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전쟁 여파로 국제 유가가 급등하자, 각국 정부가 기존의 가격 통제 중심 정책에서 벗어나 에너지 수요를 줄이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0일(현지시간) 보도를 통해, 초기에는 각국이 유가 상승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가격 억제 정책에 집중했지만, 점차 수요 관리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독일은 주유소 가격 인상 횟수를 하루 한 차례로 제한했고, 프랑스는 가격을 부풀린 업체에 벌금을 부과하겠다고 경고했다. 헝가리는 연료 가격 상한제를 도입하는 등 가격 통제 조치를 시행했다.
그러나 공급 확대나 가격 통제만으로는 이번 에너지 위기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공급만으로는 충격을 상쇄할 수 없다”며 재택근무 확대와 대중교통 이용 등 수요 억제 정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에 따라 각국은 다양한 수요 절감 조치를 내놓고 있다. 스리랑카는 공공기관과 학교에 주 4일제를 도입하고 연료 배급제를 시행했으며, 방글라데시는 대학 휴교령과 함께 실내 온도를 25도 이하로 낮추는 것을 금지했다. 파키스탄도 2주간 휴교에 들어갔다.
몰디브와 네팔은 취사용 액화석유가스(LPG) 공급을 제한하는 대신 전자레인지 사용을 장려하고 있으며, 인도에서는 LPG 제한으로 결혼식 등 행사 규모를 축소하거나 숯·장작 등 대체 연료 사용이 늘고 있다.
태국에서는 방송 진행자들이 재킷 없이 출연하며 에너지 절약을 독려하고, 공무원들에게 재택근무와 계단 이용, 간소한 복장 착용을 권고하는 등 생활 전반에서 에너지 절감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유럽에서도 수요 억제 정책이 도입되고 있다. 슬로바키아는 주유소에서 경유 판매를 제한하고 외국 차량에 더 높은 가격을 부과했다. 다만 일부 정책은 반발을 낳고 있다. 영국에서는 냉장고 전원을 꺼 맥주를 미지근하게 보관하라는 권고가 논란이 됐고, 필리핀에서는 운송업계가 유류세 유예와 요금 인상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한편 에너지 위기를 기회로 삼는 기업들도 등장했다. 독일에서는 연료 절감 효과를 주장하는 각종 제품 광고가 급증했지만, 자동차 서비스 단체 ADAC는 일부 제품에 대해 “실제 효과는 없다”고 경고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정책 변화가 단기 대응을 넘어, 에너지 소비 구조 자체를 재편하려는 흐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최규현 기자 kh.choi@nv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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