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어·해골·약장이 서울에 왔다"… 데이미언 허스트, 국립현대미술관서 아시아 첫 대규모 개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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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어·해골·약장이 서울에 왔다"… 데이미언 허스트, 국립현대미술관서 아시아 첫 대규모 개인전

문화저널코리아 2026-03-22 07:43:58 신고

문화저널코리아 오형석 기자 |영국 현대미술의 가장 도발적인 이름, 데이미언 허스트(Damien Hirst)가 마침내 서울 한복판에 들어섰다. 상어를 유리 수조에 가두고, 인간 해골에 다이아몬드를 박고, 약장을 제단처럼 세워온 그 문제적 작가의 세계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대규모로 펼쳐진다. 국립현대미술관은 3월 20일부터 오는 6월 28일까지 《데이미언 허스트: 진실은 없어 그러나 모든 것은 가능하지》를 개최한다. 아시아 첫 대규모 개인전이다.

 

이번 전시는 단순한 스타 작가전이 아니다. 허스트를 세계적 거장으로 만든 대표작과 초기작, 그리고 최근 작업까지 50여 점을 통해 35년 작업 세계를 전면적으로 훑는다. 초기 콜라주와 스팟 페인팅, 스핀 페인팅부터 현대미술사의 상징이 된 상어 작품 〈살아있는 자의 마음 속 죽음의 물리적 불가능성〉, 파리 유충과 소머리로 생과 사의 순환을 보여준 〈천 년〉, 다이아몬드 해골 〈신의 사랑을 위하여〉, 나비 삼면화, 약장 연작, 그리고 작가의 실제 스튜디오를 옮겨놓은 공간까지 한자리에서 만난다.

 

허스트는 왜 늘 죽음과 욕망, 종교와 과학, 자본과 불멸의 문제를 붙잡아 왔을까. 이번 전시는 그 질문을 가장 정면으로 던진다. 인간은 죽음을 두려워하면서도 영원을 꿈꾸고, 불안을 안고 살면서도 과학과 자본, 제도를 새로운 신처럼 떠받든다. 허스트는 바로 그 모순을 작품으로 폭로해온 작가다. 그에게 상어는 단순한 동물이 아니라 죽음을 눈앞에 두고도 끝내 실감하지 못하는 인간의 공포이고, 약장은 치유의 도구를 넘어 현대인이 신앙처럼 매달리는 믿음의 진열장이며, 다이아몬드 해골은 죽음 위에 욕망을 덧씌운 자본의 초상이다.

전시는 총 4부로 구성된다.
1부 “모든 질문에는 의심이 따른다”에서는 허스트의 형성기와 초기작을 보여준다. 작가 이름을 애너그램으로 풀어낸 〈자화상〉(1987), 리즈와 런던 시절의 콜라주, 초기 〈스팟 페인팅〉과 〈스핀 페인팅〉이 포함된다. 젊은 시절부터 허스트가 제도와 이미지, 언어와 사물, 질서와 우연 사이를 오가며 자기만의 문법을 구축해 왔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2부 “우리는 시간 속에 산다”는 이번 전시의 가장 강한 장면이다. 포름알데히드 수조 속 거대한 상어로 유명한 〈살아있는 자의 마음 속 죽음의 물리적 불가능성〉(1991)이 관객을 압도한다. 살아 있는 듯하지만 이미 죽어 있는 상어는, 늘 죽음을 외면한 채 살아가는 인간 존재를 정면으로 마주 보게 한다. 잘린 소머리와 파리 유충, 전기 살충기로 구성된 〈천 년〉(1990)은 더욱 잔혹하다. 생명이 태어나고 움직이고 죽어가는 전 과정을 거대한 유리 구조 안에 가둬 놓으며, 삶과 죽음이 얼마나 차갑고 비정한 순환 위에 놓여 있는지를 보여준다.

 

3부 “침묵의 사치”에서는 허스트 특유의 종교·과학·자본 비판이 본격적으로 터져 나온다. 할머니가 남긴 약병과 해부 모형 등을 배열한 약장 작품 〈죄인〉(1988)은 현대 의학이 어떻게 새로운 믿음의 체계가 되었는지 드러낸다. 전시장 안에 재현된 ‘약국’ 공간은 그 상징을 더욱 직접적으로 밀어붙인다. 병원과 약국, 브랜드와 시스템이 우리에게 주는 신뢰는 과연 어디서 오는가. 허스트는 그 시각적 질서를 해부한다.

이 섹션의 정점은 단연 〈신의 사랑을 위하여〉(2007다. 인간 두개골을 백금으로 주조하고 8,601개의 다이아몬드로 덮은 이 작품은, 죽음과 사치, 유한성과 영원성, 공포와 아름다움을 한 덩어리로 압축한다. 반짝이는 해골은 단순히 화려한 오브제가 아니다. 그것은 죽음을 지우지 못한 채 오히려 더 값비싸게 포장하는 현대 자본주의의 얼굴에 가깝다. 여기에 실제 나비 날개로 만든 삼면화 〈신의 무한한 권능과 영광을 묵상하며〉(2008), 종교와 해부학의 접점을 보여주는 〈성 바르톨로메오, 극심한 고통〉(2007)까지 더해지며, 허스트가 왜 여전히 가장 논쟁적인 작가인지를 입증한다.

 

마지막 4부 “작가의 스튜디오: 진행 중인 작업들”은 완성된 걸작의 뒤편을 보여주는 공간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은 런던의 허스트 작업실 ‘리버 스튜디오’를 MMCA 안으로 옮겨왔다. 미완의 캔버스, 붓과 페인트, 작업복, 소품, 플레이리스트까지 드러난 이 공간은 결과물이 아니라 창작이 벌어지는 현장 자체를 전시장으로 만든다. 세계적인 거장의 작업실을 통째로 들여온 연출은 관객에게 또 다른 몰입감을 선사할 전망이다.

허스트는 1988년 골드스미스 재학 시절 직접 기획한 전시 《프리즈》를 통해 이름을 알리며, 이후 영국 현대미술의 흐름을 뒤집은 YBA(Young British Artists) 세대의 중심 인물로 떠올랐다. 그는 작품만 만든 작가가 아니라 전시, 유통, 시장, 브랜드의 구조까지 스스로 흔들어온 인물이다. 상업주의 논란의 중심에 서면서도, 동시에 누구보다 정확하게 동시대 문명의 욕망을 포착해온 작가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래서 허스트의 전시는 늘 미술 전시를 넘어 하나의 사회적 사건이 된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이번에 허스트를 서울로 불러들인 것은 단순한 흥행 카드가 아니다. 오늘의 한국 사회 역시 죽음의 공포를 소비로 덮고, 불안을 과학과 시스템으로 봉합하며, 자본과 이미지를 통해 영원을 사고파는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이다. 허스트의 작업은 멀리 영국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여기의 이야기로 읽힌다. 관객은 상어 앞에서 죽음을, 해골 앞에서 욕망을, 약장 앞에서 믿음을, 나비 앞에서 아름다움의 폭력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한편 김성희 국립현대미술관장은 “동시대 현대미술의 흐름을 이끌어온 국제적인 작가의 혁신적 실험과 작품들을 입체적으로 조명하는 의미 깊은 전시”라며 “이번 전시가 현대사회의 가치와 존재에 대한 깊은 사유의 장이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분명 한 번 보면 잊기 어려운 전시가 될 가능성이 크다.

상어는 죽음을 보여주고, 해골은 욕망을 드러내며, 약장은 믿음을 해부한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의 이번 허스트전은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수렴한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믿으며 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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