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하는 여자들] 박연준 시인 "시와 발레는 같은 곳을 지향해요" | 예스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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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하는 여자들] 박연준 시인 "시와 발레는 같은 곳을 지향해요" | 예스24

채널예스 2026-03-20 00:00:00 신고

특집 인터뷰 [운동하는 여자들]

유독 길었던 겨울이 끝나고 봄이 시작될 무렵, 글을 쓰고 운동을 하는 여성들을 만났습니다. 운동이 작업과 일상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요? 설재인 소설가, 박연준 시인, 정세희 전문의와 함께 운동과 작업에 관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박연준 시인의 소개 글에는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파주에 살며 시와 산문을 쓴다. 시, 사랑, 발레, 건강한 ‘여자 어른’이 되는 일에 관심이 많다.” 파주, 시, 사랑이라는 단어를 자연스럽게 지나, 발레라는 단어 앞에서 잠시 멈추게 됩니다. 발레와 시는 어떻게 나란히 놓이게 되었을까요. 꽃샘추위가 아직 겨울을 붙잡고 있는 3월의 어느 날, 파주에서 박연준 시인을 만났습니다. 분명한 것은 그는 완성이나 달성을 위해 발레를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발레를 향해가는 그 시간 속에서, 느리지만 단단하게 자신만의 감각을 쌓아가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발레를 시작하게 되었나요? 

안무가 피나 바우쉬를 그린 <피나> 라는 영화를 보고 무용수의 움직임이 정말 아름답다고 느꼈어요. '발레 무용수' 하면 꼿꼿하게 서 있는 모습을 떠올리게 되잖아요. 저는 글을 쓰다 보니 자세가 틀어질 때가 많아서 발레를 배우면 자세 교정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렇게 2014년에 처음 발레를 시작해 중간에 2년 정도 쉬었으니, 이제 10년 정도 되었다고 볼 수 있겠네요. 저도 이렇게 오래 하게 될 줄은 몰랐어요. 

 

오랜 시간 발레를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발레는 너무 어렵기 때문이에요. 3년을 하고 5년을 했다고 해서 명확하게 "알겠다"라고 느껴지는 부분이 별로 없어요. 하면 할수록 어렵고, 수년을 하면 아주 작은 하나씩 겨우 알게 되죠. 100년을 해도 다 모르겠다고 생각하니 질릴 틈이 없고, 지속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모르는 사람들은 발레가 우아하고 하늘하늘하게 예쁜 춤이라고 막연히 생각할 수 있는데, 사실 전혀 그렇지 않거든요. 근력이 필요하고, 코어 근육을 제대로 단련하지 않으면 어떤 동작도 잘 해내기 어려워요. 저는 발레가 내면과 외면이 다 강인해야 할 수 있는 춤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인지 시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자주 해요.

 

시와 발레는 어떻게 닮았나요?

간혹 시를 예쁜 언어로 아름다운 것을 노래하는 장르로 오해하는 분들도 계시는데요. 시 안으로 들어가면 헤비메탈 음악처럼 폭발적인 부분도 있고, 난해하고 단단하거든요. 쉽지 않지요. 이런 점이 발레와 비슷해요. 발레가 중력을 거슬러 몸을 공중에 띄우려는 춤이라면, 시의 언어는 무대 위에서 곤두서는 언어라고 생각해요. 둘 다 일상에서 거의 쓰이지 않는 언어를 사용하죠. 아마 평소에 제가 시처럼 말한다면 친구들이 없어질 거예요. (웃음) 시와 발레는 같은 곳을 지향한다고 생각해요. 

 

부드럽지만 얇은 겹을 꾸준히 쌓아 단단하게 만들어진 무언가의 모습을 상상하게 되어요. 작가님께서 수련과 수양을 좋아하시는 것과 맞닿아 있다고도 느껴지고요. 

저는 못하는 것을 조금씩 해나가는 것이 재미있어요. 발레는 늘 어렵기 때문에 저를 한없이 겸손하게 만들고, 계속 노력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해요. 똑같은 걸 반복하고 시간을 오래 들여야 겨우 조금 성장하는데, 그마저도 3, 4년이 지나야 깨닫죠. 이런 부분이 수련인 것 같아요. 발레가 어려운 이유는 인간이 새를 흉내 내기 때문이지요. 인간은 날개가 없잖아요. 하지만 발레 무용수는 날개 없이도 날아오르는 인간이고요. 놀라우면서도 어느 때는 슬프기도 해요. 아름다움을 위해 복무하려는 인간의 분투가요.  

 

되지 못하는 것을 되려고 하는 그 모습 자체를 아름답다고 보시는군요.

발레에 적합한 신체적 조건이나 재능을 가졌는지, 그런 것과 별개로 제가 발레를 향해 가는 시간을 좋아해요. 결과에 상관없이 그 근처에 선다는 것, 그건 사실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는 행위잖아요. 그 마음이 다인 거죠.  

 

『마음을 보내려는 마음』에서도 비슷한 말씀을 하셨어요. 

"그곳에 가고 있는 기분을 사랑하니까.”(108쪽) '그곳'을 생각해 보면 분명 제가 발 딛고 있는 이 땅은 아니죠. 그곳에 갈 수도 없고요. 하지만 가는 기분은 사랑할 수 있잖아요. 언젠가 발레 수업이 끝나고 저도 모르게 선생님께 "저 이제 속세로 내려갈게요"라고 말한 적이 있어요. 발레를 하는 시간은 속세의 시간과는 좀 다르게 흐르거든요. 일상에서는 모두 바쁘고, 여기저기에서 전쟁이 일어나고, 나쁜 사람들은 계속 더 나쁜 짓을 하고, 주가는 오르내리고, 저는 마감 독촉을 받고…. 발레할 때는 이런 것과 상관없이 마음을 몸이 합동하여 무언가를 표현하려 끙끙대죠. 이때 저를 둘러싼 일상과 저 자신까지 잊어버리는 기분이 좋아요. 영혼을 고양시키는 시간이라고 생각해요. 담금질. 칼을 만들 때 뜨거운 불에 넣었다가 빼는 것처럼 영혼을 아주 단순하게 벼리는 담금질의 시간이죠. 

 

그 시간 동안 새롭게 발견하는 것도 많을 것 같아요.  

『싯다르타』에 이런 말이 있어요. "깨달음은 가르칠 수 없다." 발레를 하면서 자주 떠올리는 말이에요. 예를 들어, '플리에(plie)'는 내려가는 동작인데, 선생님께서는 키가 작아지지 않게, 키를 늘리며 내려가라고 말씀하세요. 역설적이고 이상하죠. 그런데 4, 5년을 하다 보니 조금은 알겠더라고요. 저는 재능이 없고 느린 학생이지만 뒤늦게 조금 깨닫는 것들이 있어요. 결국 느리게라도 혼자 깨우쳐야 한다는 것. 그게 진짜라는 생각을 발레를 하면서 자주 해요. 


한정원 작가가 선물한 보스턴 발레곰과 토슈즈

 

소설, 시, 산문 등 여러 작품에 발레 이야기가 종종 등장합니다. 작가님의 글쓰기에 발레는 어떤 영향을 주나요?

발레에 대해 계속 써보고 싶은 게 있어요. 작년에 발표한 단편소설 「월드 발레 데이」는 죽은 무용수에 관한 이야기인데요. 자기 분야에서 열심히 노력했음에도 스스로 세상을 등진 어느 무용수의 이야기를 알게 되고, 그 삶에 대해 혼자 생각하는 시간이 많았어요. 저도 작업을 하다 번아웃을 겪고 있을 때였고, 분야에 상관없이 자신의 모든 것을 갈아 넣어 매진한 사람들은 비슷한 고통을 받고, 고민을 하고… 통하는 게 있다고 생각해요. 올해 하반기에는 이 소설을 넓혀 몸에 관한 이야기를 더해 완성하려고 합니다. 무용수의 몸, 여성의 몸, 늙은 사람의 몸… 몸은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도구이며 전부이기도 하면서, 한 존재의 발목을 잡기도 하죠. 몸에 관해서 여러 방식으로 써보고 싶어요. 

 

"나에게 발레는 _______ 이다" 한 단어로 말씀해 주신다면요?

발레는 탈속(脫俗)이다. 제게 발레는 세속에서 잠깐 벗어나는 시간, 아름답고 귀한 가치를 위해 발돋움하는 시간이거든요. 발레에서 하는 행동들, 음악을 따르는 몸짓과 여러 노력은 속세로 고개를 돌리는 순간 별 효능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발레를 할 때는 아주 중요한 일이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명상과 닮은 점이 있어요. 

 

발레와 관련한 책이나 영화를 추천해 주세요. 

『큰 가슴의 발레리나』라는 소설을 추천하고 싶어요. 굉장히 시적인 소설인데 이 책의 화자가 발레리나의 양쪽 가슴이에요. 발레에서는 큰 가슴이 굉장히 무용하거든요. 소설 속 발레리나가 성장을 하면서 이 두 덩이의 가슴을 너무 싫어하고, 급기야 가슴은 제거 위기에 봉착해요. 이 가슴들이 화자가 되어 하는 말이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해요. 실제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몸이 달라져 무용을 그만두는 학생들도 있다고 하거든요. 재치 있으면도 인상적인 소설이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피나> 라는 영화도 추천해요.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는 제가 춤을 보면서 눈물을 흘릴 거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는데 눈물을 흘린 대목도 있어요. 언어 없이 감정을 전달할 수 있다는 점에 놀랐고, 말의 덧없음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어요.

 

말의 덧없음이요?

말은 항상 어느 정도는 가난한 것 같아요. 제가 지금 인터뷰를 하며 뭔가를 말하고 있지만 제 마음을 오롯이 온전하게 표현했다고 하기에는 부족해요. 이를테면 아이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는 것보다 쓰다듬고 끌어안아 주었을 때 사랑이 더 잘 전달될 수도 있거든요. 어쩌면 가진 말이 가난하기 때문에 이 결핍에서 벗어나려고 시를 쓰게 되는지도 모르겠어요. 

 

발레인으로서 원하는 목표나 모습이 있나요?

목표는 없어요. 가능한 오래 하고 싶다는 것 정도? 30대 중반에 발레를 처음 시작했는데, 이제 50대를 향해 가고 있네요. 나이가 들수록 무릎도 아프고, 60대에도 발레를 할 수 있을까 가끔 생각하죠. 신기한 점은 몇 해 전 사정이 있어 석 달 정도 발레를 쉬었는데, 바로 목 디스크와 손 저림이 오더라고요. 저도 모르는 사이에 발레의 도움을 확실히 받고 있었나 봐요. 잘하든 못하든 뭔가를 꾸준히 한다는 것, 그 꾸준한 시간이 참 무서워요. 그죠? (웃음)

 



박연준 작가의 책


 


『셋 세고 촛불 불기』

박연준, 김화진, 남유하, 서고운, 송섬, 윤성희, 위수정, 이희주 저 | 은행나무

 

8명의 소설가가 기억하고자 하는 기념일 테마 소설집. 박연준 작가의 「월드 발레 데이」는 월드 발레 데이에 죽은 무용수를 주인공으로 영원히 무대에 서고 싶었던 무용수의 일생을 아름답게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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