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의 꿈 ①] IPO 양극화…‘실탄’ 쫓는 플랫폼 vs ‘내실’ 다지는 금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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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장의 꿈 ①] IPO 양극화…‘실탄’ 쫓는 플랫폼 vs ‘내실’ 다지는 금융

투데이신문 2026-03-16 10:15:03 신고

기업공개(IPO)는 오랫동안 기업 성장의 대표적인 관문으로 여겨져 왔다. 상장을 통해 대규모 자금을 조달하고 기업가치를 시장에서 공인받는 것이 많은 경영자들의 목표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자본시장에서는 상장을 추진하는 기업과 상장 구조를 정리하는 기업이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 상장이 더 이상 모든 기업에 동일한 답이 아니라는 인식이 확산되는 모습이다.

상장은 외부 투자자의 자금을 받아 사업을 확장하는 과정인 만큼 기업에 새로운 책임과 부담을 동시에 요구한다. 상장 이후 기대만큼 기업가치를 유지하지 못하는 사례가 늘면서 상장의 실익을 다시 계산하려는 기업도 늘고 있다. 이에 본보는 ‘상장의 꿈’ 시리즈를 통해 기업들이 상장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전략과 그 이면에 있는 자본시장 현실을 살펴본다.

[사진=챗GPT]
[사진=챗GPT]

【투데이신문 김효인 기자】 국내 자본시장에서 상장을 둘러싼 기업들의 선택이 극명하게 갈리고 있다. 대규모 선투자가 필요한 플랫폼 기업은 IPO를 다음 단계 성장의 핵심 수단으로 삼는 반면, 안정적인 현금흐름을 확보한 금융·전통 산업에서는 오히려 상장 구조를 단순화하거나 시장을 떠나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패션 플랫폼 무신사가 기업가치 10조원을 목표로 IPO를 준비하는 가운데 메리츠금융지주는 복수상장 구조를 스스로 해소해 기업가치 개선을 이끌어냈다. 상장은 이제 성공의 상징이라기보다 산업 구조에 따라 선택되는 전략적 수단으로 인식되고 있다.

16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내 IPO 시장에서는 플랫폼·성장주 중심의 대형 상장 추진과 금융·전통 제조업 중심의 자발적 상장폐지가 동시에 나타나는 이른바 ‘IPO 양극화’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자본 조달 필요성이 높은 산업과 그렇지 않은 산업 사이에서 상장의 실익 차이가 점차 분명해지고 있다는 의미다.

플랫폼에게 IPO는 ‘다음 단계의 문’

무신사는 현재 글로벌 투자은행을 상장 주관사로 선정하고 IPO 예비심사를 준비 중이다. 장외 시장에서는 이미 6조원 이상의 기업가치를 인정받고 있으며 시장에서는 10조원 수준의 밸류에이션 가능성도 거론된다.

회사의 실적도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3분기까지 누적 매출 약 9730억원, 영업이익 700억원을 기록하며 2년 연속 연매출 1조원 돌파가 예상된다.

플랫폼 기업에게 IPO는 단순한 자금 조달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시장 점유율 확보를 위해 물류·마케팅·콘텐츠 분야에서 대규모 선투자가 필요한 구조이기 때문이다. 이때 공모 자금은 이러한 투자를 가능하게 하는 핵심 재원이 된다.

무신사가 일본과 중국 등 해외 시장에서 오프라인 매장 확대와 글로벌 플랫폼 구축을 동시에 추진하는 것도 이 같은 전략의 일환으로 풀이된다. 벤처캐피털과 재무적 투자자(FI)에게 투자금 회수(Exit) 통로를 제공해야 한다는 점 역시 상장을 서두르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자본시장 관계자는 “플랫폼 기업에게 IPO는 성장의 결과라기보다 다음 단계 성장을 위한 관문에 가깝다”며 “상장 시기를 놓치면 시장의 평가 자체가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신선식품 플랫폼과 일부 이커머스 기업들이 대형 IPO 후보로 거론되다가 시장 상황과 기업가치 논란으로 상장을 미룬 사례도 이러한 분위기를 보여준다.

금융·전통 산업, 상장보다는 ‘효율’

반면 금융권 등에서는 상장 구조를 단순화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메리츠금융지주는 2023년 자회사인 메리츠화재와 메리츠증권을 완전 자회사로 편입하며 복수상장 구조를 해소했다. 이후 메리츠금융지주 주가는 약 두 배 상승했고 자기자본이익률(ROE)도 30% 안팎을 유지하며 시장의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단일 지주 체제로 전환하면서 자회사 간 자본 배분 효율성이 높아지고 배당 재원도 확대됐다는 분석이다.

서울대 경영대학 김우진 교수는 “여러 상장사를 하나의 지주회사 체제로 통합하는 것은 복수 상장 구조를 단순화하는 방식”이라며 “주주가치 측면에서도 보다 선진적인 지배구조 모델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그동안 논란이 돼온 ‘쪼개기 상장’의 배경도 지배주주의 지분 희석을 피하려는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기존 상장사가 자금이 필요할 경우 원칙적으로는 유상증자를 통해 조달할 수 있지만 이 경우 대주주의 지분이 희석될 수 있다”며 “이러한 부담을 피하기 위해 자회사를 별도로 상장하는 방식이 활용돼 왔다”고 말했다.

전통 제조업에서도 유사한 흐름이 나타난다. 패션 브랜드 탑텐으로 알려진 신성통상은 공개매수를 통해 지분을 확보한 뒤 자발적 상장폐지를 추진하고 있다. 상장 유지에 따른 공시 의무와 외부 감사, 주주 압박 등이 장기 전략 실행에 부담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거론된다.

앞서 락앤락은 2017년 중국 투자사에 인수된 이후 공개매수를 통해 상장폐지됐고 롯데손해보험도 사모펀드 인수 이후 시장을 떠난 바 있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안정적인 현금흐름을 확보한 기업 입장에서는 추가 자본 조달 필요성이 크지 않다”며 “복잡한 상장 구조가 오히려 자본 효율성을 떨어뜨리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상장 비용 커진 시장...셈법도 달라졌다

두 흐름의 배경에는 상장 유지 비용 증가라는 공통 요인이 자리하고 있다.

정부가 추진 중인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은 상장사에 기업가치 제고 계획 공시를 요구하고 있으며 배당 정책과 지배구조 개선에 대한 요구도 강화되고 있다. 업계에서는 공시 확대와 회계 감사 강화 등으로 상장 유지 비용이 연간 수억원 수준에 이를 수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IPO 시장 환경도 과거와 달라졌다. 금리 상승과 시장 변동성 확대 이후 투자자들은 성장성보다 수익성을 더 엄격하게 따지고 있다.

자본시장 관계자는 “과거에는 성장 스토리만으로도 높은 밸류에이션을 받을 수 있었지만 지금은 실적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시장의 반응이 냉담하다”고 말했다.

결국 기업의 선택은 각 산업 구조가 만들어낸 합리적인 전략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김우진 교수는 “상장은 외부 투자자의 자금을 받아 사업을 확장하는 구조인 만큼 투자자 보호 장치와 책임도 함께 강화된다”며 “자금 조달 필요성이 상대적으로 크지 않은 기업이라면 상장을 필수적인 선택으로 보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수도권 소재 대학 경제학과 교수 또한 “IPO 시장의 흐름은 성장 자본이 얼마나 필요한 산업이 주도권을 쥐느냐에 달려 있다”며 “플랫폼 중심의 대형 IPO는 이어지겠지만 중간 규모 기업들의 상장 유인은 점차 약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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