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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건설, 보증금 온전히 못 돌려받을 수도
23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서울 성동구 성수전략정비구역 제4지구(성수4지구) 재개발 사업에서 시공사 입찰보증금 처리 방식을 둘러싸고 논란이 불거졌다. 해당 사업은 롯데건설과 대우건설이 각각 500억원씩 총 1000억원의 보증금을 납부하고 입찰에 참여했던 대형 사업지다. 공사비 규모만 1조3628억원에 달한다.
앞서 조합은 양사의 개별 홍보 금지 규정 위반 등을 이유로 서울시 제재를 받았고 이에 따라 시공사 선정 입찰이 무효 처리됐다. 이후 양사에 입찰보증금을 반환하는 과정에서 논란이 불거졌다. 조합 내부에서는 대우건설의 개별 홍보 행위와 관련해 신고된 14건에 대한 신고포상금 1400만원을 대우건설이 납부한 입찰보증금에서 차감하는 방안이 검토됐다.
즉 조합 운영비 대신 건설사가 납부한 보증금에서 포상금을 선제적으로 공제한 뒤 반환하겠다는 것이다. 롯데건설도 1건의 개별 홍보 행위가 확인됐으나 조합이 아닌 외부 경로를 통해 접수된 사안으로 분류되면서 보증금 차감 대상에서는 제외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아직 실제 차감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으며 보증금 원금이 아닌 이자에서 포상금을 충당하는 방안도 함께 검토되고 있다. 조합 관계자는 “아직 논의 중으로 법무법인과 검토를 거쳐 결정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입찰보증금이 단순 보증 역할을 넘어 제재 재원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업계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본래 입찰보증금은 건설사의 ‘찔러보기식 입찰’을 방지하고 시공사 선정 과정에서 중도 이탈이나 계약 불이행을 막기 위한 장치다. 일정 금액을 걸어 실제 수주 의지가 있는 업체만 참여하도록 하는 것이 핵심 취지다.
그러나 보증금이 포상금 지급이나 차감 등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제도 취지와 괴리가 커지고 있다는 평가다. 시공사 선정 절차는 건설사의 보증금 납부 시점부터 총회 의결까지 통상 2~3개월가량 소요된다. 단독응찰로 유찰될 경우 일정이 수개월 이상 지연되기도 한다. 입찰보증금은 이 기간 동안 조합이 보관·관리하며 여기서 발생하는 이자는 통상적으로 조합에 귀속된다.
예컨대 1000억원 규모 보증금은 연 2% 안팎 금리를 가정할 경우 월 약 1억6000만원 수준의 이자를 발생시킬 수 있다. 이처럼 발생하는 이자를 포상금 재원 등으로 활용하는 방안까지 논의되면서 보증금이 사실상 조합의 자금 운용 수단으로 기능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는 입찰보증금의 본래 취지인 ‘참여 의지 확인’을 넘어 건설사 자금을 조합이 일정 기간 통제하는 구조로 변질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성수4지구 사례처럼 차감 여부와 방식이 논의되는 과정 자체가 제도 운용의 불확실성을 보여준다는 평가다.
◇보증금 상한 없어 1000억 넘게 요구하기도
보증금 규모가 급격히 커진 점도 논란이다. 과거 수십억원 수준이던 입찰보증금은 최근 들어 수백억원, 많게는 1000억원을 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서울 동대문구 이문4구역은 1200억원, 용산구 이촌동 한강맨션은 1000억원, 광주 광천동 재개발은 900억원의 보증금을 요구한 바 있다.
이처럼 금액이 커진 배경에는 정비사업 수주 경쟁 과열이 있다. 조합 입장에서는 자금력을 갖춘 건설사를 선별하고 사업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보증금 규모를 높이는 경향이 강해졌다. 현행 제도상 입찰보증금 규모에 대한 별도 상한이나 기준이 없어 조합이 자율적으로 금액을 정할 수 있는 구조다.
이로 인해 일부 사업장에서는 보증금이 과도하게 높아지며 경쟁을 제한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특히 중견·중소 건설사들은 수백억원대 보증금을 마련하기 어려워 입찰 참여 자체가 제한되는 경우가 많다. 한 중견 건설사 관계자는 “입찰보증금이 사실상 대형 건설사만 참여할 수 있는 진입장벽이 되고 있다”고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제도 개선 필요성을 제기한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입찰보증금은 원칙적으로 돌려줄 돈과 받을 돈을 별도로 처리하는 것이 맞다”며 “먼저 반환한 뒤 필요한 비용을 다시 정산하는 방식이 일반적”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번 사례처럼 보증금에서 먼저 차감하는 방식은 기존에 없던 처리 방식으로 보인다”며 “이 때문에 분쟁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신고 포상금의 재원을 위반 행위를 한 건설사 보증금에서 충당하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해서도 명확한 근거가 부족한 상황”이라며 “규정이나 선례가 없는 상태에서는 판단이 엇갈릴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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