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렇게 오래 기다려야 하나요.”
병원에서 자주 듣는 말 중 하나다. 몸이 불편한 상태에서 기다리는 시간은 유난히 길게 느껴진다. 예약시간을 지정받아 신청했는데도 진료실 문은 쉽게 열리지 않는다. 그래서 많은 사람에게 병원은 ‘기다리는 곳’이라는 인상이 남는다.
환자의 입장에서 보면 충분히 이해되는 이야기다. 아픈 몸으로 병원을 찾았는데 대기시간이 길다면 답답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병원 안에서 흐르는 시간은 환자가 느끼는 시간과 조금 다른 방식으로 움직인다.
진료실에서 환자를 만나는 시간은 몇 분에 불과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 몇 분의 진료가 이뤄지기까지는 생각보다 많은 과정이 이어진다. 환자가 진료실에 들어오기 전 간호사는 상태를 확인하고 검사실에서는 채취된 검체가 분석되며 영상의학과에서는 촬영된 영상을 전문의가 판독하고 그 결과가 진료에 반영된다.
병원의 시간은 한 사람의 진료 시간으로만 이뤄지지 않는다. 의료진과 직원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시간을 보태며 하나의 진료가 완성된다. 의사와 간호사뿐 아니라 의료 기사, 행정 직원, 시설 담당자 등 많은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병원의 하루를 움직인다.
큰 병원일수록 그 흐름은 더 복잡해진다. 하루에도 수천명의 환자가 오가고 수많은 검사와 수술이 동시에 진행된다. 응급실은 밤낮없이 돌아가고 수술실에서는 예정된 수술이 이어진다. 때로는 응급수술이 들어와 순서가 바뀌기도 한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의료 장비가 점검되고 의료 기록이 관리된다. 거기에 한 치의 오차도 허용되지 않는 곳이 병원이다.
그래서 병원의 시간은 늘 분주하다. 누군가는 밤새워 응급실을 지키고 누군가는 새벽부터 수술 준비를 한다. 환자가 병원 문을 열고 들어오기 훨씬 전부터 병원의 하루는 이미 시작된 셈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환자의 기다림이 가볍다는 뜻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자의 시간 역시 중요하므로 변명만 늘어놓는다고 느낄 수도 있다. 의료가 환자 중심이어야 한다는 원칙은 언제나 중요하다. 병원 역시 그 기다림을 줄이기 위해 계속해서 방법을 찾고 있다. 진료 절차를 개선하고 시스템을 정비하며 환자가 조금이라도 편하게 진료받을 수 있도록 노력한다. 최근에는 병원들도 빅데이터를 활용한 인공지능(AI) 서비스를 통해 환자 방문이 집중되는 시간대를 찾아 고객 응대 서비스를 강화하는 전략을 펼치기도 한다.
다만 병원의 시간을 조금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면 좋겠다. 병원은 늘 시간과 싸우는 곳이다. 응급 상황에서는 몇 분의 차이가 생명을 좌우하기도 한다. 그래서 병원의 시간은 빠르면서도 신중하다. 서둘러야 할 때는 누구보다 빨라야 하고 멈춰 확인해야 할 때는 누구보다 조심스러워야 한다.
우리가 병원에서 마주하는 몇 분의 진료는 어쩌면 그 긴 시간의 마지막 한 장면일지도 모른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어지는 수많은 시간이 모여 비로소 한 사람의 치료가 완성되기 때문이다. 병원 진료를 마치고 문을 나서면서 한 번쯤 떠올려 보면 좋겠다. 우리가 느끼는 기다림의 시간 뒤에는 누군가의 치료를 위해 흘러가고 있는 또 다른 시간이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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