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치료를 마친 환자들이 많이 하는 질문 중 하나가 해외여행이다. 일상 복귀의 신호탄이자 스스로에게 주는 보상이지만, 비행기 탑승은 암 환자에게 생각보다 복잡한 문제다. 혈전, 림프부종, 면역 저하까지… 출발 전 반드시 점검해야 할 사항을 정리했다.
암 치료를 끝낸 환자들이 비행기 탑승을 고려할 때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것은 시기다. 의료계에서는 수술 후 일반적으로 최소 4주가 경과하고 상처가 완전히 아문 뒤, 항암·방사선 치료로 저하된 면역력이 일상생활이 가능한 수준으로 회복된 이후를 탑승 가능 시점으로 본다.
골수이식이나 줄기세포이식을 받은 환자는 기준이 더 엄격하다. 이식 후 6~12개월간은 해외여행을 피하는 것이 원칙이다. 암의 종류, 치료 방법, 현재 컨디션에 따라 판단 기준이 달라지기 때문에 모든 환자는 출발 전 주치의와 상담해 '비행 가능' 여부를 직접 확인해야 한다.
혈전, 암 환자에게 비행이 위험한 이유
기내에서는 좁은 공간에 장시간 앉아 있어야 하고, 낮은 습도로 인해 탈수가 진행되기 쉽다. 이 같은 환경은 혈액을 끈끈하게 만들어 다리 정맥에 혈전이 생기는 심부정맥혈전증(DVT)을 유발할 수 있다. 혈전이 폐로 이동하면 폐색전증으로 이어져 생명을 위협할 수 있다.
문제는 암 환자의 혈전 위험이 일반인과 차원이 다르다는 점이다. 의학 문헌에 따르면 암 환자의 정맥혈전색전증(VTE) 위험은 일반인의 4~7배에 달하며, 장거리 비행까지 더해지면 최대 18배까지 높아질 수 있다. 혈전 위험은 비행 4시간부터 의미 있게 높아지기 시작하며, 2시간이 늘어날 때마다 위험이 약 26%씩 추가 상승한다.
미국혈액학회(ASH)는 활성 암 진단, 최근 수술, DVT 병력 등 고위험 요인이 있는 경우 4시간 이상 비행에서 의료용 압박 스타킹 또는 저분자헤파린(LMWH) 예방 투여를 권고한다. 혈전 예방을 위해서는 충분한 수분 섭취, 통로 쪽 좌석 이용, 30~45분마다 자리에서 일어나 걷기, 종아리 스트레칭도 기본으로 실천해야 한다. 최근 DVT나 폐색전증을 경험한 환자는 치료가 안정될 때까지 4주 이상 비행을 피해야 하며, 불가피한 경우 항공사에 의료 소견서를 제출해야 한다.
림프절 절제 환자, 위험도별로 다르게 대응해야
유방암·부인암 등으로 림프절 절제 수술을 받은 환자는 기내에서 림프부종을 주의해야 한다. 기내 기압은 지상보다 낮아(통상 0.75~0.82기압 수준) 조직이 부풀기 쉬운 환경이 조성된다.
다만 비행기 탑승 자체가 림프부종을 새로 유발한다는 근거는 아직 충분하지 않다. 2017년 체계적 문헌고찰에서 비행 경험자 2051명을 분석한 결과, 비행 경험군과 비경험군의 림프부종 발생률 사이에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이미 림프부종이 있거나 간헐적으로 붓는 환자는 비행으로 증상이 악화될 수 있어 위험도에 따른 개별 대응이 필요하다.
면역 저하 환자, 여행지 선택부터 신중해야
항암 치료 직후 몇 주간은 감염에 극도로 취약한 시기다. 골수·줄기세포 이식 후에는 수개월간 면역 저하 상태가 지속된다. 위생 수준이 낮거나 의료 접근성이 떨어지는 지역은 피해야 하며, 말라리아·장티푸스 등 감염 위험이 높은 지역 방문은 출발 전 주치의와 반드시 상의해야 한다.
항암제·표적치료제·방사선 치료를 받은 환자는 피부가 자외선에 더 민감해지기 때문에 치료 후 첫 1년간은 강한 자외선 노출을 피하고 차단제와 긴 소매 의류를 준비해야 한다. 황열·수두 등 생백신은 면역 저하 상태에서 금기일 수 있어 출국 전 반드시 확인이 필요하다.
'영문 소견서'와 '현지어 번역본'은 제2의 여권
해외에서 응급 상황이 발생했을 때 현지 의료진에게 상황을 빠르고 정확하게 전달하려면 준비된 서류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소견서에는 진단명, 치료 이력, 복용 중인 약물의 성분명과 용량, 응급 상황 시 대처 지침, 주치의 연락처가 포함돼야 한다. 영문 소견서에 더해 여행지 현지 언어 번역본을 준비하면 응급 상황에서 훨씬 유리하다.
약은 여행 기간보다 최소 1주 이상 여유 있게 처방받아야 한다. 해외에서 동일 성분 약을 구하기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해열제·지사제·항구토제 등 비상약도 출국 전 담당 의사에게 처방받아 별도로 챙겨야 한다. 여행자 보험은 '기존 질환' 특약이 포함된 상품인지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일반 여행자 보험은 암 관련 의료비를 보상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빡빡한 패키지보다 '내 몸 중심' 자유 여행을
암 치료 후에는 예전만큼의 체력이 바로 돌아오지 않는다. 일정을 무리하게 채운 패키지 여행보다는 컨디션에 따라 언제든 쉬거나 일정을 바꿀 수 있는 자유 여행이 적합하다. 첫 여행지는 의료 시설 접근이 용이한 도시를 선택하는 것이 현명하다.
기내에서는 통로 쪽 좌석을 선택해 보행이 편하도록 해야 하며, 시차 적응 중 복약 시간이 달라지는 경우 출발 전 주치의와 스케줄을 미리 조정해 두는 것이 필요하다. 피로감이 급격히 늘거나 발열, 출혈, 심한 부종이 생기면 즉시 현지 의료 기관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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