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로드] 미국과 이란 간 전쟁이 4주차에 접어들며 장기화 조짐을 보이자 국내 증시에서는 하락에 베팅하는 자금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공매도와 인버스 상장지수펀드(ETF) 매수세가 강화되는 한편, 지수 상승에 베팅하는 레버리지 상품과 지수 추종 ETF는 대거 팔려나가는 양상이다.
21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공매도의 선행지표로 꼽히는 대차거래 잔고는 이번 주 들어 가파른 증가세를 보였다. 16일 144조6천억원, 17일 147조1천억원, 18일 154조원, 19일 149조3천억원으로 이달 평균 잔고(143조7천억원)를 꾸준히 웃돌고 있다. 대차거래는 주식을 장기 보유한 기관 등이 수수료를 받고 다른 투자자에게 주식을 빌려주는 거래로, 이후 공매도에 활용되는 경우가 많다.
실제 공매도 순보유 잔고도 사상 최대 수준으로 불어났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피 시장의 공매도 순보유 잔고는 16일 15조3천704억원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한 뒤 17일에도 15조3천556억원으로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다. 공매도 순보유 잔고는 빌려온 주식을 시장에 내다 판 뒤 아직 되갚지 않은 물량을 의미해, 잔고 확대는 향후 주가 하락을 예상하는 투자자가 많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유가증권시장에서 대차거래 잔고 1위 종목은 19일 기준 삼성전자로 약 18조2천억원이었고, SK하이닉스가 14조9천억원으로 그 뒤를 이었다. 중동 사태가 에너지 시설 공격으로 격화하고 국제유가 변동성이 커지면서, 전쟁과 유가 흐름에 따라 증시가 크게 출렁일 수 있다는 인식이 하락 방어·조정장 대비 포지션 확대를 부추긴 것으로 보인다.
ETF 시장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관측된다. 금융정보업체 연합인포맥스 집계에 따르면 16∼19일 개인투자자가 가장 많이 순매수한 ETF는 KODEX 200선물인버스2X였다. 이 상품은 코스피200 선물지수의 일일 수익률을 역방향으로 2배 추종하는 이른바 ‘곱버스’로, 지수가 내릴수록 하락 폭의 약 두 배를 수익으로 얻는다. 개인은 이 기간 해당 ETF를 1천213억원어치 사들였다.
반대로 코스피 상승에 2배로 베팅하는 KODEX 레버리지는 같은 기간 1천267억원 순매도됐다. 코스피200을 그대로 추종하는 KODEX 200 역시 726억원어치 순매도되며 매도 상위 종목에 올랐다. 코스닥 지수를 추종하는 KODEX 코스닥150(457억원)과 KODEX 코스닥150레버리지(268억원)도 각각 순매도 4, 5위에 이름을 올려, 지수 상승 기대보다는 변동성 확대와 하락 가능성에 대비하는 움직임이 두드러졌다.
김재승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일방적으로 증시가 오를 때에 비해 투자자 의견이 다양해진 것으로 볼 수 있다”며 “하락에 베팅하는 투자자와 함께, 이를 저가 매수 기회로 삼으려는 투자자도 공존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실제 ‘빚투’(빚내서 투자)를 보여주는 신용거래융자 잔고는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 중이다. 신용융자 잔고는 이달 5일 33조7천억원으로 최고치를 찍은 뒤 31∼32조원대로 소폭 줄었다가, 16∼19일 다시 33조원대를 유지하고 있다. 전쟁 장기화와 증시 조정 우려에도 레버리지 투자를 통해 상승을 노리는 ‘롱 바이어스’ 자금이 시장에 여전히 남아 있다는 의미다.
김두언 하나증권 연구원은 “신용이 늘었다는 것은 여전히 롱 바이어스(상승 베팅)가 있다는 것이고, 반대로 인버스 ETF 매수 규모가 커졌다는 것은 하락에 베팅하는 포지션도 상존한다는 뜻”이라며 “단기적인 부침 이후에는 오히려 회복 탄력성이 빠를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쟁과 유가, 금리와 같은 대외 변수에 따라 증시 변동성이 확대되는 가운데, 국내 주식시장은 공매도와 인버스 매수, 신용융자 확대가 동시에 나타나는 ‘롱·숏 혼재’ 국면에 진입한 모습이다. 투자자들의 엇갈린 시각이 향후 어느 쪽으로 무게를 실을지에 따라 코스피 향방도 갈릴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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