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선 이어폰은 헤드폰 잭과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질 운명이었다. 하지만 더 나은 음질과 단순했던 시절의 기술을 갈망하는 소비자들이 늘어나면서 유선 이어폰이 다시 돌아오고 있다.
2016년 애플이 아이폰에서 헤드폰 잭을 없앴을 때, 나는 일종의 망명길에 오른 기분이었다. 거대 기업이 나의 청취 습관을 좌지우지하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그래서 안드로이드 기반 휴대전화를 구입해 필사적으로 유선 이어폰을 고수했다.
하지만 내 휴대전화가 수명을 다한 바로 그 달에 마지막까지 버티던 구글마저 최신 휴대전화에서 헤드폰 잭을 없애겠다고 발표했다. 마치 우주가 나에게 패배를 선언한 것처럼 느껴졌다. 결국 나는 다시 아이폰으로 돌아왔고, 유선 이어폰을 서랍 속에 던져 넣은 채 블루투스 군중의 일원이 되었다.
그런데 어쩌면 내가 너무 쉽게 포기한 것 같다. '유선 이어폰이 블루투스보다 낫다'는 다소 논쟁적인 진실을 기반으로 최근 일고 있는 하나의 움직임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 몇 달 사이 유선 제품의 판매량은 급증했다. 유선 이어폰을 선택하면 같은 가격대에서 더 뛰어난 음질을 경험할 수 있는 경우가 흔한데, 이를 알고 있는 것은 단순히 오디오 애호가들만이 아니다.
유선 이어폰은 이제 하나의 문화적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일각에서는 이를 최근 광범위하게 일어나고 있는 '안티 테크(Anti-tech)' 흐름과 연관 짓기도 한다. 실용적인 이유든, 정치적 신념이든, 혹은 미학적 취향 때문이든 한 가지 사실만은 분명하다. 유선 이어폰의 시대가 다시 돌아왔다는 점이다.
"이제 완전히 마음을 굳혔습니다."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에서 활동하는 사회복지사이자 유선 이어폰 애호가인 에린 그루신의 말이다. 그는 몇 달 전 약혼자의 구식 유선 이어폰을 빌려 쓴 이후 단 한 번도 블루투스 장비를 돌아보지 않았다.
"특유의 편안함이 있어요. 내가 지금 무언가를 듣고 있다는 사실을 세상에 분명하게 보여준다는 점도 마음에 들고요."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그루신만이 아니다. 시장 분석 기업 서카나에 따르면 5년 연속 판매 감소세를 보였던 유선 이어폰 구매는 2025년 하반기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2026년 첫 6주 동안에는 매출이 20% 증가하기도 했다.
그루신은 "기술이 너무 발전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거의 기술에 등을 돌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요즘에는 '이런 느낌이 마음에 들지 않아'라고 말하는 일종의 집단적 사고방식이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모두가 편안함을 느꼈던 마지막 시점으로 되돌아가고 있는 거죠."
'점점 계급 문제가 되어가고 있다'
헤드폰 및 이어폰 리뷰 전문 사이트 사운드가이즈(SoundGuys)의 수석 편집자 크리스 토마스는 유선 이어폰의 가장 큰 강점으로 음질을 꼽는다. 그는 "이것은 내가 지난 수년 동안 줄기차게 강조해 온 사실"이라고 말했다.
토마스에 따르면 무선 이어폰 기술은 비약적으로 발전해 왔다. 하지만 최고의 성능을 자랑하는 제품은 대개 오디오 애호가들을 위해 제작된 틈새 브랜드에서 나오곤 한다.
그는 전자제품 매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주류 제품의 경우 여전히 최고의 유선 제품을 선택하는 것이 가격 대비 더 나은 음질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게다가 아무리 훌륭한 블루투스 헤드폰이라 할지라도 연결 상태가 불안정하거나 기기와의 호환성 문제로 인해 최상의 오디오 성능을 내지 못할 수도 있다.
"유선 제품은 그저 꽂기만 하면 바로 작동합니다."
하지만 단순히 음질만으로는 이 추세를 설명할 수 없다. 어찌 된 영문인지 블루투스는 이제 지독할 정도로 매력이 없는 물건이 되어버린 듯하기 때문이다. 배우 조이 크래비츠의 사례를 보자.
"블루투스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크래비츠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는 비단 이어폰뿐 아니라 블루투스 연결 방식 전체를 두고 한 말이다.
"블루투스는 소중한 순간들을 망치고 있습니다. 데이트를 하고 있다고 상상해 보세요. 한창 분위기를 잡으려는데 연결이 끊어져 다시 설정해야 한다면 어떨까요? 다른 때도 아니고 데이트 중에 말이에요."
실제로 유선 이어폰은 이제 일부 계층에서 하나의 패션 아이템이 되었다. 인스타그램에는 이를 주제로 한 '와이어드 잇 걸즈(Wired It Girls)'라는 인기 계정이 있을 정도다. 이 계정은 귀 아래로 케이블을 늘어뜨린 채 세련되면서도 무심한 분위기를 풍기는 여성들의 모습을 전문적으로 다룬다. 일반인부터 아리아나 그란데, 찰리 XCX 같은 유명 연예인에 이르기까지 그 대상도 다양하다.
유선 이어폰을 착용하는 모습은 이제 부유층과 유명 인사들 사이에서 흔한 광경이 되었다. 일각에서는 이 꼬인 이어폰 줄을 하나의 문화적 상징으로 보기도 한다.
한 소셜미디어 사용자는 배우 로버트 패틴슨과 릴리 로즈 뎁이 유선 이어버드를 착용한 사진을 올린 트윗을 공유해 화제가 됐다. 그는 "이 현상이 점점 계급 문제가 되어가고 있다"고 썼다.
"하루 24시간 내내 무선 이어폰을 끼고 있다는 건 당신 소유의 땅(부동산)이 하나도 없다는 뜻이나 다름없어요."
물론 선의 제약이 없는 무선 이어폰에는 나름의 해방감이 있다. 하지만 배터리는 항상 절실한 순간에 방전되기 마련이다. 게다가 조그마한 블루투스 이어폰은 잃어버리기 쉽고, 기기와의 연결이 끊어지는 경우도 있다.
로스앤젤레스 영화계에서 대본 편집자로 일하는 에일린 돌로보프는 "사람들은 더 쉬워졌다고 말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결코 더 쉬워진 적이 없다"고 말했다.
"블루투스를 사용하면 항상 한 단계가 더 추가되니까요."
우리가 또 다른 디지털 시대로 접어드는 지금 유선 이어폰 역시 최근 몇 년간 다시 부활의 조짐을 보이는 구식 기술 가운데 하나로 떠올랐다. 실제로 최근에는 젊은 층부터 노년층까지 DVD, 카세트, 낡은 브라운관 TV, 심지어 타자기 같은 복고풍 제품을 선택하고 있다. 나는 최근 한 콘서트에서 한 남성 관객이 휴대전화가 아닌 1970년대식 16mm 필름 카메라로 공연을 촬영하는 모습을 목격하기도 했다.
그루신은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모두 집단적으로 어떤 전환점을 맞은 것 같다"며 "AI의 존재가 사람들을 더 예민하게 만드는 듯하다"고 말했다.
"어떤 면에서는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저는 어떤 기술이 불편하다고 느껴지면 그것과 다른 기술에 관심이 갑니다. 어쩌면 유선 이어폰은 우리가 아날로그에 가장 가깝게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요."
동글 어댑터 문제
만약 당신이 유선 이어폰을 선택했다면 이제 이를 기기에 어떻게 연결할지가 숙제로 남는다.
최근에는 USB-C나 라이트닝 단자가 아예 내장된 유선 제품을 구입할 수도 있다. 혹은 충전 포트에 연결하는 어댑터를 이용해 전통적인 3.5mm 잭 헤드폰을 사용할 수도 있는데 이를 흔히 '동글(Dongle)'이라 부른다. 이 명칭부터가 지나치게 품위 없게 느껴져, 사실 나는 수년 동안 이 단어 사용을 거부해 왔다.
애플은 2016년 아이폰7 출시와 함께 휴대전화에서 헤드폰 잭을 제거했다. 당시 많은 이들은 이를 유선으로 음악을 듣는 시대의 종말로 여겼다.
그런데 애플조차 유선 이어폰을 완전히 포기하지는 않았다. 휴대전화에서 헤드폰 잭을 없앤 장본인인 팀 쿡 애플 CEO는 몇 년 전 내 BBC 동료 조이 클라인먼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여전히 유선 이어폰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여전히 그걸 구매하니까요."
나는 얼마 전 퇴근길에 애플 스토어에 들러 내 기기에 바로 꽂을 수 있는 USB 포트용 저가 이어폰을 하나 구입했다. 매장 직원은 내게 유선 이어폰 판매량이 역대 최고라고 말했다. 나는 며칠간 그 이어폰을 만족스럽게 사용했다. 기기와 물리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은 내가 음악 청취라는 행위에 좀 더 집중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었다. 귀에 꽂았을 때의 느낌도 묵직한 블루투스 이어폰보다 훨씬 편안했다.
하지만 우리의 인연은 짧았다. 나는 블루투스 이어폰을 사용할 때는 잃어버리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왔다. 또한 에어팟 케이스는 부피가 꽤 커 항상 내 곁에 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깃털처럼 가벼운 유선 이어폰은 달랐다. 동네 어딘가에서 내 주머니 밖으로 슬그머니 빠져버린 것이다. 부디 나보다 더 애정 어린 주인을 만났기를 바랄 뿐이다.
마음을 다잡은 나는 더 고가의 제품을 사면 좀 더 주의를 기울이게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뉴욕의 좁은 상가 한구석에 자리 잡은 헤드폰 전문점 오디오46을 찾았다. 회사 웹사이트에서 헤드폰 리뷰를 담당하는 델라니 체르니코프스키가 카운터에서 나를 맞이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유행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유선 제품이 더 나은 것 같아서 한번 써보고 싶다'며 찾아오고 있어요."
"하지만 그들도 가끔은 블루투스의 편리함을 잃게 될까 봐 걱정합니다. 저는 그들에게 블루투스가 매우 유용할 수 있으며 반드시 포기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체르니코프스키는 내게 매장에 진열된 고급 블루투스 헤드폰 몇 가지를 시연해 볼 기회를 주었다. 그 제품들은 뛰어난 음질만큼이나 놀라운 가격표를 달고 있었다. 가장 열성적인 오디오 애호가조차 군침을 흘릴 만했다. 그는 하지만 솔직히 유선 제품 중에 더 뛰어난 제품이 많고 선택의 폭도 훨씬 넓다고 말했다.
"유선 제품은 내부에 블루투스 기술을 탑재해야 한다는 부담이 없기 때문에 그만큼 더 나은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나는 원래 저렴한 제품을 고를 계획이었다. 하지만 체르니코프스키의 설득에 마음이 흔들린 지 단 1분 만에 두껍고 매혹적인 직조 케이블이 달린 미화 130달러 상당의 중국 전문 브랜드 이어폰을 시험 청취해 봤다. 그는 나에게 "타협하지 말라"고 했다. 그 제품은 가격 대비 최상의 소리를 들려주었지만 BBC는 공정성 원칙에 따라 특정 제품을 소개하지 않는다. 그러니 판단은 여러분의 몫이다.
나는 신용카드를 건네고 이어폰과 USB 동글 어댑터까지 함께 구매했다. 그리고 매장 밖으로 나온 뒤 휴대전화에 이어폰을 꽂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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