렌즈 판매점서 주문 후 1분이면 물건 출고·포장까지 끝
일반의약품 판매 현장은 외부 비공개…음료 못 집는 치명적 실수도
(베이징=연합뉴스) 김현정 특파원 = "너무 심심한데, 이야기나 좀 할까요?"
23일 오후 '중국의 실리콘밸리'라고 불리는 베이징 하이뎬구 중관춘(中關村)의 대형 쇼핑몰 앞 무인 소매점.
고객을 상대하며 음료를 판매하던 173㎝ 키의 휴머노이드 로봇(G1)이 자연스레 말을 걸었다.
예상치 못한 제안에 몇 살인지 묻자 "두 살이고, 이제 막 일을 시작했다"고 설명한 이 로봇은 하루 몇 시간이나 일하느냐는 질문에는 "24시간 항상 대기하고 있다, 당신이 좀 도와달라"고 농담 섞인 답을 내놨다.
중국의 대표적인 로봇 스타트업 갤봇(Galbot·인허퉁융<銀河通用>)이 개발해 작년 8월부터 '인허타이쿵창'(銀河太空艙·은하우주선)이라고 불리는 9㎡ 공간에 배치한 휴머노이드 로봇은 최대 2천명의 고객을 쉬지 않고 상대할 수 있다.
'콜라' '사이다' 등 구체적인 음료명을 언급하며 주문하면 별도 원격제어 없이 이를 곧바로 인지해 매대에서 해당 제품을 손으로 집어 올 뿐 아니라 고객과 능동적으로 상호작용하며 날씨나 상황을 고려해 제품을 추천하기도 한다.
이 로봇 직원은 현재 베이징, 상하이, 쑤저우, 항저우, 청두, 샤먼 등 전국 20여 도시의 소매점과 편의점 60여곳에서 '근무' 중이다.
최근에는 활동 영역을 약국으로 넓히는 데까지 성공했다.
갤봇 측 설명에 따르면 이 회사는 최근 베이징 하이뎬구 시장감독국으로부터 '약품경영허가증'을 취득해 휴머노이드를 활용한 의약품 판매 상업화의 문턱을 넘었다.
'로봇 약사'는 사전에 지정된 '갤봇 스마트약국'(智慧藥房·즈후이야오팡)에서 5천종 이상의 약품을 구분하고, 주문 내역에 맞게 포장·출고하는 업무를 99.95%의 정확도로 수행할 수 있다.
이날 갤봇 측은 3급 의료기기로 분류된 콘택트렌즈 1천여종과 렌즈 세척액 등을 판매하는 매장(젠싱옌츠·肩形眼篪)에 배치된 휴머노이드의 작동 현장을 공개했다.
콘택트렌즈는 면봉, 거즈 등과 함께 의료기기로 분류되므로 큰 틀에서 이 판매점 역시 약국의 한 종류라는 것이 회사 관계자의 설명이다.
현장 휴머노이드는 주문받은 뒤 1분여만에 매대에서 물건을 찾아 포장을 완료했고, 이후 곧바로 도착한 배달 기사는 등록된 번호를 입력하는 방식으로 포장된 렌즈를 수령해 출발했다.
주문에서 포장, 출고 후 배달 기사에게 전달되기까지 소요된 시간은 5분도 채 되지 않았다.
베이징일보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중국에서의 야간(오후 10시∼다음날 오전 8시) 의약품 구매는 전체 주문의 20% 수준을 차지하지만, 전국적으로 24시간 운영 약국의 비율은 10% 미만이다.
자오위리 갤봇 최고전략책임자(CSO)는 "독자 개발한 식별·분류·포장 등 기술이 적용된 휴머노이드의 자율 작업을 통해 심야 시간대나 외진 지역의 의약품 수요에 대응할 수 있다"며 "약품 유효기간도 디지털로 관리하고, 유효기간이 임박한 약은 즉시 판매를 중단한다"고 설명했다.
자오 CSO는 이어 "자가 진단 시스템으로 한정된 의사·간호사 인력을 대신해 질병 초기 진단 등 건강 분야에도 활용될 수 있다"고 부연했다.
갤봇은 이 휴머노이드를 공장 내 품질검사, 상·하차 등 고강도·고반복 산업 작업에 투입하기 위해 여러 다국적 기업과 협력하고 있다.
자오 CSO는 대표적인 예로 보쉬, 닝더스다이(寧德時代·CATL), 베이징자동차그룹(BAIC), 상하이자동차(SAIC), 도요타, 현대차 등을 언급하며 "노동자를 보조해 고강도 노동을 해결하는 작업을 돕는 업무에 투입하기 위해 협력 중"이라고 부연했다.
다만 이날 갤봇 측은 최근 '약품경영허가증' 취득에 따라 휴머노이드를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일반의약품 선별·포장·출고 현장은 공개하지 않았다.
회사 관계자는 해당 허가증 취득의 정확한 날짜도, 해당 현장은 공개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다.
상업용 매장에 배치된 휴머노이드의 업무 수준이 다소 허술한 모습도 여러 차례 노출됐다.
취재진이 찾은 소매점에서 근무하던 휴머노이드는 한 고객으로부터 이온 음료를 주문받았지만, 해당 음료수병을 순간 손으로 집지 못했다.
또한 대화 도중 '몇 개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아직 춤추는 것은 허락받지 못했다"는 엉뚱한 답을 내놓기도 했다.
hjkim0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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