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해협 봉쇄 여파로 국제 원유 시장의 불안이 심화되고 있다. 일부 중동산 원유 가격이 배럴당 160달러까지 치솟으며 시장 내 가격 왜곡 현상이 두드러지는 가운데, 단기적인 유가 하락 흐름에도 불구하고 장기적인 상승 압력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최근 호르무즈 해협을 거치지 않고 수출 가능한 아랍에미리트(UAE)산 원유 현물 가격은 배럴당 160달러에 거래됐다. 이는 브렌트유와 미국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 가격이 100달러 안팎에서 움직이는 것과 비교해 현저히 높은 수준이다. 시장에서는 이러한 초고가 거래를 단순한 일시적 현상이 아닌 공급 불안의 신호로 해석하고 있다.
특히 아시아 정유사들이 디젤과 항공유 생산을 유지하기 위해 중동산과 유사한 성질의 원유 확보에 나서면서 글로벌 원유 수요가 더욱 확대되고 있다. 이에 따라 특정 지역과 원유 종류에 따른 가격 격차가 확대되며 시장 전반의 상승 압력으로 이어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협상 국면 전환을 통해 유가 안정 가능성을 언급했지만, 시장에서는 이를 ‘가짜 안정’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유조선이 자유롭게 해협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이란의 교전 중단이 선행되어야 하는데, 협상이 단기간에 성과를 내지 못할 경우 현재의 공급 차질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유가가 전쟁 이전 수준으로 회복되기 위해서는 단순한 해협 재개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걸프 산유국들의 감산 정책 철회와 함께 이란 및 러시아에 대한 제재 완화까지 병행되어야 실질적인 공급 정상화가 가능하다는 분석이다. 무디스 애널리틱스의 마크 잔디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가격은 로켓처럼 오르고 깃털처럼 떨어진다”는 에너지 업계의 격언을 인용하며, 전쟁 종료 이후에도 생산과 물류 정상화까지 최소 6~8주의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전망했다.
또한 원유 가격은 전쟁 뉴스에 즉각 반응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소비자 가격에 반영되기까지는 복잡한 유통과 금융 과정을 거치며 수주에서 수개월이 소요된다. 이 같은 시차 효과와 공급 차질이 맞물리면서 지역별 가격 왜곡 현상도 심화되고 있다. 상품 데이터 업체 OPIS에 따르면 올해 들어 두바이유 가격은 150% 이상 급등한 반면, 브렌트유 선물 가격 상승률은 64%에 그쳤다.
시장에서는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당시와 유사한 흐름이 재현될 가능성에도 주목하고 있다. 당시 유가는 급등 이후 수개월에 걸쳐 점진적으로 하락했지만, 이번에는 중동 지역 생산 감소까지 겹쳐 충격이 더욱 장기화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높은 에너지 가격은 결국 소비자 물가 상승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글로벌 경제 전반에 부담 요인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JP모건은 현재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하루 약 1600만 배럴의 원유 공급이 시장에서 사라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향후 전략 비축유 방출을 고려하더라도 전 세계는 여전히 하루 1000만 배럴 규모의 공급 부족을 겪을 것으로 예상되며, 이는 국제 유가 상승 압력을 지속적으로 자극할 것으로 보인다.
이창우 기자 cwlee@nv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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