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건설·에너지 산업의 지도가 요동치고 있다. 수십 년간 건설사의 '캐시카우'였던 주택 사업이 고금리와 공사비 상승이라는 한계에 직면한 사이, 'SMR'(소형모듈원자로)이 새로운 생존 전략으로 부상했다. 단순 시공을 넘어 전력 생산과 운영까지 아우르는 '에너지 디벨로퍼'로의 진화는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특히 AI 산업의 폭발적 성장으로 전력 수요가 급증하면서 SMR은 탄소중립과 에너지 안보를 동시에 해결할 '게임 체인저'로 주목받고 있다. 이에 비즈니스플러스는 국내 주요 기업들의 SMR 사업 재편 현황과 글로벌 패권 다툼의 실체를 집중 조망해본다.[편집자주]
국내 건설업계의 '성장 방정식'이 뿌리째 바뀌고 있다. 지난 수십 년간 건설사들의 곳간을 채워왔던 주택 사업이 고금리와 공사비 상승, 미분양 리스크로 한계에 직면하자 대형 건설사들이 일제히 'SMR'을 포스트 주택 시대의 핵심 먹거리로 낙점했다. 이제 건설사는 단순한 시공사를 넘어 전기를 생산하고 공급하는 '에너지 디벨로퍼'로의 진화를 선언하고 나섰다.
최근 국내 대형 건설사들의 사업보고서와 조직 개편안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단연 SMR이다. 전통적인 토목·건축 중심의 사업 구조에서 벗어나 에너지 밸류체인 전반을 아우르는 전략이다. 가장 공격적인 행보를 보이는 곳은 삼성물산, 현대건설, DL이앤씨 등 이른바 '빅플레이어'들이다.
삼성물산은 세계 1위 SMR 기업인 미국의 뉴스케일파워(NuScale Power)에 총 7000만달러를 투자하며 전략적 파트너십을 공고히 했다. 단순한 재무적 투자를 넘어 뉴스케일파워가 추진하는 글로벌 프로젝트의 시공권을 우선 확보하는 구조다. 현대건설 역시 미국의 홀텍 인터내셔널(Holtec International)과 손잡고 SMR-160 모델의 글로벌 독점 판매 및 EPC(설계·조달·시공) 권한을 따냈다. 현대건설이 확보한 수주 파이프라인만 약 40조원 규모에 달한다는 것이 투자업계의 분석이다.
DL이앤씨의 행보도 매섭다. 북미 SMR 선두권 기업인 엑스에너지(X-energy)에 2000만달러를 투자하며 전략적 파트너로 합류했다. 최근에는 엑스에너지와 SMR 플랜트 설계 계약을 체결하며 기술력을 입증했다. 업계 관계자는 "주택 경기가 꺾인 상황에서 SMR은 단순한 신사업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필수 선택지'가 됐다"며 "플랜트 부문 인력을 SMR 전담 조직으로 전면 배치하는 추세"라고 전했다.
업계에서 주목하는 지점은 최근의 변화가 '지분 투자' 수준을 넘어 실제 시공(EPC) 단계로 진입했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기술력을 가진 해외 벤처기업에 자금을 대는 방식이었다면, 이제는 직접 도면을 그리고 현장을 관리하는 실행 단계로 넘어왔다.
삼성물산이 최근 SMR 투자 비중을 조정하며 건설 수행 역량 강화에 집중하기로 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게 업계 평가다. SMR 시장이 '장밋빛 전망'에서 '실질적 발주' 국면으로 넘어왔다는 판단에서다. DL이앤씨가 미국 SMR 프로젝트의 EPC 파트너로 공식 참여하게 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는 SMR 기술이 실험실을 벗어나 상업화 궤도에 올랐음을 의미한다. 특히 미국 정부가 원전 투자 확대와 규제 완화에 속도를 내면서 국내 건설사들에게는 거대한 '기회의 창'이 열리고 있다. 한국 건설 특유의 '공기 준수'(On-time) 능력과 시공 노하우가 표준화·모듈화가 핵심인 SMR 시장에서 강력한 무기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건설사들이 SMR에 목매는 이유는 단순히 시공 물량 확보 때문만이 아니다. '발전 및 운영'이라는 고부가가치 시장에 진입하기 위해서다. GS건설의 경우 SMR뿐만 아니라 태양광, 수소 등 신재생에너지를 결합한 발전 사업자로의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직접 전기를 생산해 판매하는 수익 구조를 갖춰 경기 변동에 취약한 수주형 사업의 한계를 극복하겠다는 전략이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과거 원전 사업이 정부 발주 물량을 따내는 수동적 방식이었다면, SMR은 건설사가 직접 부지를 선정하고 수요처를 발굴해 발전소를 운영하는 능동적 방식으로 바뀔 것"이라며 "건설사의 기업 가치(Valuation) 산정 기준 자체가 '건설'에서 '에너지'로 이동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결국 SMR 대전의 승패는 누가 더 빠르게 실제 가동 가능한 모델을 현장에 구현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덧붙였다.
박성대 기자 / 경제를 읽는 맑은 창 - 비즈니스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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