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씨는 B의류업체와 영업위임계약을 체결하고 숙녀복 원단 판매 업무를 맡아 왔다. 위 계약은 1년 단위로 자동 연장됐고, 계약서에는 ‘상대방 당사자에 대해 3개월 전 서면으로 통지함으로써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는 취지의 약정과, 귀책 당사자에게 손해배상책임을 부과하는 약정이 함께 포함돼 있었다. 그런데 B업체는 2022년 3월 A씨에게 직물사업 철수를 이유로 위임계약을 해지한다는 의사표시를 하고 같은 해 9월에는 계약기간 만료를 이유로 계약 종료를 통보했다. 이 경우 A씨는 B업체를 상대로 자신에게 불리한 시기에 위임계약을 해지했음을 이유로 영업중단에 따른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을까?
위임계약에 관해 민법 제689조는 각 당사자가 언제든지 계약을 해지할 수 있지만 당사자 일방이 부득이한 사유 없이 상대방의 불리한 시기에 계약을 해지한 때에는 그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따라서 당사자들은 자유롭게 위임계약을 해지할 수 있지만 해지의 시기가 상대방에게 현저히 불리하고 그에 관해 부득이한 사유가 없다면 손해배상책임이 대두될 수 있다. 다만 이 사안의 위임계약은 해지 사유와 절차, 손해배상책임의 발생원인 등을 별도로 정하고 있으므로, 이 약정이 민법 제689조에 우선하는지 나아가 그 적용을 배제하는 취지로 볼 수 있는지 논쟁이 벌어질 수 있는 것이다.
이에 관해 대법원(2026년 1월8일 선고 2025다215829 판결)은 민법 제689조는 강행규정이 아니라 임의규정이므로, 당사자들이 계약으로 해지 사유·절차 및 손해배상책임에 관해 별도로 정한 경우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 약정이 우선 적용될 수 있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이 사안의 영업위임계약이 계약의 해지 또는 해제와 관련해 귀책 당사자가 상대방이 입은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규정을 두고 있는 반면, ‘상대방 당사자에 대한 3개월 전의 서면 통지로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는 약정에는 손해배상에 관한 문언이 존재하지 않는 점에 주목했다. 이러한 계약 구조는 당사자들이 민법 제689조의 일반 규율과 달리, 일정한 방식의 해지에 관해 별도의 손해배상책임을 예정하지 않으려는 의사를 표시한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음에도 원심이 이를 충분히 심리하지 않은 채 곧바로 민법 제689조 제2항에 따른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한 것은 잘못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당사자들의 의사가 민법 제689조의 적용을 배제하는 취지로 해석된다면, A씨가 위 규정을 근거로 B업체에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은 어려울 수 있다. 다만 그렇다고 해 곧바로 모든 손해배상청구가 배제되는 것은 아니다. B업체에게 별도의 계약상 의무 위반이 있거나 위법한 행위와 그에 대한 고의·과실이 인정된다면 채무불이행 또는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청구를 별도로 검토할 수 있으며, 이는 이상의 논의와 별개의 쟁점이다.
Copyright ⓒ 경기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