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기(전이성) 암 진단을 받았을 때 "얼마나 살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나오는 건 인지상정이다. 최근 발표된 미국의 암 통계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내놓고 있다. 미국의 전이성 암 환자의 5년 생존율이 사상 처음으로 35%에 달했다. 1990년대 중반의 17%에서 두 배 이상으로 오른 수치다.
이 변화의 핵심에 면역관문억제제(면역항암제)가 있다. 암세포를 직접 공격하는 기존 항암제와 달리, 우리 몸의 면역 시스템 자체를 되살려 암을 억제하는 면역관문억제제가 4기 암의 생존 지형을 바꾸고 있다
미국암학회(ACS)는 지난 1월 국제 학술지 ‘CA: A Cancer Journal for Clinicians(임상의를 위한 암 저널)’에 ‘암통계 2026’을 발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2015~2021년 진단 기준, 전이성(4기) 암 환자의 5년 상대 생존율은 35%였다. 1990년대 중반 통계인 17%에서 18%포인트 상승한 것이다.
같은 기간 모든 병기를 합산한 전체 암 5년 생존율도 처음으로 70%를 돌파했다. 1970년대 중반의 49%에서 21%포인트 오른 역대 최고치다. 연구팀은 표적치료제와 면역관문억제제(면역항암제)의 도입이 이 성과를 이끌었다고 분석했다.
면역관문억제제는 3세대 항암제다. 1세대인 세포독성 항암제(화학항암제)는 빠르게 자라는 세포를 공격하지만 정상세포까지 손상시켜 탈모·구토·백혈구 감소 같은 부작용이 심하다. 2세대 표적치료제는 특정 유전자 변이가 있는 환자에게만 효과적이고 내성이 생기는 단점이 있다.
면역관문억제제는 다르다. 암세포는 PD-L1이나 CTLA-4라는 단백질을 이용해 우리 몸의 면역세포(T세포)가 자신을 공격하지 못하도록 '위장'한다. 면역관문억제제는 이 속임수를 차단해 T세포가 다시 암세포를 인식하고 공격하도록 만든다. 암 자체가 아닌 면역 시스템을 표적으로 삼는 것이다.
이 계열의 주요 약물로는 키트루다(성분명 펨브롤리주맙, PD-1 억제제), 옵디보(니볼루맙, PD-1 억제제), 여보이(이필리무맙, CTLA-4 억제제) 등이 있다. 현재 흑색종, 폐암, 위암, 간암, 방광암, 두경부암 등 수십 가지 암종에서 치료 승인을 받았다.
면역관문억제제의 효과가 가장 극적으로 나타난 곳은 전이성 흑색종(피부암의 일종)이다. 1990년대 전이성 흑색종 환자의 중앙 생존 기간은 6개월에 불과했고, 5년 생존율은 16%였다. 기존 항암제로는 한계가 뚜렷했다.
2011년 이필리무맙(여보이)이 FDA 승인을 받으면서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다. 이후 키트루다·옵디보 등 PD-1 억제제들이 더해지면서 전이성 흑색종 5년 생존율은 현재 35%까지 올라왔다. 미국 암연구소(CRI)는 이를 "면역관문억제제가 이끈 변화"라고 명시했다.
폐암도 달라졌다. 전이성 폐암의 5년 생존율은 2%에서 10%로 올랐다. 낮아 보일 수 있지만, 채 1년을 넘기기 어렵다는 판정을 받던 환자들이 5년 이상 살 수 있게 됐다는 뜻이다. 국내에서도 면역관문억제제 도입 이후 4기 폐암 환자의 장기생존 사례가 보고되고 있다.
면역관문억제제가 모든 4기 암 환자에게 효과적인 것은 아니다. 치료 전 반드시 확인해야 할 것들이 있다.
첫째, PD-L1 발현율 검사다. 암 조직에서 PD-L1 단백질이 얼마나 발현되는지에 따라 치료 효과와 보험 급여 기준이 달라진다. 예를 들어 키트루다(펨브롤리주맙)의 경우 비소세포폐암 단독 1차 치료에 보험 급여를 받으려면 PD-L1 발현율이 50% 이상이어야 한다.
둘째, MSI-H(현미부수체 불안정성-고위험) 또는 MMRd(불일치 복구 결핍) 여부다. 이 변이가 있는 환자는 암종에 관계없이 면역관문억제제에 잘 반응하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2025년 공개된 직장암 임상에서 MSI-H 환자 103명 중 98명이 면역항암제만으로 완전관해(암세포 소멸)에 이르렀다.
셋째, EGFR·ALK 등 특정 유전자 변이가 있는 폐암 환자는 면역관문억제제보다 표적치료제가 더 효과적일 수 있다. 따라서 치료 시작 전 담당 의사와 함께 어떤 바이오마커 검사를 받을지 구체적으로 상의하는 것이 중요하다.
콜롬비아대 허버트 어빙 종합암센터 던 허쉬먼 교수는 이번 통계를 두고 "암을 한때 사형 선고였던 것에서 많은 사람들이 수년간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만성 질환으로 변환시키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실제로 면역관문억제제는 효과 지속 기간에서 기존 항암제와 차이를 보인다. 치료에 반응한 일부 환자는 투약을 중단한 뒤에도 관해 상태를 유지하는 경우가 있으며, 이는 면역 시스템의 '기억' 기능 때문으로 분석된다.
다만 안타깝게도 이 통계가 모든 암에 해당하지 않는다. 췌장암 5년 생존율은 여전히 13%에 머물고, 면역관문억제제에 반응하지 않거나 심한 자가면역 부작용(폐렴·장염·간염 등)이 생기는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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