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 기증 위해선 가족 동의도 필수
한 사람의 생명을 구하면 ‘의인’이라 부릅니다. 뇌사 장기기증은 단 한 번의 결정으로 최대 8명의 생명을 살릴 수 있는 더 큰 의미를 지닌 선택입니다. 하지만 국내 뇌사자 장기기증은 지속적인 감소세를 보이며 역대 최저 수준까지 떨어졌습니다. 반면 인구고령화로 장기이식을 기다리는 환자는 빠르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사람이 기증을 기다리다가 삶을 마감하고 있습니다. 이에 헬스경향은 뇌사자 장기기증의 의미와 현주소를 짚고 구조적 원인을 분석, 이를 극복하기 위한 과제를 살펴봤습니다.<편집자 주>
장기기증은 ‘숭고한 선택’이라고 배워왔다. 누군가의 생명을 살릴 수 있는 결정, 언젠가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고도 생각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 항상 ‘시도’만 담겼을 뿐 솔직히 이번 취재가 아니었다면 장기기증 희망등록을 하지 못할 가능성이 99%였다.
신청방법은 방문·온라인·우편접수 등 3가지인데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에 취재 겸 직접 방문해 희망등록을 하기로 했다. 본부를 방문하자 담당직원은 차분하게 후원 안내설명을 이어갔다. 기증형태, 유의사항 등 약 15분 정도 설명을 들었다.
현재 장기기증형태는 ▲사후 안구(각막) 기증 ▲뇌사 시 장기기증(신장·간장·췌장·췌도·심장·폐·소장 등) ▲인체조직(뼈·연골·근막·피부·양막·인대·건·심장판막·혈관 등) 등 총 3가지가 있다. 망설임은 길지 않았다. 과감하게 3가지를 다 선택했다. 이때 ‘기증희망자 표시여부’에 체크해야 운전면허증 신규발급, 갱신, 재발급 시 기증희망자임이 적시된다.
카드 발급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15분쯤 지나자 ‘희망등록카드’가 동봉된 팸플릿 하나를 받았다. 손바닥 크기의 작은 카드였다. 이름과 함께 ‘장기기증 희망자’라는 문구 아래 KONOS 등록번호, 기증형태가 적혀있다. 또 신분증에 부착할 수 있는 장기조직기증 스티커도 동봉돼 있다.
그 순간 예상치 못했던 감정이 밀려왔다. 자랑스럽고 뿌듯한 마음과 함께 급격히 밀려드는 불안감과 예상치 못한 상실감. 솔직히 말하자면 ‘후회’라는 감정이었다. ‘내가 왜 그랬을까, 너무 성급한 결정은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순식간에 뇌리를 스쳤다. ‘내가 정말 이 선택을 끝까지 유지할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질문도 던졌다.
막연하게 생각했던 기증이 갑자기 ‘현실’이 됐다. 이 카드는 단순한 희망등록증이 아니라 ‘내가 죽은 이후’를 전제로 한 약속이었다.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었지만 손에 쥐는 순간 그 무게가 달라졌다. 머릿속에 내 사후의 신체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장기기증은 개인의 의사만으로 완결되지 않는다. 실제 기증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가족 동의가 필요하다. 결국 이 결정은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남겨질 이들과 연결된 선택이었다. 그제야 왜 많은 사람들이 ‘좋은 일인 줄 알면서도 쉽게 하지 못하는지’ 조금은 이해가 됐다.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담당자는 “가족들 몰래 하는 경우가 많은데 미리 가족이 알고 있으면 뇌사 시 결정이 상대적으로 빠릅니다”라는 말을 들었다. 바로 부모님께 전화해 말문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사실대로 말씀드렸다. 처음에는 노발대발하셨지만 우려 섞인 걱정이었을 뿐 오히려 잘했다는 칭찬을 받았다.
사실 장기기증희망등록은 언제라도 철회할 수 있다. 하지만 누군가는 이 선택을 통해 삶을 이어간다. 실제로 국내에서는 수많은 환자가 이식을 기다리다가 아쉽게 생을 마감하고 있다. 기자가 느낀 불안과 망설임은 분명 현실이지만 동시에 그 선택이 만들어 낼 결과 역시 외면할 수 없었다.
지갑 속에 넣어둔 카드 한 장이 계속 눈에 밟힌다. ‘장기기능 희망등록증’. 아직 완전히 익숙해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불편함 자체가 선택의 무게라는 생각이 들었다. 장기기증은 ‘좋은 일’이라서가 아니라 ‘쉽지 않기 때문에 더 의미 있는 선택’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