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N유산] 도성의 시간을 울리다, '보신각종'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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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N유산] 도성의 시간을 울리다, '보신각종'의 기억

뉴스컬처 2026-03-16 14:35:23 신고

[뉴스컬처 이준섭 기자] 서울 종로 한복판, 수많은 차량과 인파가 오가는 도심의 중심에는 오랜 시간의 흔적이 켜켜이 쌓인 공간이 있다. 바로 보신각이다. 누각 아래에는 한 시대의 시간을 울려 알리던 거대한 범종, 보신각종이 자리한다. 오늘날 시민들에게는 연말 자정에 울리는 ‘제야의 종’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보신각종이 지닌 의미는 새해맞이 상징을 넘어선다. 보신각종은 조선 왕조의 도시 운영 방식과 종교·정치의 관계, 그리고 근현대 사회가 전통을 계승하고 재해석해 온 과정까지 함께 담아낸 문화유산이다.

보신각종의 기원은 조선 세조 14년인 146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보신각종은 원래 불교 사찰인 원각사에 걸기 위해 주조된 범종이었다. 현재 탑골공원 자리에 위치했던 원각사는 왕실의 후원을 받아 세워진 사찰로, 조선 초기 왕권과 불교가 일정한 관계 속에서 공존하던 시대적 분위기를 보여주는 공간이었다. 이 배경 속에서 제작된 보신각종은 사찰의 종이 아니라 왕실 권위와 종교적 상징성이 결합된 유물이기도 했다.

보신각종. 사진=국립중앙박물관
보신각종. 사진=국립중앙박물관

시간이 흐르면서 종의 역할은 크게 달라졌다. 원각사가 사라진 뒤 종은 여러 장소를 거쳐 이동했고, 1619년 광해군 시기에 종로의 종각에 걸리면서 한양 도성의 시간을 알리는 공공 장치로 자리 잡았다. 사찰의 울림이던 종소리가 도시 전체의 질서를 조율하는 소리로 확장된 것이다.

조선시대 보신각종은 하루 두 차례 울렸다. 새벽에 울리는 ‘파루’ 종소리는 성문이 열리는 시간을 알렸고, 밤에 울리는 ‘인정’ 종소리는 성문이 닫히는 시각을 의미했다. 파루는 33번, 인정은 28번이라는 일정한 규율 속에서 타종되었다. 종소리는 한양 시민들에게 하루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신호이자 도시 생활을 조직하는 기준이었다.

이러한 기능 속에서 보신각종은 종교 의례의 기물을 넘어 도시 행정의 핵심 장치로 자리 잡았다. 종이 울리는 순간은 도성의 시간 질서가 작동하는 순간이었고, 관청과 시장, 성문과 거리의 흐름이 하나의 리듬으로 묶였다. 종소리는 수도의 생활을 조율하는 공공의 신호였던 셈이다.

종의 외형 역시 조선 전기 금속 공예의 특징을 보여준다. 종 상단에는 두 마리 용의 머리를 형상화한 고리가 달려 있고, 몸체 중앙에는 세 겹의 굵은 띠가 둘러져 있다. 이러한 구조는 고려 말 범종 양식을 계승한 것으로, 조선 초기 장인들의 제작 기술과 미적 감각을 보여주는 중요한 요소다.

종을 걸기 위한 누각 역시 긴 역사를 지닌다. 보신각의 전신인 종루는 1396년 태조 때 처음 세워졌다. 이후 화재와 전쟁을 거치며 여러 차례 재건되었다. 특히 임진왜란 당시 종루가 크게 파괴되었지만, 이후 복구를 통해 기능이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종각 일대는 한양의 중심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종로’라는 지명 자체가 ‘종이 있는 거리’에서 유래했을 만큼 이곳은 수도의 상징적 장소였다. 종소리가 울리면 도성의 하루가 시작되거나 마무리되었고, 이는 곧 도시 전체의 생활 리듬을 결정하는 기준이 되었다.

보신각종. 사진=국립중앙박물관
보신각종. 사진=국립중앙박물관

1895년에는 종각에 ‘보신각’이라는 이름이 공식적으로 붙었다. 고종이 직접 쓴 편액이 걸리면서 이 공간은 조선 말기 서울을 대표하는 상징적 건축물로 자리매김했다. 전통적인 시간 체계와 근대적 시간 개념이 공존하던 시기였다는 점에서 보신각종은 시대 전환기의 상징적 유물로도 해석된다.

이후 한국전쟁은 보신각의 역사에 또 다른 변화를 남겼다. 전쟁으로 종각이 크게 파손되면서 건물은 복구 과정을 거쳤다. 1953년 1차 중건이 이루어졌고, 1979년에는 철근 콘크리트 구조의 2층 종루로 다시 세워지며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전통 양식을 유지하면서도 현대적 구조를 적용한 건축으로, 전후 복구와 도시 근대화의 흐름을 보여준다.

문화재 보호 정책 속에서 종 역시 변화를 맞았다. 조선시대에 제작된 원래의 종을 보존하기 위해 1985년 새로운 종이 제작되었고, 현재 행사에서 울리는 종은 이 신종이다. 옛 보신각종은 문화재로 보존되며 역사적 가치를 이어가고 있다.

오늘날 보신각종은 매년 12월 31일 자정에 열리는 제야의 타종 행사로 시민들과 만난다. 수많은 사람들이 종로 일대에 모여 새해를 맞이하고 종소리를 듣는 풍경은 서울의 대표적인 연말 장면이 되었다. 이때 종은 상징적으로 33번 울리며 새로운 한 해의 시작을 알린다.

성문이 사라지고 도시의 생활 방식이 크게 달라진 오늘날에도 보신각은 여전히 서울 도심의 상징적 공간으로 남아 있다. 종각과 종은 수도 서울이 축적해 온 역사와 문화의 연속성을 보여주는 상징적 존재다.

이제 보신각종은 더 이상 도성의 시간을 관리하는 행정 장치는 아니다. 그러나 수백 년 동안 이어져 온 그 울림은 서울이라는 도시가 시간을 이해하고 기억해 온 방식을 말해준다. 왕조 시대의 공공 신호에서 현대 도시의 문화유산으로 이어진 보신각종의 역사는, 한 도시의 기억이 어떻게 전통과 함께 살아남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이야기이기도 하다.

뉴스컬처 이준섭 rhees@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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