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 건자재, 가전제품 등 모든 산업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나프타의 재고가 바닥을 드러낼 것이란 우려가 커지면서 정부와 석유화학 기업이 팀을 이뤄 알제리, 인도, 미국 등 대체 공급망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기로 했다.
17일 업계에 따르면 정부와 석화 기업들은 이러한 방침을 세우고 알제리, 인도, 미국 등의 현지 나프타 재고 현황을 파악하는 한편 글렌코어, 트라피구라 등 글로벌 원자재 기업과도 접촉에 나섰다. 이들 국가·기업이 보유한 나프타를 최대한 국내로 들여오기 위함이다.
정부 관계자는 "나프타 대체 공급망 확보를 위해 기업들과 긴밀히 소통하고 있다"며 "중동 외 다른 국가의 나프타 재고를 파악하고 확보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으로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면서 주로 중동 국가에서 나프타를 수입하는 국내 석화 업계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현재 국내에 남은 나프타 재고는 2주 분량이 채 되지 않는 것으로 파악된다. 나프타 재고가 바닥나 에틸렌·부타디엔·방향족 등 기초 유분 생산이 멈추면 여기서 파생되는 다양한 생필품 생산도 함께 멈출 수밖에 없다. 민생 경제의 위기가 코앞에 닥친 것이다.
현재 국내에 공급되는 나프타의 절반은 수입한 원유를 정제해서 얻고, 남은 절반은 중동 등지에서 수입하고 있다. 수입 물량 중 절반 이상(54%)을 호르무즈 해협 안쪽에 있는 아랍에미리트, 카타르, 쿠웨이트 등에서 수급하고 있어 이번 해협 봉쇄의 직격탄을 맞았다. 공급망이 흔들리면서 LG화학, 롯데케미칼, 한화솔루션·DL케미칼·여천NCC 등 주요 석화 업체들은 나프타분해설비(NCC) 가동률을 50%대로 낮추고, 공급 불가항력 가능성을 언급하는 등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했다.
이러한 비상사태 속에서 이재명 정부는 나프타를 더는 민간에 맡겨두지 않고 직접 관리하기로 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이날 오전 이재명 대통령 주재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호르무즈 해협 의존도가 높은 나프타 수급 차질이 발생하고 있다"며 "금주 내로 경제안보품목으로 지정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원유에서 정제한 나프타의 해외 수출을 제한하고 국내에 우선 공급하는 방안도 함께 추진할 전망이다. 경제안보품목은 특정 국가에 대한 수입 의존도가 높고 공급망 교란 시 국민 생활과 국가 경제에 치명적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정부가 집중 관리하는 원자재·부품·장비를 뜻한다.
정부와 석화 업체들은 중동 못지않은 산유국이라 나프타 재고에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알제리와 인도에 큰 기대를 거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함께 싱가포르와 인도네시아 시장에 풀린 커머셜 탱크(원산지 혼합) 나프타 재고를 확인하고 이를 수입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명예교수는 "알제리, 인도, 미국 외에 객관적으로 더 나은 나프타 공급망을 찾는 것은 어렵다"며 "나프타 공급 부족으로 인해 석화 제품 수요가 급감할 우려가 커지는 등 국가 경제에 심각한 위기 상황인 만큼 (국민·기업은) 정부가 적극 노력하는 것을 믿고 따르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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