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국, 수출 제한 움직임 잇달아
15일 업계 및 관계부처에 따르면 산업통상부는 중동 사태에 따른 나프타 수급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이 가운데 국내 생산 나프타 수출을 제한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당장 부족한 나프타 수요를 채우기 위해 국내 생산 물량을 전량 내수로 전환하겠다는 것이다. 내수 전환 과정에서 기업 부담을 줄이기 위한 금융 지원 등의 방안도 포함될 전망이다.
나프타는 원유를 증류해서 만드는 혼합물로, 석화업체들은 이를 활용해 에틸렌 등 기초유분을 생산한다. 정유사가 원유를 정제하면 약 10%가량의 나프타가 생산된다. 정유사들은 이 가운데 국내 석유화학 업계가 주로 사용하는 경질 나프타는 국내에 공급하고, 석화업계 수요가 상대적으로 적은 중질 나프타는 해외로 수출해 왔다. 중질 나프타는 경질에 비해 나프텐(naphthene)과 방향족(aromatic) 탄화수소 함량이 높아 국내 석유화학 공정에서는 활용도가 낮기 때문이다.
다만 최근 중동사태로 나프타 수급이 급격히 악화되면서 생산 효율이 다소 떨어지더라도 중질 나프타라도 확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석화 업계 관계자는 “일단 나프타를 확보하는 게 시급한 상황”이라며 “일부 공장에서는 중질 나프타도 사용이 가능한지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원유 수급 불안이 커지면서 석유 제품 수출 제한 조치가 이어지고 있다. 중국은 정유사들에 신규 석유제품 수출 계약을 중단하고 이미 잡힌 물량도 취소를 추진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로 저장석유화공과 푸젠정유화학 등 일부 정유사들은 설비 가동을 줄이거나 중단하면서 아시아 석유제품 공급 축소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인도 역시 석유제품 수출 제한 및 러시아산 원유 구매 확대 등을 검토 중이다. 한국도 이미 일부 석유제품에 대한 수출을 제한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 13일부터 시행한 석유최고가격제와 함께 휘발유, 경유, 등유 등 일부 제품의 해외 수출 물량을 지난해보다 늘릴 수 없도록 제한했다.
다만 나프타는 수출 물량 자체가 많지 않은 만큼 수출 제한은 임시방편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해 국내 정유업계가 생산한 나프타는 3260만톤(t)인데, 이 가운데 수출 물량은 약 390만t에 불과했다. 수출 제한 조치를 취하더라도 나프타 수급난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해법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또 정유사가 이미 체결한 수출 계약 물량도 걸림돌이다. 현재 국내 NCC(나프타분해설비) 업체들은 연달아 ‘불가항력 선언’을 하고 있는 상태다. 여천NCC가 지난 4일 주요 고객사에 공급 이행 지연·조정 가능성을 통보했으며, 뒤이어 롯데케미칼, LG화학, 한화솔루션 등 주요 NCC 업체들도 불가항력 가능성을 고객사에 고지했다. 불가항력이란 전쟁 같은 외부 요인으로 제품 공급 일정 이행이 어려울 때 배상 책임을 면제받기 위한 선제 조치를 뜻한다.
나프타 수입처 다변화 움직임도 있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상황이다. 중국과 인도 등 아시아 주요 국가에서도 나프타 확보 경쟁이 이어지면서 시장에 풀린 물량 자체가 많지 않고, 가격도 크게 뛰었기 때문이다. 산업부의 원자재가격정보에 따르면 지난 9일 기준 국제 나프타가격은 1t 당 1009달러로 전날 대비 무려 27.9%나 올랐다. 일주일 전과 비교하면 67.9% 급등한 수치다. 이에 일각에서는 국제 제재로 거래가 중단된 러시아산 나프타 도입 필요성까지 거론되고 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지난 2020년 전체 나프타 수입 물량 중 러시아산 비중이 26%에 달할 정도로 러시아 의존도가 높았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제재 강화로 한국의 러시아산 납사 수입 비중은 현재 사실상 전무한 수준이다. 러시아산 나프타는 상대적으로 가격 경쟁력이 높아 국내 석화업체들이 선호해왔다.
◇특정 지역 의존도 낮추기 전략 필요
반복되는 지정학적 위기에 중동산 비중을 낮추기 위한 설비 투자 등 근본적 대책도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특정 지역의 의존도가 높으면 이런 위기는 반복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유승훈 서울과기대 에너지정책학과 교수는 “지금은 원유 수입선을 다변화해도, 국내 생산 시설이 대부분 중동산 중질유에 최적화 돼 있어 생산할 공장이 없다”며 “정유사들이 다른 설비를 확충할 수 있도록 정부가 인센티브를 주는 등 일정 수준의 유도 전략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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