되찾아야 한다.
광고에 나오는 '배변'은 불쾌하고 역겹다. '죽을똥, 살똥'이라니. 게다가 고약하게 틀렸다.
신문은 보통 조간이다. 하루의 시작, 이런 광고를 보고 싶을까.
물론 아침마다 이런 고통과 당혹감을 겪는 분들도 있으리라. 그렇다해도 이럴 일은 아닌 것 같다.
스쳐 지나가는 말과 표면에 콕 박히는 활자는 다른 것이다.
그것도 틀린 표기를 동원하면서까지.
더구나 가뜩이나 아리송한 표기를 믿게 만드는 부작용까지 빚어낸다.
아마도 '똥'은 '동'을 비튼 거겠지? 그런데 아니다.
'동'이 아니라 '둥'이 맞다. '죽을 둥 살 둥'이 옳다. 의존/불완전명사다.
보통 한 가지 일에만 마음을 쏟거나 지나치게 매달릴 때 쓰는 관용표현이다.
하는 둥 마는 둥/듣는 둥 마는 둥/올 둥 말 둥/덥다는 둥 춥다는 둥, 이럴 때도 '둥'이다.
이것은 어떤 일을 하는 듯도 하고 안 하는 듯도 할 때, 혹은 이러니저러니 말이 많을 때 쓰는 조금 다른 '둥'이다.
어쨌든 '둥'은 아주 요긴한 존재다.
'동'이나 '똥'이 안 되도록 할 일이다. 이런 어쭙잖은 재치 부리지 말고.
◇ '체신머리'와 '채신머리'
이 또한 모 신문 칼럼의 내용이다. 중국 식당에서 라운드 테이블 관련 내용인듯 하다.
"내 순서가 되면 덜어내고 바로 옆자리로 보낸다. 한가지를 집중공략하거나 멀리 있는 요리를 일어서서 가져다 먹으면 체신머리 없어 보인다."
체신머리? 이 역시 자주 틀리는 표현이다.
몸'체'(體)나 몸'신'(身)과 연관이 있으리라는 선입견이 작동하는 것 같다.
아니다.'체신'이 어니라 '채신'이다. 채신은 처신(處身)이 고유어처럼 변해버린 말이다.
말이나 행동, 몸가짐을 뜻한다. 그걸 제대로 못한다는 의미가 '채신머리없다'다.
'채'를 체(體)로 헛갈리니 발음이 'ㅔ'로 고착화됐을 터. 표준어 정착이 이토록 난망하다.
'머리'는 '인정머리/버르장머리' 할 때처럼 격하/비하 의미로 쓰이는 접미사다.
'채신머리없다'라는 고정된 형태로 쓰이기에 한 단어로 인정, 띄지 않고 붙여 쓴다.
발음은 [채:신머리없:다]로 한다.
◇ 열쇠말? 열쇳말?
어느 게 맞나, 무엇이 표준어인가? 답은 둘 다 아니다.
이건 문제다. 이러니 '핵심어/키워드'를 버젓이 쓰는 게 아닌가. 웬만한 표제어는 인정하는 '우리말샘'에도 누락돼있다. '열쇳말'을 표준국어대사전에 빨리 넣어야 한다. 국어심의회는 뭐하나?
차제에 현재는 '머리말'이 표준어인데 이것도 '머릿말'로 바꿔야 여러모로 설득적이다.
'머리말'은 현실 발음을 못 따라가거나 외면한 경우다.
어엿한 한 단어로, 사이 시옷 제2조건 "뒷말의 첫소리 'ㄴ, ㅁ' 앞에서 'ㄴ' 소리가 덧나는 경우"에 부합한다.
'아랫마을/곗날/제삿날' 등이 그 예다.
강성곤 현 KBS 한국어진흥원 운영위원
▲ 전 KBS 아나운서 ▲ 정부언론공동외래어심의위원회위원 역임 ▲ 현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언어특위 위원 ▲ 전건국대·숙명여대·중앙대·한양대겸임교수 ▲ 현 가천대 특임교수
*더 자세한 내용은 강성곤 위원의 저서 '정확한 말, 세련된말, 배려의 말', '한국어 발음 실용 소사전'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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