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어코리아=최인철 기자] 봄과 가을, 아침저녁 기온 차가 10도 이상 벌어지는 환절기가 되면 심혈관 질환자와 의료진 모두 긴장감이 높아진다. 이 시기에는 유독 심근경색 환자가 늘어나는데, 여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기온이 갑자기 떨어지면 우리 몸은 열을 빼앗기지 않으려 혈관을 수축시킨다. 혈관이 좁아지면 혈압이 오르고, 심장은 더 강하게 펌프질을 해야 한다. 동시에 추위는 혈액을 더 끈끈하게 만들어 혈전(혈액 덩어리)이 생기기 쉬운 환경을 만든다.
심근경색은 심장에 혈액을 공급하는 관상동맥이 갑자기 막혀 심장 근육이 괴사하는 응급 질환이다. 평소 혈관 벽에 쌓여 있던 죽상경화 플라크(기름때)가 갑작스러운 혈압 변동이나 혈관 수축으로 파열되면서 혈전이 형성되고, 혈관이 순식간에 막히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새벽이나 이른 아침, 즉 하루 중 기온이 가장 낮은 시간대에 집중된다는 점이다.
환절기 심혈관 질환 예방을 위해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수칙은 다음과 같다.
외출 전 보온에 신경 쓸 것. 특히 목·손목·발목 등 혈관이 피부 가까이 지나는 부위를 따뜻하게 감싸야 한다.
새벽 운동은 피하고, 실내에서 몸을 충분히 풀고 나갈 것. 갑작스러운 한랭 자극은 혈관 경련을 유발할 수 있다.
고혈압·당뇨·고지혈증 등 기저질환자는 약 복용을 빠뜨리지 말 것.
가슴 통증, 호흡 곤란, 식은땀, 왼팔이나 턱으로 퍼지는 통증이 느껴지면 즉시 119를 부를 것. 심근경색은 초기 수 시간이 골든타임이다.
빠른 응급 치료로 막힌 혈관을 뚫는 것이 급성기의 목표라면, 그다음 숙제는 혈관이 다시 막히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이다. 관상동맥에 스텐트를 삽입하는 중재시술(PCI)을 받은 환자들은 이후 항혈소판제 두 가지를 동시에 복용하는 '이중 항혈소판 요법(DAPT)'을 유지하게 된다.
문제는 혈액 응고를 막는 약물의 특성상 출혈 부작용이 뒤따른다는 점이다. 특히 강력한 항혈소판제인 티카그렐러(Ticagrelor)는 심근경색 급성기 치료의 표준 약제로 자리 잡았지만, 장기 복용 시 출혈 위험이 높아 환자와 의료진 모두 부담을 느껴왔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 연구팀이 의미 있는 해답을 내놓았다.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순환기내과 장기육 교수·의정부성모병원 순환기내과 부성현 교수 연구팀은 한국의 32개 센터 2,686명 환자를 대상으로, 체질량지수(BMI)가 28 미만인 비만하지 않은 급성심근경색 환자의 경우 급성기를 지난 유지요법 단계에서 항혈소판제 강도를 조절하는 것이 효과는 동일하면서 안전성은 크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 설계는 이렇다. 시술 후 초기 1개월간은 모든 환자에게 아스피린과 고강도 항혈소판제 티카그렐러를 함께 투여했다. 이후 안정화된 환자들은 아스피린을 유지한 채 무작위로 두 그룹으로 나뉘어, 한 그룹은 티카그렐러를 그대로 유지하고 다른 그룹은 상대적으로 강도가 낮은 클로피도그렐(Clopidogrel)로 바꿔 11개월간 추가 치료를 받았다.
결과는 주목할 만하다. BMI 28 미만인 비비만 환자에서 티카그렐러에서 클로피도그렐로 항혈소판제를 감량한 그룹은 고강도 약제를 유지한 그룹과 비교해 출혈 사건이 약 53% 줄었고, 심혈관 사망·심근경색·뇌졸중·출혈을 합산한 주요 복합사건도 약 46% 낮게 나타났다. 그러면서도 혈관이 다시 막히는 허혈 사건 발생률은 두 그룹 사이에 유의미한 차이가 없었다. 즉, 치료 효과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출혈 위험만 크게 줄인 셈이다.
이번 연구는 기존의 두 가지 의학적 역설을 새롭게 해석하는 단서도 제공한다.
하나는 '비만 역설(obesity paradox)'이다. 지금까지는 BMI가 높은 환자의 예후가 더 좋다는 현상 자체에 주목해왔지만, 이번 연구는 BMI가 낮은 환자에게 상대적으로 높은 출혈 취약성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또 하나는 '동아시아인 역설(East Asian paradox)'이다. 기존에는 서양인보다 동양인에서 허혈 사건은 낮고 출혈 위험은 높게 나타나는 현상을 인종 간 차이로 해석해왔는데, 이번 결과를 통해 인종보다는 BMI 차이로 인한 출혈 위험으로 해석 가능한 가설이 마련됐다.
장기육 교수는 "현재까지 학계에 보고된 대부분의 이중 항혈소판제 연구들은 체질량지수가 높은 서양인 대상 결과인 만큼, 국내 환자들을 위한 치료 전략을 구성할 때는 체질량지수를 고려해야 한다는 새로운 임상 근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부성현 교수도 "'비만이 보호적이다'라고 단순하게 해석하기보다, 시술 후 항혈소판 치료 강도를 환자의 BMI와 출혈위험에 맞춰 보다 정밀하게 조절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미국의사협회 국제학술지 JAMA 네트워크 오픈(JAMA Network Open, IF=10.5)에 게재됐다.
환절기, 몸이 느끼는 기온 변화는 혈관에 예상보다 큰 스트레스를 준다. 평소 심혈관 질환 위험 인자가 있다면 이 시기 보온과 규칙적인 약 복용에 각별히 신경 써야 한다. 이미 심근경색을 경험한 환자라면, 이번 연구처럼 자신의 체형과 출혈 위험을 고려한 맞춤형 약물 전략을 담당 의사와 상의해볼 것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