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모르는 경남 외국인 노동자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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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모르는 경남 외국인 노동자의 삶

에스콰이어 2026-03-25 00:00:10 신고

중학교 2학년 때였다. 사회 시간이었고 교과서에서 미국을 소개하길 ‘이민자의 나라’라고 했다. 아하, 어쩐지 미드 보면 피부색 다른 양반끼리 영어로 잘만 얘기하더라. 사실 수업을 귀담아듣진 않았다. 한참 와우 하느라 학교를 여관처럼 다니던 시기였다. 당연히 시험 만점보다 라그나로스(〈워크래프트〉 시리즈의 등장인물)를 어떻게 사냥할지가 내 주 관심사이기도 했다. 다만 당시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은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 우리도 곧 외국인들과 함께 살게 된다는, 그때가 되면 절대로 차별하면 안 된다는, 그 당시엔 전혀 와닿지 않던 이야기였다. 2005년의 마산은 길거리에 외국인 관광객이 나타나면 다들 무슨 연예인처럼 바라보던 지역이었다. 외국인하고 산다고요? 농담도 잘하셔라….

그리고 이 글을 쓰는 지금, 내가 사는 진동면의 빌라 바로 옆집엔 베트남 부부가 미장원을 하고 있고, 그 맞은편엔 아시아 마트 간판이 떡하니 놓여 있다. 아침 일찍 작업복 차림으로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는 이는 모두 외국인 노동자다. 뒤이어 30분 후엔 진동초등학교로 등교하는 학생 무리가 보인다. 시끌벅적한 사투리의 숲속에서 이주 가정 학생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주중에 걸어서 30분 거리 광암 해수욕장에 가면 노인과 외국인 부부밖에 안 보인다.

선생님 예언처럼 외국인은 이미 한국 사회의 일부가 되었다. 여기서 외국인이란 정의를 좀 좁혀보자. 서울이나 수도권에 거주하는 독자 상당수가 ‘한국 거주 외국인’ 하면 주로 조선족을 떠올린다. 그럴 법도 하다. 인구 대비 체류 외국인 현황을 보면 2025년 기준 중국계가 35.2%, 약 98만 명이다. 한국 누아르 영화에서 나오는 외국인 악당은 죄다 조선족이다. 매일 대한민국 적화통일을 걱정하는 음모론자들의 주요 반찬거리도 어쩐지 조선족이다. 좌우간 딴 나라에 일하러 왔다가 별 수난을 다 당하는 그 조선족을, 정작 지방에선 보기가 어렵다. 조선족은 타 외국인 대비 ‘비교적’ 소통이 원활하고 문화 동질성도 강하다. ‘상대적’으로 좋은 환경과 많은 일자리가 있는 수도권 정착이 수월하다. 굳이 농장이나 공장처럼 힘든 일터만 많고 최저임금도 안 지키는 곳이 널린 남쪽 지방까지 내려올 이유가 없다. 그나마 제조업 일자리가 튼실한 경남은 베트남인과 태국인이 자주 보인다. 이들과는 말은 잘 안 통하지만 최소한 밥이나 종교 문제로 싸울 일은 없다. 산업 기반이 약한 경북이나 호남쯤 가면 그마저 수가 줄어서, 통계에서 ‘기타’로 잡히는 외국인이 많아진다. 일단 이 글이 쓰인 곳은 경남이므로 ‘외국인 노동자’로 지칭한 이들은 동남아시아 사람들을 뜻한다.

지방의 외국인 노동자는 어떻게 살까? 사실 한국인이 답하긴 어려운 질문이다. 일단 미국처럼 이주민 세대가 몇 번이고 바뀌어 언어가 통일된 상태가 아니다. 그나마 비슷한 한국어를 쓰는 조선족들의 일상도 잘 모르는데 동남아 사람 사는 사정을 어이 알리오. 대구에 이슬람 사원을 짓네 마네, 울산에 아프간 난민을 받네 마네 하는 기사가 올라올 때면, 으레 내국인과 외국인 간의 갈등을 떠올리기 쉽다. 나도 사실 그럴 줄 알았다. 한 30년 지나면 늙은 토착민과 젊은 외국인끼리 고향을 두고 프로토스와 저그마냥 싸울 줄 알았다. 아니더라. 그냥 서로 마주칠 일이 별로 없다. 놀러 나와도 대부분 같은 국적 사람끼리 뭉쳐 다니니 함께 섞일 일이 좀처럼 없다.

내가 한국에서 사는 외국인의 존재를 처음으로 알게 된 시기는 2015년, 신입 용접공으로 입사했을 때였다. 경쟁이 붙었다. 사장님은 한 달 안에 더 잘하는 사람에게 용접 작업을 맡기겠다고 했다. 내 입사 동기이자 라이벌은 인도네시아인 이크볼. 자리다툼은 손쉽게 내 승리로 끝났다. 사실 용접은 이크볼이 더 잘했다. 단지 독실한 무슬림이었고 당시가 라마단 기간이었을 뿐. 이크볼은 내국인 노동자조차 개밥집이라고 까는 함바식당에서 쌀밥만 먹다가 영양실조로 쓰러졌다. 이후에도 일하는 곳마다 외국인 노동자와는 꼭 마주쳤다. 국적도 다양했다. 캄보디아인 썸낭, 몽골인 샤크나, 이집트인 미나, 베트남인 하준, 네팔인 데덴…. 함께 오래 일했지만 거의 일터에서만 보는 사이였다. 따로 협업하는 관계도 아니어서 관계를 돈독히 할 이벤트도 없었다.

본격적으로 외국인 무리와 친해진 계기는 2025년, 거제 옥포 조선소에서 일할 때였다. 회사에 마침 필리핀인 세 명이 있었다. 개중에 나와 함께 용접하던 로니는 나이도 비슷했고 무척 유쾌해서 우리는 금세 친해졌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우리를 이어준 매개체는 페이스북. 로니는 요즘 젊은이들이 페이스북 안 쓴다고 한탄했다. 페이스북이 ‘파란 노인정’이라는 드립은 글로벌 스탠티드다. 로니는 페이스북에 해외 취업 정보를 공유하거나 웃긴 릴스를 저장해 놓았다. 가끔 현장에서 일하는 모습을 생중계하기도 했다. 해외 취업이 궁금한 친구가 많은지 열 명씩은 꾸준하게 보더라. 나도 가끔 출연했는데 두 번 명장면이 연출됐다. 물 펌프가 역류해서 얼굴에 맞는 장면, H빔 잡고 턱걸이하다가 반장님한테 한 소리 듣는 장면이 고스란히 나갔다. 어느 순간부터는 채팅 창에서 자기들끼리 필리핀어로 얘기하다가 내가 나오면 ‘welcome’ 하며 영어로 반겨줬다.

친해지고 나니 자연히 주말에 만나 놀 일이 몇 번 있었다. 우리 회사 필리핀인들은 모두 외국인 기숙사에 살았는데, 점심 먹고 농구한 뒤, 자전거에 기름칠 좀 하다가 덤벨과 머신 좀 깔짝이고선 저녁을 먹고 헤어지곤 했다. 지출 비용이라곤 농구 끝나고 마신 음료수값이 전부. 교회 수련회보다 더 건전하게 휴일을 보냈다. 회사 밖으로 놀러 가도 콘텐츠는 등산이나 낚시였고, 저녁에 술판을 벌여도 편의점 앞에서 필라이트 홀짝이는 정도였다. 내가 먼저 사지 않는 한 외식이라는 사건은 벌어지지 않았다. 가끔 빈티지 숍에서 건져온 옷을 선물하면 무척 좋아하며 계절 내내 입고 다니곤 했다.

이 루틴만 봐도 알 수 있듯 외국인은 좀처럼 돈을 쓰지 않는다. 특히 국가 GDP가 낮을수록 악착같이 안 쓴다. 자국에 송금하면 할수록 이익이니 버티는 것만이 최상책이다. 많이 과장하자면 네팔인이나 캄보디아인에게 한국에서의 삶은 웹툰 〈머니 게임〉과 비슷하다. 이 악물고 버틸수록 가져갈 수 있는 돈이 많아진다. 레쓰비 한 캔이 5000원이라고 생각해 보라. 졸려도 찬물로 때우게 되지 않겠는가. 이 탓에 식당이나 카페에선 거의 만날 수 없고 주로 다이소나 할인마트, 편의점 같은 곳에서나 잠깐 보이기 일쑤다. 최근 거제 조선소 근처엔 1000원 빵집 창업이 늘고 있는데 다분히 외국인 노동자를 겨냥한 사업이다. 지역 상인들은 외국인 노동자가 돈을 안 쓴다고 아우성친다.

필리핀인들 역시 한국에서 계속 살 마음이 없었다. 주로 비자 만료까지 최대한 돈을 땡긴 다음 자국에서 사업을 하거나 수빅 조선소에서 경력직으로 취직하길 원했다. 어차피 뜰 나라니까 한국어 공부 역시 꺼린다. 지방에 이민을 받으려고 비자를 풀었는데, 외국인은 정작 한국에 정주할 마음이 없는 셈이다.

우리가 한국을 다른 나라에 소개할 땐 화려한 서울의 풍경만 보여 준다. 하지만 정작 그 영상을 보고 한국에 대한 환상을 품고 온 외국인들이 사는 곳은 경기도 외곽과 그보다 서울에서 먼 지방이다. 게다가 한국의 주요 언론사는 죄다 서울에 있으니, 이미 다문화 국가가 되었음에도 당신이 외국인의 삶을 느낄 일은 별로 없다.

만사를 정치로 보는 이들은 외국인 노동자 차별 혹은 내국인 노동자 홀대를 손쉽게 입에 올리지만 진짜 문제는 따로 있다. 돈 한 푼 없는 외국인이 한국에서 살아야 할 이유가 별로 안 보인다는 점이다. 살벌한 노동 강도 대비 임금이 박하고 생활 물가는 비싸니 소비할 엄두도 못 낸다. 정주하려면 한국에 매력을 느껴야 하고, 한국에 매력을 느끼려면 돈 쓰고 놀아봐야 할 텐데, 놀 수가 없으니 이주하는 이가 없고, 이들이 돈을 안 쓰니 지역 주민도 죽을 맛이다.

굳이 외국인까지 생각이 도달할 필요도 없다. 대다수 지방 블루칼라 남성 청년들이 겪는 고통 역시 똑같다. 경력을 쌓아도, 더 힘든 일을 해도 최저임금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괴이한 산업구조. 이 안에선 수십 년이 지난 뒤에도 여전히 한국어를 쓰는 외국인 이웃을 만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방치된 지방의 월급날, 외국인 노동자는 이달에도 미련 없이 송금 버튼을 누른다. 놀고 먹을 돈을 남기지 않고.


천현우는 1990년 마산에서 태어나 2010년부터 12년간 하청 공장과 용접 현장을 전전하며 쌓은 경험을 〈주간경향〉에 연재 칼럼으로 풀어낸 바 있다. 이 연재 칼럼, '쇳밥일지'와 '쇳밥이웃'의 원고들을 묶고, 전사를 더하고 개고해 단행본 〈쇳밥일지〉로 엮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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