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시간'은 대한민국 산업을 만들어 온 기업들의 역사와 변곡점을 기록하는 연재다. 창업과 성장, 위기와 재편을 거치며 기업은 시대의 흐름 속에서 스스로를 바꿔왔다. 폴리뉴스는 이 연재를 통해 식품 · 유통 · 소비재 산업을 중심으로 한국 경제의 한 축을 형성해 온 기업들의 발자취와 경영의 전환점을 차례로 조명한다. 창업 배경과 산업 형성 과정, 기업이 맞닥뜨린 위기와 갈등, 지배구조 변화와 전략 전환까지 기업이 지나온 시간을 따라가며 산업의 흐름을 함께 살펴본다. (편집자주)
80년 전 황해도 옹진의 빵집 이름이 2026년 지주회사 간판이 됐다. SPC가 출범시킨 상미당홀딩스는 복잡하게 얽힌 지배구조를 정리하는 법률적 장치인 동시에, 산업재해와 불매운동으로 깊이 패인 신뢰의 상처를 창업의 기억으로 봉합하려는 서사적 선택이다. 구조와 이야기, 두 개의 숙제를 하나의 이름에 담았다. 빵 하나로 쌓아올린 80년이 지금 가장 복잡한 시험대 위에 서 있다.
밀가루가 만든 산업, 상미당에서 삼립까지
SPC의 뿌리는 해방 직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故 허창성 창업주가 1945년 10월 황해도 옹진에 '상미당'(賞美堂)을 열었다. '맛있고 좋은 것을 드리는 집'이라는 뜻의 이 빵집이 한국 제빵 산업의 기원이다. 허창성 창업주는 "수백만 개의 빵을 만들어도 고객은 하나의 빵으로 평가한다"고 했다. 이 한 문장이 훗날 상미당 정신의 뿌리가 됐다. 때마침 옹진에는 미군이 주둔해 있었다. 밀가루를 구하기 비교적 쉬웠고 창업주는 이 조건을 발판 삼아 제빵업에 뛰어들었다.
해방 이후 한국에 밀가루가 본격적으로 풀린 것은 미국의 잉여 농산물 원조 프로그램을 통해서였다. 쌀 중심의 식문화를 가진 한국에서 밀가루는 낯선 원료였지만 값이 싸고 가공이 쉬웠다. 빵 · 라면 · 과자 산업이 거의 동시에 태동한 배경이다. 삼립식품, 롯데제과, 농심의 전신들이 모두 이 시기 밀가루를 원료로 출발했다.
한국전쟁 후 서울 을지로에서 상미당을 재창업한 허창성 창업주는 1959년 삼립제과공사를 설립하며 기업화에 나섰다. 결정적 성장 기회는 1960~70년대 혼분식 장려 정책이었다. 박정희 정부가 쌀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학교 급식에 빵을 도입하고 밀가루 소비를 독려하면서 삼립식품의 시장이 커졌다.
1963년 일본에서 자동화 설비를 도입해 국내 최초 식빵 자동화와 비닐 포장 크림빵을 선보였고 1971년 삼립호빵은 국민 간식의 대명사가 됐다. 정부 정책과 기업 성장이 맞물린 전형적인 시대의 합작품이었다. 그러나 1977년 장남 허영선에게 경영권이 넘어간 삼립식품은 리조트 등 비핵심 사업에 투자하다 1997년 IMF 외환위기를 넘기지 못하고 부도를 냈다.
파리바게뜨와 중산층, 한국인의 빵 문화를 바꾸다
차남 허영인은 부친으로부터 성남의 작은 공장 하나뿐인 샤니를 물려받았다. 삼립식품 매출의 10분의 1도 안 되는 규모였다. 그러나 그는 1983년 샤니 대표이사로 취임하며 1980년대가 열어주는 새로운 시장을 읽었다. 미국 AIB에서 제빵 기술을 익힌 뒤 1986년 서울 반포동에 프랑스풍 고급 베이커리 파리크라상 1호점을 열었다. 1985년 비알코리아를 설립해 배스킨라빈스를 들여왔고 1988년 대중 프랜차이즈 파리바게뜨를 론칭했다.
파리바게뜨의 핵심은 '베이크오프' 시스템이었다. 본사에서 냉동 생지를 공급하면 가맹점이 직접 구워 파는 방식으로 제빵 기술 없이도 갓 구운 빵을 팔 수 있었다. 프랜차이즈 창업 붐이 일던 1980~90년대 시대 흐름과 맞물리며 가맹점이 전국으로 퍼졌다. 1993년 던킨도너츠를 들여왔고 2004년 파리바게뜨는 1000호점을 돌파했다. 골목마다 파리바게뜨가 들어서면서 한국인의 빵 소비 문화 자체가 바뀌었다.
허영인 회장은 2002년 부도 상태의 삼립식품을 인수하고 2004년 SPC그룹을 출범시켰다. 창업주의 계보를 차남이 완성했다. 같은 해 중국 상하이에 파리바게뜨 해외 1호점을 열었고 2005년 미국, 2014년 프랑스 파리까지 진출했다. 현재 11개국 660여 개 해외 매장을 운영하며 중동과 중남미 진출도 추진 중이다.
반복된 죽음, 무너진 신뢰
성장의 이면에는 씻기 어려운 상처가 쌓였다. 2022년 10월 평택 SPL 제빵공장에서 20대 노동자가 소스 배합기에 끼어 숨졌다. 2023년 8월에는 성남 샤니 공장에서, 2025년 5월에는 시흥 SPC삼립 시화공장에서 잇달아 노동자가 기계에 끼여 사망했다. 4년 사이 세 번, 한결같이 끼임 사고였다.
2022년 허영인 회장은 대국민 사과와 함께 3년간 1000억원 안전 투자를 선언했다. 그러나 835억원이 집행되는 사이 두 번의 사망사고가 더 발생했다. 경실련은 "재발 방지책이 공허한 선언에 불과했다"고 비판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직접 시화공장을 방문해 질책할 만큼 사회적 파장이 컸다.
불매운동이 반복됐지만 실질적 타격으로 이어지지 못한 데는 구조적 이유가 있다. 개인 제과점을 제외한 국내 빵류 제조업 시장에서 SPC 계열사 5곳의 점유율은 80%를 넘는다는 분석이 나온다. 편의점 양산빵 상당수도 삼립 계열이 공급한다. 파리바게뜨 국내 매장 3400여 개로 유일한 맞수 뚜레쥬르(CJ푸드빌) 1300여 개를 크게 앞선다. 소비자가 SPC 제품을 외면하려 해도 대체재가 마땅치 않은 구조다.
일각에서는 반복되는 산재 사고의 배경에 독점 구조가 만들어낸 안전 불감증이 자리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시장 지배력이 강할수록 소비자의 이탈 압력이 약해지고 현장의 위험 신호는 쉽게 묻힐 수 있다는 것이다. 허영인 회장은 부당노동행위 혐의 재판도 별도로 진행 중이다.
지주사 전환, 신뢰 회복의 조건
2026년 1월 13일 SPC그룹은 지주회사 '상미당홀딩스(SMDH)'를 출범시켰다. 파리크라상을 지주회사 상미당홀딩스와 사업회사 파리크라상으로 물적 분할한 데 따른 것이다. 상미당홀딩스는 "준법 · 안전 · 혁신 등의 핵심 가치가 각 계열사에 일관되게 구현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상미당홀딩스'라는 간판은 회계 · 법률 구조를 정비하는 이름인 동시에, 창업 정신 "빵을 나누면 끼니가 되고, 기술을 나누면 꿈이 된다"는 상미당의 언어를 80년 만에 그룹의 중심 가치로 다시 호출하는 장치다.
말에 그치지 않으려는 실천도 병행되고 있다. SPC그룹은 2025년 12월 충청북도 음성군과 안전 스마트 신공장 건립 MOU를 체결했다. 3000억원을 투자해 AI · 자동화 로봇 · IoT 센서 등 첨단 기술을 적용한 그룹 통합생산센터를 2026년 착공, 2028년 준공을 목표로 짓겠다는 계획이다.
SPC그룹의 핵심 계열사 파리크라상은 2023년 매출 5조5551억원, 영업이익 687억원을 기록했다. SPC삼립은 2024년 매출 3조4279억원, 영업이익 992억원으로 역대 최대 영업이익을 달성했다. 그러나 2025년 3분기 누적 기준 SPC삼립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0.9% 감소하고 영업이익은 48.6% 급감했다. 반복된 산재와 불매운동의 여파가 수치로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파리바게뜨는 2030년까지 미국 1000개 · 캐나다 100개 이상 매장 개설과 글로벌 매출 10조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신뢰 회복의 시험대에, 해외에서는 상미당의 헤리티지 서사로 프리미엄을 노리는 이중 전략. 1945년 옹진의 빵집에서 시작된 80년의 여정이 지금 가장 험난한 고비를 지나고 있다.
※ 이 기사는 연재 '기업의 시간' 3편이다. 다음 편에서는 농심의 시간을 살펴본다.
[폴리뉴스 조자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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