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국 타격 우려…美농가도 고통 호소
"우크라전 발발 때보다 심각할 수도"
(서울=연합뉴스) 김태균 기자 = 이란 전쟁으로 교통 요지인 호르무즈 해협이 사실상 봉쇄되며 글로벌 비료 공급망이 흔들리고 식량 가격 상승 압력이 커지고 있다고 미국 CNBC 방송이 2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중동은 질소와 요소 등 핵심 비료 원료의 주 생산지이며, 전 세계에서 해상으로 운송되는 비료의 약 3분의 1은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간다.
CNBC에 따르면 지난 달 28일 개전 이후 비룟값은 가파르게 올랐다. 질소 비료의 기준점 역할을 하는 이집트산 과립형 요소는 전쟁 전 톤(t)당 400∼490달러에 거래되다가 최근에는 700달러선까지 올랐다. 가격 상승률이 최대 75%에 달한다.
◇ "비료 못 주면 작황 감소"
리서치 업체 알파인 매크로는 23일 자 보고서에서 요소와 암모니아 가격이 전쟁 전과 비교해 각각 약 50%와 20% 급등했고, 포타시(칼륨)와 유황도 가격이 뛰었다고 전했다.
시장 조사 기관 CRU의 크리스 로슨 시장정보 담당 부사장은 CNBC와의 인터뷰에서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바레인, 이란 등이 출하하던 비료 제품이 끊기면서 현재 수출 가능 물량의 약 30%가 시장에서 사라진 상태"라고 진단했다.
로슨 부사장은 특히 질소 비료 공급난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질소는 식물의 성장을 촉진하는 핵심 성분으로 자연 상태에서 소모량이 많아, 질소 비료를 제때 주지 못하면 작황이 바로 줄어든다는 것이다.
로슨 부사장은 "아직 질소 비료 비축량이 있기 때문에 버틸 수 있지만, 올해 하반기부터는 비료 부족의 여파로 수확량이 타격을 입는 상황이 나타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영국 자산운용사 나인티원의 데이비드 헤일 포트폴리오 매니저도 "칼륨이나 인산 비료는 한 시즌 정도 안 줘도 큰 지장이 없지만, 질소 비료는 절대 이렇게 거를 수 없다"며 "질소 투입량과 수확량 사이에는 직접적 상관관계가 존재한다"고 강조했다.
비료 시장 조사 기관 아거스에 따르면 중동은 전 세계에서 매매되는 유황의 절반 가까운 양을 생산하고 있으며, 요소의 글로벌 공급 비중도 3분의 1에 달한다.
이 때문에 이번 사태는 2022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을 때 일어났던 비료 수급난과 비교해 그 규모가 훨씬 크고 대체 공급처를 찾기 어려운 것으로 전문가들은 본다.
◇ 애그플레이션 우려
비료 부족으로 밀, 옥수수, 쌀 등 주요 작물의 수확이 줄면 먹거리 가격이 뛰는 '애그플레이션'이 일어날 위험이 커진다.
이 문제의 최대 피해자는 신흥국들이다. 나인티원의 헤일 매니저는 "식량 수입량이 많은 여러 아프리카 국가와 비료 수입에 크게 의존하는 인도가 특히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전했다.
농업 대국이자 주요 비료 생산국인 미국도 이 여파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고 CNBC는 짚었다. 미국이 자국에서 쓰이는 비료를 다 자급자족하진 못하기 때문이다.
미국비료협회에 따르면 미국은 질소·인산·칼륨 비료의 전체 국내 소비량 중 약 3분의 1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이 때문에 중동발 공급난은 미국에서도 비룟값을 빠르게 올리고 있다. 비료 가격 폭등은 고유가와 맞물려 농업 생산 비용을 증가시키며 농가 수익성을 떨어뜨리고 국내 인플레이션 압박을 높이게 된다.
전문가들은 미국에서도 비료 조달 중단이나 제품 배급제 실시 등 위기 상황이 얼마든지 닥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미국 내 54개 주요 농업 단체는 최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공동 서한을 보내 현재 고통 받는 농가를 위해 시장 구제책을 마련해달라고 촉구했다.
이들 단체는 서한에서 "미국 전역에서 파종기가 시작된 시점에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연료·비료 가격이 치솟아 피해가 막대하다"며 "이번 물류 대란은 미국 식량 안보를 위협하고 전 세계적인 문제를 일으킬 것"이라고 했다.
t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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