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는 처참했지만, 소득도 있었던 대회였다. 세대교체 후 처음으로 최정예로 나선 대회. 젊은 선수들은 '도쿄의 기적'과 전세기, 빅리거와의 맞대결이라는 값진 경험을 쌓았다.
한국 야구 대표팀의 2026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여정이 도미니카공화국이라는 거대한 벽에 막혀 아쉽게 막을 내렸다. 결과는 0-10이라는 뼈아픈 완패. 세계 야구의 높은 벽을 절감하며 고개를 숙여야 했지만, 짐을 싸는 대표팀의 뒷모습에 비난보다는 격려의 박수가 쏟아지는 이유가 있다. 이번 대회가 한국 야구 '세대교체'의 진정한 첫걸음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은 지난 2023년 WBC 이후 본격적인 세대교체에 나섰다. 이후 국제대회에 자체적으로 나이 제한을 두고 출전했다. 젊은 선수들에게 국제대회 경험을 쌓을 기회를 줬다. 그 결과 원태인(삼성 라이온즈)과 문동주(한화 이글스) 김도영(KIA 타이거즈) 김주원, 김형준(이상 NC 다이노스) 박영현(KT 위즈) 조병현(SSG 랜더스) 등 어린 선수들이 국제대회에서 두각을 드러내며 크게 성장했다.
그렇게 세대교체를 마치고 나선 첫 대회가 이번 WBC였다. 류현진(한화) 노경은(SSG) 등 40대 전후의 베테랑과 고영표(KT) 박해민(LG 트윈스) 구자욱(삼성) 등 중참 선수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이 20대 젊은 선수들이었다. 원태인, 문동주 등 KBO리그 에이스로 성장한 선수들이 부상으로 참가하지 못한 것은 아쉽지만, 어린 선수들이 각 포지션에 주전으로 출전하며 세계 각국의 선수들을 상대했다.
패배를 떠나 이번 대회는 어린 선수들에게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값진 경험을 남겼다. 벼랑 끝에서 극적인 승리를 거두며 전 세계 야구팬들을 열광시켰던 '도쿄의 기적'은 선수들의 가슴속에 국가대표로서의 자긍심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깊게 새겼다. 1라운드를 통과한 뒤 대회 사무국이 제공한 전세기에 몸을 싣고 결전지로 이동했던 순간, 그리고 세계 최고 무대인 메이저리그(MLB)를 호령하는 슈퍼스타들과 직접 그라운드에서 부딪혀본 경험은 그 어떤 훈련보다 강력한 동기부여가 됐다.
화면으로만 보던 괴물 같은 투수들의 공을 쳐보고, 메이저리그 타자들을 상대로 자신의 공을 던져보며 우리 선수들은 스스로 무엇이 부족하고 무엇을 더 채워야 하는지 뼈저리게 느꼈을 터. 안현민(KT)은 "마이애미에 와서 많은 생각이 바뀌는 계기가 됐다"라며 "오늘(도미니카공화국) 경기에서 좋은 타구를 날리면서 그 생각이 더더욱 확고해졌다. 좋은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 같다"라고 전했다.
이번 대회를 중계하며 후배들의 투혼을 지켜본 오승환 MBC 해설위원의 조언도 궤를 같이한다. 오 위원은 도미니카공화국전 직후 "(어린) 선수들이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됐을 것이다"라고 전했다. 그러면서도 "도쿄 라운드부터 후배들이 정말 잘 싸워줘서 이번 대회까지는 '졌지만 잘 싸웠다(졌잘싸)'는 말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다음 대회부터는 졌잘싸는 없다. 싸우면 이겨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오늘 결과는 받아들이고 인정할 건 인정하되, 세계적인 선수들조차도 그라운드 위에서 열심히 뛰는 모습을 본받았으면 좋겠다"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도미니카공화국전의 0-10 스코어보드는 분명 차갑고 쓰라린 현실이다. 하지만 '우물 안 개구리'를 벗어나 세계 야구의 중심에서 부딪히고 깨진 이 경험은 한국 야구의 미래를 밝힐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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