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표는 이미 바뀌기 시작했다.
강원과 전북이 특별자치도로 출범했고 전국 곳곳에서 메가시티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이재명 정부가 제시했던 ‘5극 3특’ 국가균형발전 구상 역시 이제는 더 이상 먼 이야기가 아니다. 정부는 국세와 지방세 비율을 7 대 3 수준으로 높이고 주민이 직접 읍·면·동장을 선발하는 ‘주민 선택 동장제’까지 검토하고 있다. 중앙집중의 시대를 넘어 자치와 분권이 국가 운영의 기본 원리가 되는 ‘지방시대’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권한과 예산은 점점 지방으로 내려올 것이다. 그 변화의 파도는 머지않아 시흥의 골목과 마을에도 닿는다.
이 거대한 파도를 담아낼 시흥의 ‘자치 그릇’은 과연 준비돼 있는가 하는 점에 대해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분권의 본질은 단순히 돈이 내려오는 데 있지 않다. 그 예산을 누가, 어떻게 결정하고 사용하는가에 있다. 그러나 현실의 주민자치 현장은 마냥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내생적 발전’이라는 이름 아래 경험 많은 소수 활동가가 정보와 행정 경험을 장기간 독점하는 구조가 형성되기도 한다. 주민자치회나 마을관리기업처럼 마을의 의사 결정과 일자리를 담당하는 조직들이 시간이 흐르며 점점 닫힌 구조로 굳어지는 현상도 곳곳에서 지적된다.
물론 초기 활동가들의 헌신은 지역 공동체의 소중한 자산이다. 그들의 노력 덕분에 많은 마을 자치가 싹틀 수 있었다. 하지만 그 공로가 어느 순간 “할 사람이 없어 우리가 맡고 있다”는 명분이 되고 새로운 주민의 참여를 막는 장벽이 된다면 지역 민주주의는 건강하게 성장하기 어렵다.
더 큰 문제는 앞으로다. 만약 이러한 구조 속에서 대규모 분권 예산이 내려온다면 그 혜택이 지역 전체로 확산되지 못하고 특정 집단에 집중될 위험도 생긴다.
이제 자치는 ‘헌신의 시대’를 넘어 공정한 시스템의 시대로 나아가야 한다. 특정인이 장기간 역할을 독점하지 않도록 제도를 정비하고 누구에게나 참여의 사다리가 열려 있는지 끊임없이 점검해야 한다. 특히 구도심의 역사와 신도시의 활력이 공존하는 시흥에서는 청년과 신규 전입 주민들이 자연스럽게 자치에 참여할 수 있는 통로가 더욱 중요하다. 이를 위해 세 가지 제안을 해본다.
첫째, 특정 집단의 사업 독점을 막는 ‘순환 참여제’를 도입하고 둘째, 청년과 신규 주민의 참여를 보장하는 ‘개방형 쿼터제’를 시행하며 셋째, 주민이 직접 서비스의 질을 평가하는 ‘체감형 만족도 평가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지역은 돈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민주주의로 유지된다.
5극 3특이라는 거대한 국가 전략이 시민 삶의 변화를 만드는 정책이 될지, 또 하나의 행정 구호로 남을지는 결국 지역의 자치 역량에 달려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새로운 권한을 요구하는 일만이 아니다. 그 권한을 공정하게 사용할 준비를 하는 일이다. 지방시대는 이미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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