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쓰백> 이지원 감독의 드라마 데뷔. 집요한 시선으로 설계한 밀도 높은 인간 군상과 욕망의 설계도. 미쓰백>
- 사랑보다 야망과 계산으로 결속된 주지훈X하지원의 서늘하고 압도적인 연기 시너지.
- 나나·오정세·차주영의 앙상블. 정보원부터 재벌 후계자까지, 극의 텐션을 조율하며 판을 뒤흔드는 입체적 캐릭터들의 향연.
- 검찰, 재벌, 연예계가 하나의 회로처럼 연결되어 연쇄 폭발하는 현대적 권력 스릴러.
1. 영화감독 이지원의 첫 드라마
영화 〈미쓰백〉으로 눈도장을 찍었던 이지원 감독의 첫 드라마다. / 출처: 디즈니플러스
〈클라이맥스〉의 첫 번째 TMI는 배우보다 감독이다. 영화 〈미쓰백〉으로 강한 인상을 남긴 이지원 감독의 첫 드라마다. 연출만 맡은 것도 아니다. 극본에도 이름을 올렸다. 인물들과 욕망의 구조를 직접 설계했다. 이건 꽤 중요하다. 이지원 감독의 강점은 사건을 요란하게 키우기보다, 그 사건의 흔적을 집요하게 관찰하는 데 있다. 〈클라이맥스〉도 마찬가지다. 겉으로는 검찰과 재벌, 연예계가 얽힌 큰 판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드라마를 움직이는 것은 사람들의 계산과 균열이다. 누가 더 정의로운가보다 누가 더 상승하고 싶어 하는가, 누가 더 많이 잃을 수 있는가가 훨씬 중요하다. 첫 드라마인데 판을 작게 잡지 않았다는 점도 흥미롭다. 큰 구조를 가져가면서도 결국 인물의 감정선으로 끌고 가겠다는 자신감이 읽힌다.
2. 주지훈과 하지원 조합
주지훈과 하지원의 관계성이 드라마를 더 매력있게 만든다. / 출처: 디즈니플러스
드라마의 얼굴은 분명 주지훈과 하지원이다. 하지만 이 조합을 부부 서사로 읽으면 재미가 반으로 줄어든다. 〈클라이맥스〉가 흥미로운 이유는 두 사람이 사랑으로 묶인 부부라기보다, 서로의 필요와 욕망으로 결속된 관계라는 데 있다. 주지훈이 맡은 방태섭은 검사 자리에 머물 생각이 없는 사람처럼 보인다. 더 높은 곳으로 가려는 야망이 큰 인물이다. 주지훈은 이런 캐릭터에 익숙하다. 선과 악 어느 쪽으로도 단순하게 정리되지 않는 인물, 머릿속으론 계산이 끝난 사람 같은 인물을 설득력 있게 만든다.
하지원이 맡은 추상아도 흥미롭다. 한때 정상에 선 톱배우라는 설정은 익숙하지만, 추상아는 단순히 화려한 스타가 아니다. 자신이 가진 유명세와 위치를 어떻게 권력을 공고히 하는 데 써야 하는지 아는 사람이다. 하지원이 오랜만에 드라마로 돌아오며 이런 인물을 골랐다는 사실도 인상적이다.
3. 나나, 오정세, 차주영 쟁쟁한 이름
차주영은 WR호텔·엔터의 사장이자 WR그룹 사모 이양미 역을 맡았다. / 출처: 디즈니플러스
나나는 방태섭의 정보원 황정원 역을 맡았다. / 출처: 디즈니플러스
오정세는 WR건설의 전무 권종욱 역을 맡았다. / 출처: 디즈니플러스
〈클라이맥스〉를 주지훈과 하지원의 양자 구도로만 볼 수는 없다. 서사를 확장하는 건 나나, 오정세, 차주영 같은 배우들이다. 나나가 맡은 황정원은 정보원이다. 이런 역할은 대개 사건을 설명하거나 연결하는 장치로 쓰이기 쉬은데, 황정원은 직접 판을 흔드는 인물처럼 보인다. 누구의 편인지 쉽게 단정되지 않고, 누가 쥐고 있는 비밀보다 더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캐릭터다. 오정세가 맡은 권종욱은 재벌가 후계 구도의 중심에 선 인물이다. 힘을 가진 사람의 불안과 허기를 동시에 보여준다. 힘이 있어 보이지만 사실 가장 불안한 인물이다. 차주영이 맡은 이양미 역시 중요하다. 우아하고 매끈한 얼굴을 한 흑막 같은 인물이다. 직접 칼을 휘두르지 않아도 흐름을 바꾸는 사람, 감정을 드러내지 않아도 분위기를 장악하는 사람이다. 세 배우가 들어오면서 이야기는 더 입체적으로 흘러간다.
4. 권력 카르텔 드라마
검찰과 정치권, 연예가, 재벌가 등 여러 세계가 하나로 통하며 카르텔을 형성하는 스토리를 그려냈다. / 출처: 디즈니플러스
〈클라이맥스〉의 스케일이 커 보이는 이유는 등장인물이 많아서가 아니다. 정치만 다루는 드라마가 아니기 때문이다. 검찰과 정치권이 있고, 연예계가 있고, 재벌가가 있다. 보통은 따로 놀 법한 세계가 여기서는 하나의 회로처럼 이어진다. 이 구조 덕분에 사건의 파장이 크다. 정치권의 문제는 검찰의 선택으로 번지고, 재벌가의 이해관계는 연예계의 스캔들과 만나며, 개인의 과거는 곧 공적인 위기로 바뀐다. 누구 하나만 무너져도 끝나는 이야기가 아니라, 한쪽이 흔들리면 다른 축까지 연쇄적으로 흔들리는 구조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특정 기관이나 음모를 좇는 작품이라기보다, 서로 다른 권력이 어떻게 같은 언어로 거래되는지를 보여준다. 이 점이 〈클라이맥스〉를 조금 더 요즘의 작품처럼 보이게 한다. 예전 권력극이 하나의 세계를 깊게 파고들었다면, 지금의 권력극은 여러 세계가 얼마나 빠르게 연결되는지를 보여준다. 정치가 연예 뉴스가 되고, 사적인 관계가 공적인 위기로 번지는 시대다. 〈클라이맥스〉는 그 감각을 꽤 정확히 가져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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