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노규민 기자] '유행' 한다는 두쫀쿠를 지인에게 선물 했다. 그런데 진작에 유행이 끝났단다. "빨리 빨리"를 외치던 한국 사회는 더 빨라졌다. 눈 깜짝할 사이 시대에 뒤처지는 사람이 된다. 우리는 '빠름의 시대'를 산다. 특히 젊은 세대는 더 빠름을 추구하며, 참고 기다리는 것을 불편해한다. 이 시대의 빠름을 어떻게 품을 수 있을까? 빠른 속도를 통해 우리는 무엇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이 질문으로 시작 된 공연이 있다.
서울시무용단이 선보이는 '스피드'는 한국무용의 핵심 요소인 '장단'을 중심으로 시간의 흐름과 속도의 변화를 탐구하는 작품이다. 느린 호흡에서 시작해 극단적으로 빠른 리듬에 이르렀다가 다시 고요한 흐름으로 돌아오는 과정이 무용수들의 움직임을 통해 펼쳐진다. 윤혜정 단장은 현대 사회가 지닌 '빠름'의 감각을 한국춤의 긴 호흡 속에서 되짚어보고자 이번 창작을 구상했다고 설명했다. 전통에 기반한 한국무용의 미학과 현대적 상상력을 결합, 서울시무용단의 확장된 표현 영역을 보여주겠다는 의도다.
오는 5월 1일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막이 오른다. 지난해 약 300석 규모의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선보였던 초연과 달리, 이번에는 약 600석 규모의 M씨어터로 무대를 확장, 한층 강화된 스케일을 펼친다. 무대 구조부터 변화를 준다. 초연이 블랙박스 형태의 공연장에서 바닥 전체를 LED로 구성해 관객이 내려다보는 방식이었다면, 이번에는 프로시니엄 구조를 활용해 보다 극적인 장면 연출을 강조한다.
무대 전체는 전통 악기 장구의 형태를 모티프로 설계된다. 장구의 궁편과 채편 위치에는 실제 연주자와 미디어 아티스트가 자리해 소리와 영상이 어우러진 무대를 만든다. 무용수들은 거대한 장구를 형상화한 공간 속에서 움직이며, 관객은 공연장 전체에 퍼지는 리듬의 흐름을 입체적으로 경험하게 된다.
무대에서는 국악 연주와 전자음악, 미디어아트가 동시에 호흡한다. 국악그룹 SMTO무소음의 멤버이자 밴드 블랙스트링의 타악 연주자인 황민왕, 프랑스 마르세유와 서울을 오가며 활동하는 음악가 겸 시각예술가 해미 클레멘세비츠, 그리고 뉴미디어 아티스트 이석이 초연에 이어 이번 공연에도 참여한다. 이들은 라이브 연주와 영상 작업을 통해 무용수들의 움직임에 즉각 반응하며 무대의 에너지를 확장한다.
특히 공연 중반 펼쳐지는 즉흥 독무 장면을 놓치면 안 된다. 단 한 명의 무용수가 정해진 안무 없이 움직이면, 음악 또한 그 흐름에 맞춰 즉석에서 변화한다. 같은 장면이 반복되지 않는 유일한 무대로, 초연에서 호평을 받았던 서울시무용단의 김민지와 노연택이 다시 무대에 올라 즉흥 춤을 선보인다.
이처럼 '스피드'는 한국무용 컨템퍼러리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작업이었으면 하는 고민에서 출발했다. 한국춤의 시작을 생각했을 때, 그곳에는 장구 장단이 있었다. 장단과 가락의 종류가 한국춤의 다양한 레퍼토리를 만들어냈다. 이 시대 컨템퍼러리라는 장르는 무엇을 담을 수 있고 무엇에 공감하며 움직일 수 있을까에 대해 질문했다. 장단의 다양성과 확장성이 우리의 움직임을 발전시키고 변화시키는 요소가 될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한 뒤, 장구를 매개로 속도의 이야기를 풀어보기로 했다.
이 작품은 각자의 속도감 차이에 주목한다. 현대인이 추구하는 '빠름'의 절정 그 후에 무엇이 우리를 기다리는가에 대해 질문한다. 무용수들 개개인은 장구 울림통 속의 물리적 파동들이다. 무대는 장구 안에서 울리는 리듬의 공간이 되고, 무용수들의 움직임은 장단의 빠르기에 따라 리듬과 선율에서 박으로, 엇박으로, 그리고 점점 가속으로 치닫는 스피드를 표현한다.
서울시무용단은 올해 초 레퍼토리 '일무'(One Dance)로 뉴욕에서 열리는 베시 어워드에서 '최우수 안무가·창작자' 부문을 수상하며 국제적인 주목을 받았다. '스피드'는 그 이후 선보이는 올해 첫 작품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뉴스컬처 노규민 pressgm@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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