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로드] 중동발 지정학적 리스크가 커지면서 외국인이 코스피 시장에서 이달에만 22조원 넘게 팔아치우며 ‘셀코리아’(Sell Korea) 기조를 강화하고 있다. 이미 지난달 월간 기준 역대 최대 순매도액을 넘어선 가운데, 사상 최대 기록 경신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24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달 1일부터 이날까지 외국인 투자자는 유가증권시장에서 22조2천570억원어치를 순매도했다. 이는 지난달 기록한 월간 순매도액 21조730억원을 이미 웃도는 규모다. 지난달 순매도액이 월간 기준 역대 최대였던 만큼, 이달 ‘역대 최대’ 기록 갈아치우기가 눈앞으로 다가온 셈이다.
일별 흐름을 보면 외국인은 이달 들어 4일, 10일, 18일 단 3거래일을 제외하고는 모두 ‘팔자’에 나섰다. 특히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 직후 첫 거래일이었던 3일에는 하루에만 5조1천490억원을 순매도하며 매물을 쏟아냈다. 이어 지난 23일에도 3조6천750억원을 순매도해 이달 들어 두 번째로 큰 매도 규모를 기록했다. 당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8시간 내 호르무즈 해협을 완전히 개방하지 않으면 이란 발전 시설을 초토화하겠다”고 경고한 발언이 투자심리를 급랭시켰다.
중동 전쟁으로 국제 유가 급등세가 장기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면서 원유 수입 의존도가 높은 한국 시장에서 외국인 자금 이탈은 가속화하는 모습이다. 여기에 안전자산 선호로 달러 가치가 뛰면서 원/달러 환율 급등도 외국인 매도세를 자극했다. 주간 거래 종가 기준 이달 들어 원/달러 환율은 3.85% 상승했으며, 지난 23일에는 장중 1,510원을 넘어 17년여 만의 최고 수준을 찍었다.
외국인 이탈이 이어지면서 코스피 내 외국인 보유 비중도 줄고 있다. 금융정보업체 연합인포맥스에 따르면 지난 23일 기준 코스피 시장에서 외국인 보유 주식 시가총액은 1천663조6천90억원으로 전체 시가총액(4천459조3천204억원)의 37.32%를 차지했다. 지난달 26일 38.10%였던 외국인 비중은 이달 들어 37%대로 내려앉았다.
다만 전문가들은 최근의 대규모 순매도가 공포성 투매라기보다는 연초 강하게 오른 주도주를 중심으로 한 차익 실현 성격이 강하다고 분석한다. 이상연 신영증권 연구원은 “글로벌 AI 투자 사이클 기대감 속에서 연초 이후 외국인 보유 비중이 높은 대형주 중심으로 주가 상승 폭이 크게 확대됐고, 이에 따른 기존 보유 물량 정리가 전체 순매도 흐름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외국인 수급은 기존 주도주의 차익 실현과 동시에 새로운 업종으로 포지션 재배치가 병행되는 국면”이라며 “단기적인 순매도 규모 자체보다 외국인 자금이 어떤 업종으로 재배치되고 있는지를 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실제 수급 흐름을 보면 외국인은 이달 들어 반도체주는 대거 팔고 보험·화장품 등 다른 업종은 적극적으로 담는 ‘갈아타기’를 이어가고 있다. 거래소 집계에 따르면 이달 들어 이날까지 외국인이 코스피에서 가장 많이 순매수한 종목은 삼성생명으로, 2천90억원어치를 사들였다. 이어 셀트리온(1천990억원), 에이피알(1천880억원), HD현대중공업(1천550억원), 두산에너빌리티(1천530억원) 등이 순매수 상위권에 올랐다.
반면 같은 기간 삼성전자는 10조5천390억원어치를 순매도하며 외국인의 ‘최대 매도’ 종목이 됐다. SK하이닉스도 3조9천920억원이 팔려 두 번째로 큰 순매도 규모를 기록했다. 연초 글로벌 AI 투자 기대를 타고 급등했던 대형 반도체주에 대한 차익 실현이 집중된 셈이다.
전문가들은 외국인 자금이 본격적으로 국내 증시로 돌아오기 위해서는 유가와 환율의 방향 전환이 선행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조준기 SK증권 연구원은 “추세 추종형 성격이 강한 외국인 자금이 다시 유입되려면 유가나 환율이 방향을 바꾼 뒤 그 추세가 일정 기간 유지돼야 한다”고 진단했다.
현재 매도세가 집중되고 있는 반도체 업종의 실적 전망 상향 여부도 핵심 변수로 꼽힌다. 한지영 키움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올해 영업이익 컨센서스(시장 평균 전망치)가 추가로 상향될지 여부가 관건”이라며 “3월 중 반도체 업종에서 공격적인 순매도를 단행한 외국인의 수급 여건을 되돌릴 수 있는 재료라는 점에서 그 중요도를 높게 봐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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