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과의 대화가 진행 중이라며 호르무즈 해협 개방 관련 최후통첩 시기를 이번 주말로 연장했지만 안도는 이르다는 분석이다. 이란은 협상 사실을 부인했고 분석가들은 접촉이 있었더라도 초기 메시지 전달 단계에 그쳤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르면 이번 주 파키스탄에서 회담이 열릴 수 있다는 긍정적 전망과 트럼프 대통령이 시장 안정과 해병대 도착 시기를 고려해 시간 벌기식 발언을 던졌다는 의혹이 공존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23일(이하 현지시간)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지난 이틀간 미국과 이란은 중동에서의 적대행위를 완전히 종식시키기 위한 매우 생산적이고 좋은 대화를 나눴다"며 "이번 주 내내" 대화가 지속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에 따라 "이란 발전소와 에너지 기반시설에 대한 모든 군사 공격을 5일간 유예"한다고 선언했다. 이틀 전 위협한 이란 발전소 공격 시한이 다가오자 이를 연기한다고 밝힌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후 취재진에 공격 유예가 미 특사 스티브 위트코프와 사위 재러드 쿠슈너가 지난 주말 이란의 "가장 존경 받는" 지도자와 "매우 강력한 대화"를 나눈 데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테네시주 멤피스에서 열리는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플로리다주에서 전용기(에어포스원) 탑승 전 취재진과 질의응답을 갖고 "거의 모든 주요 사안에 대한 합의에 이르렀다"며 "협상 타결 가능성을 매우 높게 본다"고 덧붙였다. 이란 지도부 누구와 대화 중인지, 제안된 협상 내용은 무엇인지 등 구체적 내용은 밝히지 않았다.
미국 증시 개장 두 시간 전 나온 이 발표는 일단 시장을 안심시키는 데는 성공했다. 주말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48시간 이내 개방하지 않을 땐 이란 에너지 시설을 폭격하겠다고 위협하고 이란은 그 경우 역내 기반시설 공격은 물론 호르무즈 해협에 기뢰를 설치하겠다고 맞불을 놓으며 23일 아시아 증시 요동쳤고 미국 증시도 악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 시점이었다.
23일 미 스탠다드앤푸어스(S&P)500 지수는 전 거래일 대비 74.52(1.15%) 오른 6581에 거래를 마쳤다. 다우존스30 산업평균지수도 631(1.38%) 오른 46208.47에 거래를 마쳤다.
유가는 크게 하락했다. 23일 런던 ICE 선물거래소에서 브렌트유 선물 가격은 전 거래일보다 10.49달러(9.86%) 하락한 배럴당 95.92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뉴욕상업거래소에서 서부텍사스유(WTI) 선물 가격은 전 거래일보다 10.1달러(10.28%) 하락한 배럴당 88.13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외신 "이르면 이번 주말 파키스탄서 미·이란 대화"
그러나 시장 이외의 곳에선 구체적이지 않은 발표를 두고 휴전 협상의 진행 정도와 진정성 등을 두고 혼란이 이어졌다.
우선 이란은 협상 진행을 부인했다. 모하메드 바게르 갈리바프 이란 의회의장은 23일 소셜미디어를 통해 "미국과의 협상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며 트럼프 대통령 발표가 "금융 및 석유시장을 조종하고 미국과 이스라엘이 갇힌 수렁에서 탈출하기 위해"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갈리바프 의장은 이란 쪽 협상자로 예상됐던 알리 라리자니 이란 최고국가안보회의 사무총장을 이스라엘이 제거한 뒤 협상 대상자로 유력하게 거론되는인물이다.
<로이터> 통신은 이스라엘 당국자와 사안에 정통한 두 소식통에 따르면 이란 쪽 협상자가 칼리바프 의장이라고 전했다.
다만 미 CNN 방송은 갈리바프 의장이 협상이 진행 중이라는 점은 부인했지만 협상 재개를 위해 양쪽 간 메시지가 오갔을 가능성까지 부인하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을 보면 23일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도 "미국과 이란 간 진행될 것으로 알려진 대화를 환영"하며 이러한 일이 진행되고 있었다는 걸 인지하고 있었다고 밝혀 미·이란이 어떤 수위에서든 메시지를 주고 받았다는 추측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이란이 이번 전쟁에서 걸프국 미군기지 및 에너지 시설을 공격하고 있는 가운데, 이란 공격이 비껴간 파키스탄이 중재를 주도하고 있다는 보도도 나왔다.
23일 <파이낸셜타임스>(FT)는 사안에 정통한 두 관계자를 인용해 파키스탄이 트럼프 행정부와 이란 고위 인사들이 참여할 회담의 개최지로 자국 수도 이슬라마바드를 제안했고 회담이 이르면 이번 주에 열릴 수 있다고 전했다.
신문은 파키스탄 육군 참모총장 아심 무니르가 트럼프 대통령과 22일 통화했다고 이 통화에 대해 잘 아는 두 소식통을 인용해 설명했다. 또 파키스탄 고위 관리들이 이란과 위트코프 및 쿠슈너와의 비공식 접촉을 중재 중이라고 사안에 정통한 두 소식통을 인용해 덧붙였다.
<로이터>도 파키스탄 당국자를 인용해 이번 주 JD 밴스 미 부통령, 위트코프 및 쿠슈너가 이슬라마바드에서 이란 당국자들을 만날 것으로 예상된다고 보도했다. 통신은 백악관이 관련 질의에 트럼프 대통령과 무니르 총장과의 통화는 확인했지만 "상황은 유동적"이라며 "백악관에서 공식 발표가 있을 때까지 회담에 대한 추측이 최종적인 것으로 가정돼선 안 된다"고 답했다고 전했다.
파키스탄 외에도 이집트, 튀르키예(터키), 오만 등이 호르무즈 해협 통과와 휴전을 목표로 협상 노력에 참여하고 있다고 CNN은 덧붙였다.
전문가 "대화 초기 단계 불과할 것"…영 총리 "잘못된 안도감 빠지지 말아야"
다만 미국과 이란 간 접촉이 있었더라도 초기 단계의 메시지 교환에 그쳤을 것이라는 게 대체적 시각이다. CNN은 두 지역 소식통에 따르면 미국은 파키스탄을 통해 이란에 15개 항목 요구사항을 전달했지만 이란이 그 중 어떤 조건에 동의했는진 불분명하다고 보도했다.
한 소식통은 방송에 이 중 몇 가지 항목은 이란 쪽 수용이 "거의 불가능"할 거라고 말했고 다른 소식통은 이 요구 목록이 지난해 협의에서 미국이 이란에 제안한 내용과 거의 유사하다고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3일 취재진에 이란과의 합의 사항에 대한 질문을 받고 "15개 항목"을 언급하기도 했다.
<파이낸셜타임스>를 보면 영 싱크탱크 채텀하우스 중동·아프리카국장 사남 바킬은 여러 국가들이 분쟁 완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이를 전쟁 종식이 가까워졌다는 신호로 받아들이진 않는다"며 "이란이 굴복할 거라고 보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들이 협상 우위에 있다고 느낀다"고 분석했다. 그는 아직 "어느 쪽에서도 타협 의지를 보지 못했다"며 "트럼프는 스스로 만든 이 위기에서 빠져나가지 못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스타머 총리도 23일 이란 분쟁이 "상당 기간 지속될 수 있다는 가정 아래" 정부가 움직이고 있으며 "조기에 빨리 종결될 거라는 잘못된 안도감에 빠져선 안 된다"고 자신의 팀에 경고했다고 밝혔다.
미 해병대 수천 명 중동으로…일부 이번 주말 도착 예정
트럼프 대통령이 협상과 공격 유예를 언급하는 동안 미 해병대 수천 명이 중동으로 향하고 있어 시간 벌기라는 의혹까지 제기됐다. <파이낸셜타임스>를 보면 일본에서 출발한 해병원정대(MEU) 2200명 대원들은 이번 주말, 캘리포니아에서 출발한 해병대 2200명을 포함한 병력은 3~4주 가량 뒤에 이 지역에 도착할 예정이다.
미 싱크탱크 민주주의수호재단 이란국장 베남 벤 탈레블루는 "대통령의 발언은 시장을 안정시키는 동시에 해병대원이 도착할 시간을 벌어준다"고 짚었다.
트럼프 대통령 발언의 혼란이 부각되며 24일 브렌트유 가격은 장중 다시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서기도 했다.
한편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23일 회담 진행 중에도 이스라엘은 공격을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스라엘 매체 <타임스오브이스라엘>을 보면 네타냐후 총리는 이날 성명을 통해 이스라엘은 자국의 "핵심 이익"을 보호할 것이며 이란과 레바논에 대해 "공습을 계속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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