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인간이 쓰지만 그 무대는 언제나 자연이었다. 최근 영화 '왕과 사는 남자'로 다시금 주목받는 단종의 비극적인 역사를 품은 곳, 강원도 영월을 찾았다. 어린 왕을 묵묵히 맞이했던 영월의 아름다운 자연과 독특한 지형을 중심으로 가족과 함께 떠나기 좋은 지리 여행 코스를 소개한다.
서강이 만든 육지 속의 섬, '청령포'
영월 시내 인근 서강이 거대한 원을 그리며 돌아 나가는 지점에 청령포가 있다. 삼면은 강으로 막히고 뒤편은 험준한 암벽이 버티고 선 이곳은 배가 없으면 나갈 수 없는 '육지 속의 섬'이다. 유배된 단종이 마주했을 첫인상도 이와 같았을 것이다.
지형학적으로 청령포는 과거 강바닥이 솟아올라 계단 모양을 이룬 '하안단구' 지형이다. 덕분에 강바닥에서나 볼 수 있는 둥근 자갈들이 육지 위에서 돌탑을 이루는 장관을 볼 수 있다. 울창한 소나무 숲과 수백 년 된 '관음송', 그리고 정순왕후를 그리워하며 쌓은 망향탑 너머의 '하식애(물길이 깎은 절벽)'는 슬픈 역사와 지질학적 신비로움을 동시에 간직하고 있다.
신선이 노닐던 바위, '선돌'
방절리 서강 변에 솟은 높이 70m의 '선돌'은 석회암 지형이 비바람에 깎여 만들어진 자연의 조각품이다. 마치 거대한 도끼로 내리쳐 쪼개놓은 듯한 모습은 단종과 정순왕후의 끊어진 인연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선돌 앞 평평한 공터 역시 하안단구 지형으로,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촬영 당시 청령포를 대신해 촬영지로 낙점되기도 했다. 2006년 영화 '가을로'의 촬영지이기도 했던 이곳은 대지가 솟아오르고 빗물이 암석을 녹여낸 카르스트 지형의 특징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법도를 벗어나 자연에 순응한 왕릉, '장릉'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장릉은 일반적인 조선 왕릉의 규칙에서 많이 벗어나 있다. 도성에서 멀리 떨어진 영월 산비탈에 조성된 이유는 충신 엄흥도가 단종의 시신을 수습해 자신의 선산 끝자락에 몰래 안치했기 때문이다.
가파른 지형을 따라 조성된 탓에 능침으로 향하는 길은 제법 가파르다. 또한 홍살문과 정자각을 연결하는 '신도와 어도'가 직선이 아닌 'ㄱ'자로 굽어 있는데, 이는 지형을 깎지 않고 자연에 그대로 순응했기 때문이다. 비록 화려한 명당은 아니지만, 단종을 지키려 했던 영월 사람들의 온기가 담긴 진정한 안식처라 할 수 있다.
여행자의 쉼터, '영월 트래블라운지'
영월역 맞은편에 위치한 '영월 트래블라운지'는 드라마 '모텔 캘리포니아'의 촬영지였던 건물을 리모델링한 공간이다. 레트로한 분위기 속에서 무료 짐 보관, 휴대전화 충전, 여행 정보 확인이 가능하다.
인근에는 영월 특산물인 다슬기를 주재료로 하는 식당들이 모여 있어 시원한 다슬기 해장국으로 여정을 시작하기 좋다. 뚜벅이 여행자라면 지자체 지원으로 운영되는 '영월 관광택시'를 이용해 베테랑 기사의 가이드와 함께 효율적인 여행을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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