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메이커=김갑찬 기자]
“삼성은 내 인생” 팬에서 상징이 된 남자 ‘김동현’
카메라 앞에서 누구보다 거칠게 화내고 크게 웃으며 때로는 누구보다 먼저 울컥하는 남자. 삼성 라이온즈를 향한 그의 감정은 계산되지 않았고 편집되지 않았으며 타협되지 않았다. 9년이라는 시간 동안 그는 암흑기를 함께 견디고 연패를 술로 버티고 가을야구를 눈물로 맞이했다. 선수도 해설가도 아닌 ‘한 명의 팬’으로 시작했지만 이제 그는 삼성 팬덤을 상징하는 이름이 됐다. 불방맹이. 인간 김동현의 인생 스토리는 어느새 야구와 분리할 수 없는 시간이 되었다.
삼성 라이온즈 편파를 넘어 야구 중계의 새로운 재미 선사
그는 스스로를 “야구를 조금 더 크게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9년 동안 삼성 라이온즈를 편파 중계하며 쌓아온 시간은 단순한 ‘좋아함’을 넘어선다. 대구에서 태어나 자연스럽게 삼성 야구를 보며 자랐고 아버지의 영향 아래 밥상머리에서 야구를 배우듯 익혔다. 야구장 응원석의 함성은 그에게 일종의 해방구였다. 산만하다는 말을 듣던 소년은 응원가 속에서 자신의 에너지를 찾았다. 그렇게 야구팬, 삼성 라이온즈팬이 되었고 그 팬심은 어느 순간 방송이 됐다. 암흑기의 시작과 함께 라팍 시대로 넘어오던 시기 그는 아프리카TV에서 편파 응원 방송을 시작했다. 처음엔 시청자 두 명이 전부였다. 그중 한 명은 자신의 휴대폰이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았다. 삼성 라이온즈 김상헌 응원단장의 도움으로 처음 100명을 찍던 순간, 그는 이 길이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부딪혀볼 현실’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러나 그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중계권이 사라지며 입중계로 전환됐고 많은 스트리머들이 떠났다. 화면 없이 야구를 중계한다는 건 무모한 도전이었다. 하지만 그는 “망하더라도 해보자”는 마음으로 버텼다. 편집자를 둘 수 없어 직접 밤새 유튜브 편집을 했고, 하루 두세 시간 자며 시즌을 버텼다. 그 시간은 혹독했지만 결과적으로 전환점이 됐다. 유튜브 구독자는 빠르게 늘었고 삼성 팬을 넘어 타 구단 팬들까지 유입되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SOOP 플랫폼에서 파트너 스트리머로 선정되며 또 한 번 의미 있는 발걸음을 내디뎠다. 그는 “팬분들 그리고 구독자분들 덕분에 SOOP에서 좋은 콘텐츠로 봐주셔서 파트너 스트리머 계약을 맺게 되었다. 앞으로 야구 팬분들과 더 재미있는 콘텐츠를 만들어보겠다. 너무 감사하다”고 소감을 전했다. 이제 불방맹이는 단순한 BJ가 아닌 하나의 브랜드가 됐다.
‘불방맹이’라는 이름과 방송의 시작은?
“불방맹이라는 이름은 사실 방송을 하면서 만든 게 아닙니다. 왕조시절 당시 삼성 타선이 막강했고 특히 나바로가 홈런 치고 방망이 돌리는 모습이 너무 멋있어서 유니폼에 ‘불방맹이’ 마킹을 하고 야구장을 다녔습니다. 그게 자연스럽게 닉네임처럼 굳어졌습니다. 방송은 라팍 시대로 넘어오면서 팀이 암흑기에 접어들던 시기에 시작했습니다. 친구가 아프리카TV에서 삼성 편파 응원 방송을 할 수 있다고 알려줬고 ‘어차피 야구장 매일 가는데 카메라 켜볼까’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첫 방송을 켰을 때 시청자가 두 명이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제 휴대폰이었고 다른 한 분은 잠깐 들어왔다 나가셨습니다. 채팅창이 조용해졌을 때 ‘아, 이게 현실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상하게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때는 수익도 미래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삼성 야구를 좋아하는 제 감정을 누군가와 나누고 싶었을 뿐이었습니다.”
불방맹이의 어린 시절과 삼성 라이온즈의 팬이 된 계기가 궁금하다
“학창 시절 모범생은 아니었습니다. 일진은 아니었지만 산만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고 호기심이 많아서 어머니가 학교에 불려오기도 했습니다. (웃음) 그런데 야구장에만 가면 이상하게 집중이 됐습니다. 아버지가 대구상고 출신이라 집에서는 항상 삼성 경기가 틀어져 있었고 밥상머리에서 자연스럽게 삼성 야구를 보며 자랐습니다. 응원가와 함성 속에서 느끼는 감정은 저에게 일종의 해방이었습니다. 야구는 그냥 스포츠가 아니라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었고, 아버지와의 추억이었습니다. 그래서 삼성은 저에게 팀 이상의 의미를 갖습니다. 팀 성적이 좋으면 집안 분위기도 좋았고 지면 괜히 아버지가 말이 줄어들던 기억도 있습니다. 그런 기억들이 쌓여 지금의 팬심이 만들어졌다고 생각합니다.”
방송인이 아닌 막창집 사장님이 될 뻔했다고 들었다
“아버지가 쓰러지신 뒤에는 자연스럽게 가게 일을 도왔습니다. 부모님이 고깃집을 하셨고 저는 그 길을 이어야 할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새벽까지 가게에 묶여 있는 삶을 계속 상상해보니 제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솔직히 겁도 났습니다. 어머니께 말씀드리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결국 가게를 정리했고 그 선택은 오랫동안 마음에 남았습니다. 그런데 방송을 시작하고 자리 잡으면서 다시 어머니께 가게를 차려드렸습니다. 가게에 구독자들이 와서 “불방맹이 아세요?”라고 묻고, 어머니가 웃으시던 모습이 아직도 잊히지 않습니다. 그 순간 처음으로 ‘아, 내가 도망친 게 아니라 다른 길을 선택한 거구나’라고 느꼈습니다.“
방송 초창기 가장 힘들었던 현실과 전환점은 무엇이었을까
”처음에는 시청자가 없다는 게 가장 힘들었습니다. 최소 10명은 올 줄 알았고 100명은 금방 찍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김상헌 응원단장님이 방송에 나와주셨을 때 처음 100명을 찍었는데 그날은 정말 울컥했습니다. 하지만 진짜 위기는 플랫폼의 중계권이 사라지고 입중계를 해야 했을 때였습니다. 화면 없이 야구를 중계한다는 건 거의 맨몸으로 싸우는 느낌이었습니다. 주변에서는 다들 안 된다고 했고 실제로 접는 분들도 많았습니다. 그때 유튜브를 같이 시작했는데 편집자를 못 구해 제가 직접 밤새 편집을 했습니다. 브이 누르고 자르고 다시 돌려보며 새벽 두세 시가 아니라 해 뜰 때까지 작업한 적도 많습니다. 그때가 육체적으로는 제일 힘들었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 시간이 저를 단단하게 만들었습니다.“
시즌 중 감정 기복과 삼성 라이온즈 암흑기 당시의 심정은 어땠습니까?
”방송 중 감정이 그대로 노출됩니다. 이기면 세상을 다 가진 것 같고 지면 제가 대신 책임지는 기분이 듭니다. 특히 13연패 시절은 제 인생에서도 가장 힘든 시기였습니다. 스트레스를 술로 풀었고 일주일에 다섯 번 술 먹방을 했을 정도였습니다. 결국 건강이 무너져 담낭 제거 수술까지 받았습니다. 그 정도로 삼성의 성적이 제 삶에 영향을 줬습니다. 야구가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제 직업이자 정체성이었기 때문에 연패는 개인적인 상처처럼 느껴졌습니다. 그 시기를 지나면서 야구를 대하는 태도도 조금은 달라졌습니다. 감정은 여전히 뜨겁지만 스스로를 지키는 법도 배우고 있습니다.“
무속인을 찾고 갓바위에 오를 정도로 미신에도 진심인 이유는?
그만큼 간절했기 때문입니다. 암흑기 시절 무속인을 찾아가 부적을 사서 라팍 동서남북에 묻는 콘텐츠를 했고 13연패를 끊어달라고 소원 바위에 가서 기도도 했습니다. 미신을 믿느냐고 묻는다면 저는 믿는다고 말합니다. 그건 종교적 의미라기보다 간절함의 표현이었습니다. 삼성의 성적이 제 삶과 직결돼 있었기 때문에 어떻게든 바꾸고 싶었습니다. 누군가는 웃고 넘길 수 있는 콘텐츠지만 저는 진심이었습니다. 그때는 웃기려고 한 게 아니라 진짜로 바라고 기도했던 시간이었습니다.
불방맹이의 콘텐츠 중 가장 화제가 됐던 콘텐츠는 무엇인가?
”최근 최형우 선수 복귀 이슈가 가장 컸습니다. 입단 환영 전광판 확인하러 가고 오피셜을 기다리고 비행기 추적까지 하면서 저도 모르게 감정이 폭발했습니다. 채팅창이 미친 듯이 올라가던 그 순간 삼성 팬들이 왕조 시절을 얼마나 그리워하는지 체감했습니다. 단순히 조회수가 올라간 게 아니라 팬들의 감정이 한꺼번에 쏟아지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내가 팬들의 감정을 대신 표현하는 사람이 되었구나’라는 책임감을 느꼈습니다. 이후 콘텐츠를 만들 때도 단순한 웃음보다 팬의 정서를 생각하게 됐습니다.“
선수들과의 관계와 방송 중 발언 수위 관련 고민도 많을 듯하다
”저는 기본적으로 팩트 위주로 말하지만 하고 싶은 말은 합니다. 그래서 선수들이 방송을 본다고 하면 솔직히 겁이 납니다. 이승민 선수에게 했던 말이 실제로 전달됐다는 걸 알았을 때 얼굴이 빨개졌습니다. 하지만 저는 선수 출신이 아니고 팬이기 때문에 팬의 시선으로 말하는 게 제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인신공격은 하지 말자, 선은 지키자, 이 기준은 늘 생각합니다. 발언 하나가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삼성 라이온즈 이외에 애착 가는 팀이 있을까?
”팬분들이 장난으로 갸방맹이, 롯방맹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사실 롯데와 기아에 약간의 애정은 있습니다. (웃음) 어릴 때 아버지와 사직을 갔던 기억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건 추억이지 정체성은 아닙니다. 13연패 때 키움 편파하겠다고 농담처럼 말했다가 하루 만에 돌아왔습니다. 팀은 못 바꾸겠더라고요. 저는 삼성 팬으로 시작했고 삼성 팬으로 끝날 사람입니다.“
올시즌 삼성 라이온즈가 우승한다면 그 순간은?
”그날은 방송을 하지 않겠습니다. 우승 확정 경기는 제 눈으로 보고 싶습니다. 2012, 2013, 2014년 우승 장면을 현장에서 다 봤고 특히 2013년 한국시리즈 7차전은 제 인생 경기입니다. 그 감정은 콘텐츠로 소비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 순간만큼은 스트리머가 아니라 그냥 삼성 팬으로 서 있고 싶습니다. 10년을 기다린 감정을 채팅창과 나누기보다 제 가슴에 담고 싶습니다. 이는 오래 전부터 팬들에게도 공언했던 부분이기에 충분히 이해해주리라 믿습니다.“
불방맹이, 그리고 인간 김동현에게 야구와 삼성 라이온즈는 어떤 의미인가?
”너무 진부하지만 야구와 삼성 라이온즈는 이제 제 인생입니다. 삼성 덕분에 방송을 시작했고 사람들을 만났으며 제 삶의 방향이 바뀌었습니다. 연예인도 아니고 선수도 아닌데 팬으로서 이렇게 사랑받는다는 게 아직도 믿기지 않습니다. 더 크게 성공하는 것보다 오래 남고 싶습니다. 삼성 팬들이 ‘저 사람은 우리랑 같이 울고 웃었던 사람’이라고 기억해준다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지금 이 순간이 제 인생의 하이라이트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하이라이트를 길게 이어가고 싶습니다.“
불방맹이는 여전히 자신을 “그냥 라이온즈를 좋아하는 팬”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지난 9년의 시간은 그를 팬에서 상징으로 만들었다. 연패를 함께 울고 가을야구를 함께 꿈꾸며 그는 라이온즈 팬들의 감정을 대신 표출해왔다. 우승의 순간이 오면 그는 방송을 끄고 한 명의 팬으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어쩌면 그것이 불방맹이 김동현이라는 사람의 가장 정확한 정의일지도 모른다. 팬에서 시작해 팬으로 남고 싶은 남자. 불방맹이와 삼성 라이온즈의 2026년 화려한 비상이 기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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