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경영이나 사업 전망과는 전혀 무관한 이슈에 의존해 주식을 사고파는 행위, 이른바 '묻지마 투자'가 해외 증시에서도 빈번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해외 증시에선 국내에선 사례를 찾아보기 힘든 황당한 이유로 주가가 요동치는 경우도 적지 않아 해외 증시에 투자하는 국내 투자자들의 주의가 요구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해외 증시의 특성 상 국내 증시에 비해 정보 습득이나 특유의 분위기 파악이 어려울 수밖에 없는 만큼 더욱 신중한 투자가 요구된다고 입을 모았다.
야구 졌는데 떨어지고 이름 비슷해서 폭등하고…세계 각국의 '묻지마 투자' 사례들
금융투자업계 등에 따르면 얼마 전 일본의 야구 국가대표팀이 '2026 월드베이스볼 클래식(WBC)' 8강전에서 베네수엘라에 패해 탈락하자 현지 증시에선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일본의 야구스타 오타니 쇼헤이와 이름이 같은 '오타니공업'의 주가가 요동을 쳤다. 16일 오타니공업은 전 거래일 대비 9.32% 내린 5450엔에 장을 마감했으며 장 중 한때 10% 넘게 급락하기도 했다. 오타니공업은 전력 철탑용 부자재를 만드는 제조업체로 야구 선수와는 전혀 접점이 없다.
바로 직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지난 10일 WBC 조별리그 체코전에서 메이저리그(MLB) 시카고 화이트삭스 소속 무라카미 무네타카 선수가 8회 말 쐐기 만루 홈런을 터뜨리자 다음날인 11일 증시에서는 자동차 거울 제조사 '무라카미 코퍼레이션'의 주가가 2% 가량 상승 출발했다. 당시 일본 투자자들 사이에선 "이름이 무라카미라 샀는데 정말 올랐다" "WBC 수혜주" "지금 매수해 준결승쯤 매도하면 차익을 볼 수 있다" 등 기업 본질과는 무관한 황당한 투자 전략이 공유되기도 했다.
주가와는 전혀 무관한 요인을 근거로 투자를 시도하는 이른바 '묻지마 투자'는 세계 각국 증시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 중 하나다. 미국에서 발생한 '줌(Zoom) 소동'이 대표적이다. 코로나19 초기 화상회의 서비스인 '줌 비디오 커뮤니케이션(ZM)'이 한창 조명을 받던 시기 사명이 유사한 '줌 테크놀로지(ZOOM)'의 주가가 덩달아 상승했다. 줌 테크놀로지는 화상회의와는 무관한 통신 장비 부품 제조사였음에도 불구하고 주가가 단기간에 약 900%가량 치솟았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투자자 혼동을 우려해 해당 종목의 거래를 일시 중단시키는 조치를 내리기도 했다.
2021년 1월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의 '시그널(Signal)' 트윗 소동도 유사한 사례로 평가된다. 당시 머스크는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보안 메신저 시그널을 추천하며 "시그널을 써라(Use Signal)"라는 짧은 글을 남겼다. 이후 의료기기 업체 '시그널 어드밴스'에 매수세가 집중됐고 0.6달러 수준이던 주가는 단 3일 만에 장중 30~40달러 선을 돌파하며 약 6000% 폭등했다. 당시 메신저 시그널 측이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우리는 주식 시장에 상장된 그 회사가 아닌 비상장 기업이다"고 밝혔음에도 투기 광풍은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았다.
'묻지마 투자'로 인해 이미 파산한 기업의 주가가 폭등한 사례도 있다. 지난 2007년 파산 보호 신청 후 주요 거래소에서 퇴출당해 장외시장(OTC)에서 'TWTRQ'라는 티커(종목코드)로만 거래되던 가전 유통업체 '트위터(Tweeter Home Entertainment)' 주식은 코로나19 펜데믹 초기 소셜미디어 트위터(Twitter)와 이름이 유사하다는 이유만으로 하루 만에 1000% 이상 가격이 급등한 적 있다.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결국 미국 금융산업규제기구(FINRA)는 투자자 보호를 위해 해당 종목의 거래를 강제 중단시키는 조치를 내렸다.
중국에서도 '묻지마 투자' 현상이 심심찮게 나타나고 있다. 지난 2024년 11월 6일 미국 대선 당시 트럼프 후보의 당선 가능성이 커지자 중국 소프트웨어 업체 '촨다즈성(川大智胜)'의 주가가 장중 10% 가량 치솟았다. 해당 기업의 주가 상승 이유는 트럼프의 중국식 이름인 '촨푸(川普)'에 '지혜로운 큰 승리'라는 뜻이 더해진 '촨푸다즈성(川普大智胜)'과 발음이 비슷하다는 것이었다. 반면 같은 날 보온병 제조업체 '하얼스(哈尔斯)'의 주가는 8% 이상 급락하며 대조를 이뤘다. 하얼스의 주가 하락 역시 트럼프 대통령의 경쟁 상대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의 이름과 발음이 유사하다는 이유였다.
국내 증시에서도 주가의 본질과는 무관한 '이름 소동'이 잊을만 하면 한 번씩 등장하고 있다. 지난 2022년 제16호 태풍 '노루'가 북상하자 명칭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노루페인트의 주가가 급등하는 촌극이 벌어진 적 있다. 또 만화 '드래곤볼'의 작가 토리야마 아키라 별세 당시에는 주인공 이름과 같은 완구 기업 손오공의 주가가 상승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주가와는 전혀 무관한 요인에 의존한 '묻지마 투자' 자체가 실패 위험이 큰 투기 성격이 강한데다 특히 해외 증시의 경우 정보를 습득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만큼 더욱 주의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부 교수는 "언어유희에 기반한 테마주 투자는 우리나라만의 특수한 문화가 아닌 전 세계적인 공통된 현상이다"며 "글로벌 시장에서 확인되듯 실적에 기반하지 않은 투자는 결국 폭탄 돌리기로 끝날 수밖에 없기 때문에 투자자들의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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