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이란 간의 전쟁 여파로 급등한 기름값을 잡기 위해 정부가 '석유 최고가격제'를 전격 시행한 지 사흘째를 맞았으나, 소비자가 체감하는 가격 인하 효과는 여전히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정유사 공급가 상한을 대폭 낮추는 강수를 두었음에도 불구하고, 일선 주유소의 판매가격 반영 속도가 재고 소진 시차에 가로막혀 '거북이걸음'을 면치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급가 상한제 효과 '주춤'… 실제 인하액은 정부 목표의 절반 수준
지난 15일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시스템 오피넷에 따르면, 이날 오후 전국 주유소 평균 휘발유 가격은 리터(L)당 1,840.9원으로 제도 시행 전인 12일 대비 57.9원 하락했다. 경유 역시 L당 1,842.1원으로 같은 기간 76.9원 내렸다. 시행 첫 이틀간 두 자릿수였던 일일 하락 폭은 이날 4~5원대(한 자릿수)로 줄어들며 하향 곡선이 완만해지는 추세다.
문제는 정부가 낮춘 도매가격 인하분과 주유소 실제 판매가의 큰 간극이다. 정부는 지난 13일부터 휘발유 1,724원, 경유 1,713원 등으로 공급가 상한을 설정했다. 이는 직전 평균 공급가 대비 휘발유 109원, 경유 218원이나 저렴한 수치다.
그러나 사흘간 실제 주유소 판매가 인하액은 휘발유 기준 공급가 인하분의 53%, 경유는 고작 35% 수준에 그치고 있다. 국제유가 상승 시엔 즉각 가격을 올리던 주유소들이 내릴 때는 인색하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비싸게 떼온 재고가 문제"… 주유소 형태별 온도 차와 담합 의혹
주유소 업계는 이 같은 '시차'의 불가피한 원인으로 재고 소진 문제를 꼽는다. L당 2,000원대에 사 온 기존 재고가 남아 있는 상황에서 즉각 가격을 내리면 주유소가 손실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정책에 민감한 정유사 직영 주유소나 알뜰주유소는 선제적으로 가격을 내리며 하락세를 주도하고 있지만, 별도 손실 보전 장치가 없는 일반 자영 주유소들은 마진 확보에 비상이 걸린 상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주유소협회는 정부에 현재 판매가의 1.5%인 카드 수수료를 절반으로 낮춰달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반면 정부는 일부 지역의 가격 정체 현상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부산·경북·제주 등 인근 주유소 간 가격 동조화가 뚜렷한 지역을 대상으로 담합 의심 현장 조사를 전격 가동했다. 강원 등 지역별로도 운영 방식에 따라 인하 폭이 천차만별인 상황이라 일률적인 가격 안착까지는 시일이 걸릴 전망이다.
정부, 모니터링 강화 및 유도… "다음 주부터 안정세 본격화"
정부는 기존 재고가 대부분 소진되는 다음 주부터 가격 인하 효과가 시장 전체로 확산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정유사 공급가 고시를 통해 소비자가 주유소의 유통 마진을 직접 판단할 수 있게 된 만큼, 시장의 자율적인 경쟁이 가격 하락을 압박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공급가 인하분이 소비자 판매가에 온전히 반영될 수 있도록 전국 주유소 모니터링 체계를 강화할 것"이라며 "국제 유가와 수급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최고가격제 유지 여부를 2주 단위로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폴리뉴스 차미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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