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동구 천호동 일대가 재건축 이주 '도미노'에 들어가면서 지역 부동산 시장에서 '공급공백' 우려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천호우성아파트가 조합 설립 5년 만에 이주를 시작하며 사업 속도 측면에서는 '성공 사례'로 평가받고 있지만 시장에서는 전혀 다른 신호가 감지된다. 단기간에 수천 세대가 동시에 이동하는 구조가 만들어지면서 전세·월세·매매 시장 전반에서 '공급 공백'이 현실화되고 있어서다.
이미 천호동 인근 현장에서는 "좋은 집을 고르는 게 아니라 남아 있는 집을 쫓아다니는 상황"이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온다. 일부 매물에는 하루 수차례 문의가 몰리고 집을 보러 온 여러 명의 수요자가 동시에 계약을 시도하는 '현장 경쟁'까지 벌어지고 있다. 특히 올해 안에만 약 2000세대 이상이 연쇄적으로 이주할 예정이어서 주거 수급 불균형이 심화될 거라는 전망이 나온다.
천호우성 부터 삼익그린2차·삼익맨션·삼익파크까지…올해만 2000세대 이주 예정
서울 강동구 천호동에 위치한 천호우성아파트는 2021년 조합 설립 이후 불과 5년 만에 이주 단계에 돌입하며 재건축 사업의 속도를 입증했다. 같은 시기 조합 설립인가를 받은 삼익그린2차, 삼익맨션, 삼익파크보다도 빠른 속도다.
정비업계에 따르면 천호우성아파트는 이달 9일부터 조합원 이주 절차를 공식적으로 시작했다. 이주 기간은 오는 6월 16일까지 약 3개월간 진행된다. 천호우성아파트 주택재건축정비사업조합은 이주가 완료되는 대로 올해 하반기 철거에 착수할 계획이며 2027년 착공을 거쳐 2031년 입주를 목표로 하고 있다.
시행사는 롯데건설이 맡았다. 지하 4층~지상 15층, 629세대 규모의 아파트로 탈바꿈할 예정이다. 교회가 현금청산을 결정하면서 기존 3층이던 상가는 2층으로 줄이고 대신 아파트 가구를 추가로 확보했다. 또한 법적 상한 용적률까지 욕심을 부리지 않아 다른 일반적인 재건축 단지와 달리 임대주택이 없다는 점도 장점으로 꼽힌다.
현장 분위기는 이를 그대로 반영한다. 천호우성아파트 단지 내부는 연일 이삿짐 차량과 인부들로 북적이고 있다. 단지 곳곳에는 이사 일정 안내문과 차량 통제 표지가 붙어 있고 이미 이주를 마친 세대가 남긴 가전제품과 생활 폐기물이 곳곳에 쌓여 있다. 저녁이 되면 불이 꺼진 빈 세대가 빠르게 늘어나며 '비어가는 아파트'의 분위기가 드러난다.
다만 주민들 사이에서는 재건축 기대감과 별개로 당장 거주할 곳을 구하기 어렵다는 하소연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강동구 내에서만 약 5000세대 규모의 4개 단지가 동시에 재건축을 추진 중이어서 전세 및 매매 물량 부족에 대한 부담이 커지고 있다. 천호우성아파트를 시작으로 인근 주요 단지들까지 연쇄적으로 이주 일정이 잡히면서 전세 및 매매 물량이 빠르게 감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효진 씨(49·여)는 "이 학교 때문에 이동 범위를 크게 넓힐 수 없는데 주변 아파트는 이미 매물이 거의 없다"며 "빌라까지 알아보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선뜻 선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또 다른 주민 박지성 씨(44·남)는 "이사 날짜가 다가오는데도 아직 집을 구하지 못했다"며 "급한 상황이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 집으로 들어가고 싶지는 않아 기다리는 중이다"고 밝혔다. 이어 "다주택자 매물이 일부 나올 가능성도 있어 기대하고 있지만 확신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공인중개업계에 따르면 오는 6월 말 천호우성아파트의 이주가 마무리되면 인근 대단지인 삼익파크 아파트(1092세대)가 7월부터 본격적인 이주에 돌입할 예정이다. 이어 삼익가든 아파트(768세대) 역시 11월 이주를 목표로 준비에 속도를 내고 있다. 단지별로 세부 일정에는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대부분 연내 이주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처럼 단기간 대규모 세대의 주거지 이동은 단순한 이주를 넘어 지역 주택 수급구조 자체를 흔드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강동구는 이미 학군과 생활 인프라가 잘 갖춰진 주거 선호 지역으로 외부 수요가 꾸준히 유입되는 곳이다. 여기에 재건축 이주 수요까지 더해지면서 '기존 수요 + 추가 수요'가 동시에 시장을 압박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1600세대 대단지도 매물 단 '7개'…전세 계약 현장 경쟁률 7:1 '품귀' 심화
상황이 이렇다보니 전월세 시장에선 매물 품귀 현상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25일 기준 천호우성 인근의 '암사 e-편한세상'은 현재 전세 매물이 전혀 없고 월세 역시 단 1건만 남아 있는 상태다. 1600세대 이상 규모의 프라이어팰리스도 전세 3건, 월세 4건 수준에 그쳐 대단지조차 수요를 감당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부동산업계 안팎에선 향후 시장 상황에 대해서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하반기 예정된 이주가 일정대로 진행된다면 단기간 수급 불균형이 더욱 심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여기에 금리 수준, 대출 규제, 부동산 정책 등 외부 변수까지 맞물릴 경우 시장 변동성이 한층 확대될 수 있다는 점도 주요 변수로 지목된다.
이춘지 공인중개사는 "현재 우성아파트 이주가 진행되면서 나홀로 아파트는 물론 일반 아파트까지 전반적으로 매물이 부족한 상황이다"며 "인근 둔촌동까지 범위를 넓혀 매물을 찾아봐야 할 정도다"고 설명했다. 이어 "지금은 한 단지 이주만 진행 중이지만 곧 삼익파크와 삼익가든까지 이주가 시작되면 전세 매물은 더욱 찾기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며 "아파트 전세가 부족해지면 월세로 이동하고 그마저도 여의치 않으면 빌라 전·월세로 수요가 옮겨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결국에는 빌라 매매까지 고려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며 "빌라는 아파트에 비해 환금성이 낮고 가격 상승폭도 제한적이라 선호도가 낮은 편이지만 선택지가 줄어들면서 실수요자들이 어쩔 수 없이 매입까지 고민하는 흐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 현장에서는 '속도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조건이 괜찮은 매물의 경우 하루에 5~7명이 동시에 방문하는 일이 흔해졌고, 집을 본 직후 바로 계약금을 넣는 '즉시 계약' 사례도 늘어나는 등 실수요자들 사이에서 눈치싸움이 치열해지고 있는 모습이다.
이 과정에서 일부 다주택자들은 매물을 시장에 내놓고 있다. 오는 5월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유예 종료를 앞두고 세 부담을 피하려는 움직임이다. 다만 시장에서는 이러한 공급이 단기 수요 폭증을 흡수하기에는 부족하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전문가들은 향후 시장 변동성이 더 커질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서진형 광운대 교수는 "여러 재건축 단지가 동시에 이주를 시작하면 단기간 수요 급증으로 시장이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현상이 발생한다"며 "특히 강동구처럼 선호도가 높은 지역일수록 체감 부족은 더 크게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이어 "현재는 초기 단계지만 하반기로 갈수록 수요가 더욱 집중될 가능성이 높고, 전세 가격 상승 압력도 점진적으로 확대될 것"이라며 "금리, 대출 규제, 정책 변수까지 겹칠 경우 시장 불안은 더욱 커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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