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예고했던 이란 발전소 공격을 전격 유예하면서 폭등하던 국제 유가가 하루 만에 10% 넘게 급락했다. 이란에 제시한 '48시간 최후통첩' 시한 당일, 트럼프 대통령이 군사 행동 대신 종전 협상 카드를 꺼내 들자 글로벌 금융시장은 일단 최악의 시나리오는 피했다는 안도감을 나타내고 있다.
트럼프 "핵 포기 등 합의 도달"… 국제유가 장중 배럴당 96달러까지 추락
23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와 런던 ICE 선물거래소에 따르면, 5월 인도분 브렌트유 선물 가격은 전장 대비 10.9% 하락한 배럴당 99.94달러로 마감하며 100달러 선 아래로 내려앉았다.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역시 10.3% 하락한 88.13달러를 기록했다. 장 초반 아시아 시장에서 배럴당 114달러를 웃돌며 '오일 쇼크' 공포를 자극했던 유가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표 직후 한때 96달러까지 저점을 낮추는 기록적인 변동성을 보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자신의 SNS '트루스소셜'을 통해 "지난 이틀간 미국과 이란 양국이 중동 지역의 적대행위를 완전하고 전면적으로 해소하기 위해 매우 유익하고 생산적인 대화를 나눴음을 기쁘게 보고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심도 있고 상세하며 건설적인 이 대화의 내용과 분위기를 바탕으로, 이란의 발전소 및 에너지 인프라에 대한 모든 군사 공격을 5일간 유예하도록 국방부에 지시했다"고 덧붙였다.
특히 스티브 윗코프 중동특사와 재러드 쿠슈너 등 미국 대표단이 이란 측과 '핵무기 포기'를 포함한 거의 모든 쟁점에서 상당한 합의에 도달했다고 구체적으로 주장하며 시장의 위험 선호 심리를 자극했다.
이란 "24일간 대화 없었다" 전면 부인… 안개 속 중동 정세에 증시 상승폭 반납
하지만 시장의 낙관론은 이란 측의 즉각적이고 강한 반박으로 인해 다시 불확실성에 휩싸였다. 이란 외무부 대변인은 국영 IRNA 통신을 통해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강요된 전쟁이 계속된 지난 24일 동안 미국과 어떤 협상이나 대화도 없었다"고 공식 부인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주장한 '성공적 협상'을 정면으로 반박한 것이다.
이 발표 직후 유가는 낙폭을 일부 축소하며 다시 요동쳤고, 다우(1.38%↑), S&P500(1.15%↑), 나스닥(1.38%↑) 등 일제히 반등했던 뉴욕증시 3대 지수도 상승 폭을 일부 반납하며 마감했다. 안전자산인 금 선물 가격 역시 온스당 4,407.30달러로 3.66% 하락하며 일시적인 안도 랠리를 보였으나, 이란의 부인 소식에 하락 폭을 만회하려는 움직임이 감지되기도 했다.
IEA "70년대 오일쇼크급 위기"…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변수
글로벌 에너지 전문가들은 이번 유가 하락이 일시적 현상에 그칠 수 있다고 경고한다. 파티 비롤 국제에너지기구(IEA) 사무총장은 이날 연설에서 "현재 상황은 1970년대 두 번의 오일 쇼크와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에너지 충격을 모두 합쳐놓은 수준"이라며 극도의 경계감을 나타냈다.
이란이 원유 수송 요충지인 호르무즈 해협을 사실상 봉쇄하고 있는 상황에서, 5일간의 유예 기간 동안 실질적인 통로 개방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유가는 언제든 다시 폭등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미국은 이미 선박에 적재된 러시아산 및 이란산 원유에 대한 제재를 한시적으로 면제하며 수급 안정에 사활을 걸고 있다. 하지만 이란은 자국산 원유 제재 면제 조치에 대해 "더 판매할 원유가 남아있지도 않다"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이 확보한 '5일의 시간' 동안 물밑 외교전이 어떤 결실을 보느냐에 따라 글로벌 인플레이션의 향방이 결정될 전망이다.
[폴리뉴스 차미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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