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을 향해 호르무즈 해협 개방을 요구하며 '48시간 최후통첩'을 했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데드라인을 몇 시간 앞두고 이란과 휴전 관련 대화를 하고 있다며 이란 발전소 공격을 5일간 미뤘다.
트럼프 대통령이 '초토화'라는 표현을 쓰며 이란을 강하게 압박하자 이란도 보복을 예고하면서 국제유가가 치솟고 중동 긴장이 최고조에 달했던 것을 감안하면 양측이 휴전 협상에 돌입했다는 소식에 국제사회는 안도감을 갖게 됐다.
이란도 미국과 대화가 없다고 반박했다가 이후 중재국을 통해 미국의 메시지를 받았다고 인정했다. 다만 이란 지도부 주요 인사들이 대부분 사망한 상태여서 실효성 있는 협상이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추가 병력을 중동에 집결해 지상전에 돌입하기 위한 시간끌기용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지상군 투입으로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해제할 때까지 수일이 걸리는 만큼 당분간 유가 상승을 억지하려는 의도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미국과 이란이 실제로 휴전에 이르게 될지 혹은 트럼프 대통령이 지상군을 투입할 것인지에 관심이 모아지는 가운데 결국 앞으로 5일이 마지막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이란·미국 모두 합의 원해…핵포기 등 주요쟁점 합의"
트럼프 대통령은 23일(이하 현지시간) 자신의 SNS에 앞서 예고한 이란 발전소 공격을 5일간 유예한다고 밝혔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1일 이란에 '48시간' 시한을 제시하며 호르무즈 해협을 개방하지 않으면 이란 발전소를 초토화하겠다고 최후통첩을 했다.
하지만 시한 만료일인 이날 협상 개시 사실을 공개하며 공격 보류로 입장을 바꾼 것이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이틀간 미국과 이란 양국이 중동 지역의 적대행위를 완전하고 전면적으로 해소하기 위해 매우 유익하고 생산적인 대화를 나눴다"며 "이란의 발전소 및 에너지 인프라에 대한 모든 군사 공격을 5일간 유예하도록 국방부에 지시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주 이란과의 대화가 계속될 것이고 협상 결과에 따라 발전소 등 공격 여부가 결정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같은 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도 전쟁 종식을 위해 이란과 협상을 진행 중이며, 주요 쟁점에서 이란과 합의가 이뤄지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스티브 윗코프 중동특사와 재러드 쿠슈너 등 미국 대표단이 이란의 최고위급 인사와 전날 저녁까지 협상을 성공적으로 진행했다면서 이란의 '핵 무기 포기'를 비롯해 "거의 모든 쟁점에서 합의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들은 핵무기를 갖지 않을 것이다. 그게 첫 번째"라며 "그들은 거기에 동의했다"고 말했다. 합의가 최종 타결될 경우 이란의 농축우라늄 비축분을 미국이 직접 수거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오늘은 아마 전화로 협의를 할 것 같다. 하지만 매우 곧 우리는 만나게 될 것"이라며 "이란은 합의하고 싶어 하고, 우리 역시 합의를 원한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향후 호르무즈 해협을 미국과 이란이 공동 관리할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다.
그는 "공동으로 통제될 수 있을 것"이라며 "아마도 나와 아야톨라(이란 최고지도자)가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미국의 공격으로 이란 지도자들이 사망해 자동적으로 정권 교체가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이란 "미국과 대화 없어" 부인…이후 "美 메시지 받았다"
미 온라인매체 악시오스는 이스라엘 당국자를 이용해 이란 측 협상 상대는 모즈타바 현 최고지도자의 측근인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의회 의장이라고 보도했다.
하지만 이란은 이를 즉각 부인했다.
이란 외무부 대변인은 "강요된 전쟁이 계속된 지난 24일 동안 미국과 어떤 협상이나 대화도 없었다"고 밝혔다고 이란 국영 IRNA 통신이 보도했다.
이란 측 협상자로 거론됐던 갈리바프 이란 의회 의장도 엑스(X)에서 "미국과 어떤 협상도 없었다"며 "가짜뉴스"라고 일축했다.
이처럼 이란이 협상 사실을 부인한 것은 협상 주도권을 둘러싼 신경전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란 지도부가 국내 정치 상황을 고려해 강경한 입장을 보이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실제 이란 당국은 대화 사실을 인정했다.
이란 외무부 에스마일 바가이 대변인은 우방국들을 통해 전쟁 종식을 위한 미국의 협상 요청 메시지를 받았으며 이란의 원칙적 입장에 따라 적절히 응답했다고 밝혔다.
가디언도 23일 미국과 이란이 비공식 접촉으로 긴장완화를 타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의 중동 특사 스티브 윗코프와 압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무부 장관이 비공식적으로 접촉하고 있으며 이집트, 오만, 파키스탄, 카타르, 튀르키예 등 여러 중재국이 관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스라엘 언론 "美, 이란 전쟁 종식 4월 9일 제시" "파키스탄서 협상 가능성"
외신 "美, 이란 의회 의장과 협상"…"대표성 불확실해 성과 미지수"
이스라엘 언론도 내달 초 전쟁 종식이 예상된다고 보도했다.
예디오트 아흐로노트 일간지는 23일 "워싱턴은 4월 9일을 전쟁 종식 목표일로 정했다"며 "미국과 이란의 회담은 이번 주 후반 파키스탄에서 열릴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미국 온라인 매체 악시오스도 이스라엘 당국자를 인용해 미국과 이란의 대면 협상이 이르면 이번 주 이슬라마바드에서 열릴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미국 측에서는 JD 밴스 부통령, 스티브 윗코프 중동 특사, 트럼프 대통령의 사위인 재러드 쿠슈너 등이 참석할 전망이며 이란 대표단으로는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의회 의장 등이 거론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파키스탄 외교부 타히르 후세인 안드라비 대변인도 이날 CNN과의 인터뷰에서 "양측이 동의한다면 파키스탄은 언제든 회담을 개최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셰바즈 샤리프 파키스탄 총리도 전날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샤리프 총리는 소셜미디어(SNS) 엑스(X·옛 트위터)에 "(중동) 지역 평화를 위해 건설적 역할을 수행하겠다"고 밝혔다.
파키스탄은 미국의 동맹국이지만 미군 기지가 없어 다른 중동 국가와 달리 이란의 미사일 공격을 받지 않았다. 이란과 국경을 맞댄 이웃국으로 시아파 무슬림이 많아 양국은 오랜 유대 관계를 맺어왔다.
문제는 이란이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 등 지도부 주요 인사들이 사망했다는데 있다. 즉, 미국이 누구와 협상을 해야 하는지조차 불확실한 상황인 것이다.
갈리바프 의장이 실권을 쥐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지만 그의 대표성이 불확실해 협상 성과를 낼 수 있을지 미지수라는 관측이 나온다.
추가병력 집결까지 '연막' 가능성…"미군, 하르그섬 장악작전 가능성"
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추가 병력의 중동 지역 집결까지 시간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공격을 보류한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현재 주일미군 소속 제31 해병원정대를 비롯해 수천명 규모의 미군 병력과 강습상륙함이 중동으로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상군을 하르그섬에 투입해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해제하고, 이를 통해 이란의 완전한 항복을 받아내려한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23일 미군 고위 당국자들이 미 육군 82공수사단 소속 전투여단과 사단본부 인원 일부를 이란 작전에 배치하는 방안을 놓고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NYT는 미군이 82공수사단을 동원하는 결정을 내린다면 18시간 안에 세계 어디든 전개할 수 있는 신속대응군(IRF)인 약 3천명의 여단이 이란의 핵심 원유 수출 기지인 하르그섬 장악에 투입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르그섬은 호르무즈 해협과는 멀리 떨어져 있으나 미국이 이곳을 장악하면 이란 원유 수출 능력에 중대한 타격을 줄 수 있어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풀도록 하는 강한 압박용 지렛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82공수사단 신속대응군은 2020년 바그다드 주재 미국 대사관 피습 대응, 2021년 아프가니스탄 철수 작전,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전 동유럽 전선 방어 등에 투입된 적이 있다.
[폴리뉴스 김승훈 기자]
Copyright ⓒ 폴리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