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화합·개혁 평가받다 권력욕에 국가 파탄…부인 권력 승계하려다 쿠데타
(요하네스버그=연합뉴스) 나확진 특파원 = 남부 아프리카 내륙국 짐바브웨는 과거 영국 식민지에서 2차례 독립과정을 거쳐 오늘의 짐바브웨가 됐다.
영국으로부터 바로 독립한 것이 아니라, 식민 상태의 기득권층이라 할 수 있는 소수 백인우익정당(RF)이 주도해 영국의 식민지 개척자 세실 로즈(Cecil Rhodes)의 이름을 딴 '로디지아'로 1965년 독립했다.
국민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흑인들의 계속된 투쟁 끝에 1980년 로버트 무가베(1924∼2019)가 이끌던 흑인 정치조직 '짐바브웨 아프리카 민족연합'(ZANU)'이 마침내 권력을 잡으면서 짐바브웨로 국호를 바꿨다.
무가베는 이처럼 옛 로디지아의 백인 정부를 무너뜨리고 짐바브웨 건국에 앞장선 독립투사로 국민의 칭송을 받았다. 하지만 이후 37년간 집권하며 야권을 탄압하는 등 독재자로 추락하며 양극단을 오가는 평가를 받았다.
무가베는 짐바브웨가 영국 식민지이던 1924년 오늘날의 수도 하라레에서 태어나 17세 때 교사자격증을 취득했다.
마르크스 사상을 받아들인 무가베는 남아프리카공화국 포트헤어 대학에 진학했고 가나에서 교사 생활을 했다.
1960년 고국으로 돌아온 그는 1964년 국민저항 운동을 주도한 혐의로 이후 10년간 정치범 수용소와 감옥에서 고초를 겪었다.
무가베는 1980년 선거에서 국민 대다수의 지지를 등에 업고 56세에 짐바브웨의 초대 총리에 올랐다. 이어 1987년부터 2017년까지 대통령으로 재직했다.
그는 집권 초기 인종화합 정책을 선언하고 인구 다수를 점하는 흑인을 위한 교육과 보건 부문 개혁으로 국제사회의 상찬을 받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반대 인사 탄압과 부정부패, 사치 등으로 국가를 파탄에 빠뜨렸다.
1983년 반정부 시위가 벌어진 마타벨레랜드 지역에서 주민 수천 명을 살해하고 1983∼1987년 은데벨레족 민간인 약 2만명을 고문·살해한 책임이 있다고 지목된다. 특히 은데벨레족 고문·살해에는 북한의 지원을 받아 훈련된 특수부대가 연루된 것으로 알려졌다.
경제 측면에서도 자국에 진출한 외국기업을 사실상 국유화하는 과정에서 '실정'이 잇따랐다.
무가베는 짐바브웨 내 백인 농장주들의 농장과 땅을 몰수하는 토지개혁 정책을 폈지만, 생산성 저하로 농업 부문의 몰락을 초래했다.
이에 따라 해방 당시만 해도 아프리카에서 가장 의식주가 양호한 나라로 꼽혔던 짐바브웨는 세계 최빈국 중 하나로 추락했다. 2009년에는 천문학적 인플레이션이 발생해 자국 화폐를 포기하고 미국 달러를 대신 쓰는 처지에 놓였다.
그런 와중에도 매년 수억 원을 들여 호화 생일잔치를 벌여온 무가베는 경제난의 책임을 자신과 심복들을 제재한 서방세계 탓으로 돌리며, 권력을 다지는 데 집중했다.
2009년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의 주말판 매거진 '퍼레이드'는 그런 그를 세계 최악의 현직 독재자 부문 1위로 꼽기도 했다.
무가베는 첫째 부인 샐리 헤이프런과 사별한 후 1996년 자기 비서였던 그레이스와 재혼했으나, 이는 결국 무가베 실각의 도화선이 됐다.
무가베는 많은 명품 보유 등 사치스러운 생활로 '구찌 그레이스'로까지 불린 아내에게 권력을 승계하려 시도하다 2017년 군부 쿠데타를 맞았다. 급기야 의회의 탄핵 절차에 직면하자 사임했다.
이후 정권을 잡은 에머슨 음낭가과 대통령은 독립운동을 이끈 공로 등을 고려해 무가베에게 면책특권을 인정하고 그의 생일을 공휴일로 지정했다.
무가베는 권좌에서 축출된 뒤 2년 만인 2019년 9월 싱가포르에서 95세로 사망했다.
음낭가과 대통령은 당시 "무가베는 자유의 상징이고 국민의 해방과 자강을 위해 일생을 바친 범아프리카주의자였다"면서 "우리나라와 대륙의 역사에 대한 그의 기여는 절대 잊히지 않을 것"이라고 기렸다.
시릴 라마포사 남아공 대통령도 "무가베 대통령의 리더십으로 식민주의에 대한 짐바브웨의 지속적이고 용감한 투쟁은 우리(남아공)의 반(反)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정책) 투쟁을 고취했다"고 애도했다.
하지만 무가베 유족은 그의 사후에도 구설에 오르고 있다.
그레이스와 사이에서 태어난 막내아들 벨라민 차퉁가 무가베는 지난 2월 남아공 요하네스버그 북부 자택에서 정원사를 총으로 살해하려 한 혐의로 남아공 경찰에 체포돼 재판에 넘겨졌다.
벨라민의 형 로버트 무가베 주니어도 2023년 짐바브웨 수도 하라레에서 파티에 참석했다가 폭행 혐의로 체포됐다. 지난해에는 대마 소지 혐의로 벌금형을 받았다.
지난 1월 미국 법무부가 공개한 미국 억만장자 성범죄자 제프리 엡스타인 파일에는 엡스타인 측에서 과거 무가베 당시 대통령에게 접촉해 짐바브웨 화폐 개혁에 관여하려 시도한 내용 등도 담겼다.
ra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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