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약품 창업주인 고(故) 임성기 회장의 부인인 송영숙 명예회장이 경영권 분쟁 수습을 위해 내건 ‘독립 경영’ 공약이 1년 만에 무색해졌다.
인사 개입 의혹과 제품 원료 변경 논란 등으로 대주주와 경영진 간에 갈등은 재현됐다. 이 과정에서 경영진 권한이 침해되며 당초 내걸었던 독립 경영 취지가 흔들렸다.
이를 보여주듯 송 회장이 말한 독립 경영을 상징하는 현 박재현 대표가 임기 만료와 함께 사퇴를 선언했다. 신임 대표가 내정되며 전문경영인 체제는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게 됐다.
5400억 상속세가 쏘아 올린 경영권 분쟁 불씨
한미약품의 반복되는 내홍 뒤에는 고 임 회장 타계 후 남겨진 5400억원 규모 상속세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 송영숙·임주현 모녀가 세금을 해결할 돌파구로 OCI그룹과 통합을 선택했지만 지난 2024년 3월 지주사 개인 최대 주주인 신동국 회장이 반대해 부결됐다. 이로 인해 오너일가는 본격적인 경영권 분쟁에 시달리게 됐다.
반전은 그해 7월에 일어났다. 신 회장이 다시 모녀 측과 손을 잡으며 구도를 뒤집었다. 당시 송 회장은 경영권 분쟁 종식을 위해 전문경영인 체제 구축을 약속했고 기존 박재현 대표 체제에 인사·법무 등 독자 권한을 부여했다. 이에 따라 한미약품은 본격적인 독립 경영 기틀을 닦는 듯 보였다.
하지만 체제 1년만인 지난해 8월 지주사인 한미사이언스가 박 대표를 포함한 임원진에 대한 기습적인 인사 발령을 단행하며 전문경영인 체제에 균열이 생겼다. 지주사가 인사권을 침해하자 박 대표가 정면으로 맞섰고 이때부터 내부 갈등이 외부에 드러나기 시작했다.
성비위·원료 변경 지시…독립 경영 흔드는 ‘대주주 입김’
이후 대주주와 경영진 간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졌다. 박 대표는 지난해 12월 발생한 팔탄 공장 임원 성비위 사건 징계 과정에서 신 회장이 부당하게 개입했다고 주장했다. 대주주가 가해자로 지목된 임원을 비호하며 인사 처분을 막았다는 게 박 대표 측 입장이다.
갈등은 제품 원료 변경 문제로도 이어졌다. 한미약품 주력 제품인 ‘로수젯’ 원료를 저가로 변경하라는 신 회장 측 요구가 있었으나 박 대표가 품질 저하 우려 등을 이유로 수용하지 않으며 양측 견해차가 드러났다.
이와 관련해 대한약사회는 지난 5일 입장문을 내고 “환자 안전보다 경영 논리를 우선시하지 말라”며 우려를 표했다. 약사회가 특정 기업 원료 문제에 공식 경고를 보낸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송 회장 공언(公言)은 왜 공언(空言)이 됐나
송 회장이 약속한 전문경영인 독립 체제는 공식 출범 1년 만에 멈춰 섰다. 당시 송 회장은 “경영은 전문경영인이 맡고 대주주는 이사회를 통해 지원하는 선진 지배구조로 가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후 대주주와 대표 간 좁혀지지 않는 견해차가 거듭되며 당시의 공언(公言)은 실효성을 잃은 공언(空言)이 되고 말았다.
결국 박재현 대표는 지난 12일 이번 임기를 끝으로 대표이사직을 내려놓겠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했다. 박 대표는 그간 독립 경영을 상징하는 인물이었으나 반복되는 갈등 속에 사퇴를 선택했다.
이와 함께 한미약품은 신임 대표이사 내정자를 발표하며 경영진 교체 절차에 들어갔다. 지속된 갈등 끝에 단행한 인적 쇄신은 전문경영인 독립 체제가 앞으로도 유지될지 여부를 결정할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이와 관련 한미약품 관계자는 송 회장의 독립 경영 약속이 유효한지에 대한 더리브스의 질의에 “지난 5일 발표된 송 회장의 입장문을 참고해달라”며 즉답을 피했다.
송 회장은 해당 입장문을 통해 “선진 전문경영인 체제는 전문경영인의 역할과 권한을 존중하고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한 원칙”이라며 “대주주는 경영에 직접 개입하기보다 견실한 방향을 제시하고 지지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송 회장은 “각사 전문경영인은 관련 제도와 내부 통제 시스템을 더욱 공정하고 투명하게 정비해달라”며 기존의 독립 경영 원칙을 재확인했다.
마선주 기자 msjx0@tleav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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