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섭의 시선N] 종묘 앞 재개발, 되돌릴 수 없는 손실은 사회 전체 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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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섭의 시선N] 종묘 앞 재개발, 되돌릴 수 없는 손실은 사회 전체 몫

뉴스컬처 2026-03-18 00:00:0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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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 현장 시추 모습. 사진=국가유산청
발굴 현장 시추 모습. 사진=국가유산청

[뉴스컬처 이준섭 기자] 종묘 인근 세운4구역 재개발 사업을 둘러싸고 문화유산 보호와 개발 절차를 둘러싼 갈등이 확산되고 있다.

국가유산청은 서울 세운 4구역에서 발생한 무단 시추 작업을 적발하고, 서울주택도시개발공사를 매장유산법 위반 혐의로 지난 16일 경찰에 형사 고발했다. 발굴이 완료되지 않은 유존 지역에서 사전 협의와 승인 절차 없이 지반을 관통하는 작업이 진행됐고, 조사기관의 입회도 배제된 채 중장비가 투입됐다는 점에서 위법성이 중대하다고 판단됐다. 행정적 경고가 아닌 형사 조치로 이어졌다는 사실은 사안의 성격을 분명히 드러낸다.

문제의 현장은 개발 이전에 이미 높은 학술적 가치를 입증한 공간이다. 2022년부터 2024년까지 이어진 조사에서 이 일대에서는 조선 시대 도로 체계를 보여주는 흔적을 비롯해 건물터 약 590동, 우물 199기, 배수로 자취 등이 확인됐다. 이는 당시 도시 구조와 생활 양식을 입체적으로 복원할 수 있는 핵심 자료가 밀집된 지역이라는 의미다.

마을 입구를 방어하고 외부인의 출입을 통제하기 위해 설치된 이문(里門)의 흔적과, 최소 7~8마리의 소뼈가 묻힌 수혈 등도 확인되며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러한 유구들은 생활사와 공동체 구조를 입증하는 중요한 단서로, 역사적 가치뿐 아니라 연구 자산으로서의 의미도 크다.

이처럼 다층적인 유적이 남아 있는 지역은 법적으로 ‘매장유산 유존 지역’으로 관리된다. 발굴조사가 완료됐다는 행정적 조치가 내려지기 전까지는 건설 행위 자체가 제한되며, 모든 물리적 개입은 엄격한 승인 절차와 관리 아래 이루어져야 한다. 문화유산 보호 체계의 핵심 원칙이 작동해야 하는 구간이다.

노란 점으로 표시한 부분이 시추 작업이 이뤄진 것으로 확인된 구역. 사진=국가유산청
노란 점으로 표시한 부분이 시추 작업이 이뤄진 것으로 확인된 구역. 사진=국가유산청

그럼에도 SH공사는 시추 작업을 실시했다. 직경 280㎜, 깊이 38m에 달하는 천공을 열한 곳에서 동시에 진행하며 지층을 직접 관통했다. 작업은 조사기관의 참관 없이 진행됐다. 의도적 여부는 알수 없다.

더욱 문제는 사전 절차의 공백이다. SH 측은 매장유산 보존 계획을 제출했지만, 2024년 문화유산위원회에서 구체성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논의가 보류됐다. 이후 재심의를 위한 보완 자료나 실효성 있는 보존관리 방안은 제출되지 않은 상태가 이어졌다. 

이 같은 시추 작업은 지층 구조를 교란시키고 유구가 존재하는 층층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특히 수 미터 깊이에 걸쳐 남아 있는 유적층은 외부 충격에 취약해, 한 번의 훼손으로도 원형 보존이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다. 문화유산의 특성상 사후 복원이 제한적이라는 점에서, 이러한 물리적 개입은 회복 불가능한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

국가유산청은 지난 13일 현장 조사를 실시한 뒤 모든 관련 행위를 즉각 중단하도록 명령했고, 반입된 중장비 역시 철수시켰다. 추가 훼손을 차단하기 위한 긴급 조치와 함께, 서울시와 종로구를 향해 관리 책임 문제를 강하게 제기했다.

SH공사는 국가유산청의 ‘매장유산법 위반’ 고발에 대해 정면으로 반박했다. 공사는 해명자료를 통해 “지난해 7월 매장문화재 발굴 조사를 마친 뒤 국가유산청의 승인을 받아 같은 해 11월 복토까지 완료했다”고 밝히며, 불법 시추라는 지적은 사실과 다르다는 입장을 내놨다. 발굴 과정에서 확인된 유구 역시 충남 공주 등 외부 보관시설로 옮겨 안전하게 관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논란이 된 최근 지반 조사에 대해서도 선을 그었다. SH공사는 “본공사가 아닌 건축 설계를 위한 기초 자료 확보 차원의 제한적 시추 작업이었다”며 “문화재와 약 33m 이상 거리를 둔 상태에서 진행해 훼손 가능성은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관련 법령과 매장문화재 심의 절차를 준수하며 사업을 적법하게 추진하고 있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서울시는 오는 19일 정비사업 통합심의위원회를 열어 인허가 절차를 진행하고, 이르면 4월 중 사업시행인가를 마칠 계획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국가유산청은 충분한 협의 없이 추진되는 일방적 절차 강행이라는 입장을 밝히며 강한 유감을 표명했다. 행정 기관 간 입장 차는 여전히 좁혀지지 않은 상태다.

세운상가 옥상에서 바라본 종묘의 모습. 사진=서울시
세운상가 옥상에서 바라본 종묘의 모습. 사진=서울시

갈등의 배경에는 종묘가 있다. 종묘는 조선과 대한제국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신 국가 사당으로, 역사성과 상징성을 동시에 지닌 공간이다. 1995년 석굴암, 불국사, 해인사 장경판전과 함께 한국 최초의 세계유산으로 등재되며 국제적 보호 체계 안에 포함됐다.

그러나 세운 4구역 개발 계획에서 건물 높이가 상향 조정되면서 상황은 급격히 변했다. 초고층 개발이 종묘의 경관과 역사적 맥락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고, 이 과정에서 국가유산청과 서울시는 지속적으로 충돌해 왔다.

양측은 최근 두 차례 사전 조정 회의를 진행했지만, 세계유산영향평가 이행 여부와 협의체 구성 방식을 둘러싼 견해 차이를 좁히지 못했다. 갈등은 해소되지 않은 채 누적됐고, 그 긴장감은 이번 사태를 통해 표면화됐다.

16일 기자회견을 하는 허민 국가유산청장. 사진=국가유산청
16일 기자회견을 하는 허민 국가유산청장. 사진=국가유산청

문화유산은 경제적 가치로 환산하기 어려운 공공 자산이다. 개발 이익과 등가로 비교할 수 없는 영역이며, 한 번 훼손되면 원형 복원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그 의미는 더욱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발 논리가 상대적으로 우위를 점하는 구조가 반복되고 있는 현실은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다.

형사 고발로 촉발된 이번 사안은 제도 전반을 점검해야 할 필요성을 다시 부각시킨다. 공기업의 권한 행사 범위와 이를 견제하는 감독 체계의 실효성을 보다 정교하게 재정립하지 않을 경우, 유사한 충돌이 반복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기준이 흔들린 상태에서 추진되는 개발은 더 큰 사회적 비용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훼손된 유산과 무너진 신뢰, 그 부담은 장기간에 걸쳐 결국 사회 전체가 떠안게 된다.

뉴스컬처 이준섭 rhees@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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