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이준섭 기자] 한국 대중음악 역사에서 팬덤은 산업의 성장과 변화를 이끌어 온 중요한 축이다. 오늘날 K-팝은 세계 각국에서 거대한 팬덤을 형성하며 글로벌 문화로 자리 잡았지만, 그 출발점에는 1990년대 중반 등장한 아이돌 문화와 함께 형성된 독특한 응원 방식이 존재했다. 당시 공연장과 방송국을 가득 채우던 색색의 풍선은 팬덤의 존재를 가장 강렬하게 드러내던 상징이었다. 지금의 응원봉과 디지털 팬덤 활동으로 이어지는 흐름 역시 그 시절의 문화에서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1990년대 중후반 한국 대중음악 시장은 아이돌 그룹의 등장과 함께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음악을 듣는 행위에 머물던 대중문화 소비가 점차 스타를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응원하는 참여형 문화로 확장됐다. 팬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를 위해 시간과 열정을 투자했고, 그 과정에서 집단적인 팬 문화가 자연스럽게 형성됐다. 공연장과 방송국 주변에 모인 팬들의 모습은 그 자체로 하나의 문화 현상으로 받아들여졌다.
이 시기 팬들이 만들어낸 대표적인 응원 방식이 바로 풍선 문화였다. 팬들은 자신이 응원하는 가수를 상징하는 색의 풍선을 들고 콘서트와 공개방송 현장을 찾았다. 공연장이 특정 색으로 물드는 장면은 팬덤의 규모와 결속력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으로 자리 잡았다. 풍선은 공연장에서 가장 눈에 띄는 응원 도구였고, 멀리서도 어느 그룹의 팬덤이 자리하고 있는지 단번에 확인할 수 있는 표시였다.
대표적인 사례는 H.O.T.의 흰색 풍선이다. 콘서트장이나 음악 방송 공개 녹화 현장에서 수천 개의 흰 풍선이 동시에 흔들리는 장면은 당시 아이돌 문화의 상징적인 풍경으로 기억된다. 팬들은 같은 색의 풍선을 들고 가수의 이름을 외치며 응원했고, 공연장이 거대한 파도처럼 움직이는 장관을 만들어냈다.
이와 맞서는 색도 존재했다. 같은 시기 활동하며 뜨거운 경쟁 구도를 형성했던 젝스키스의 팬들은 노란 풍선을 들고 공연장과 방송국을 찾았다. 방송 녹화 현장에서 흰색과 노란색 풍선이 서로 다른 구역을 채우는 모습은 당시 아이돌 팬덤 경쟁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장면으로 남았다.
풍선 색은 팬들에게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녔다. 특정 색은 곧 자신이 지지하는 가수를 상징했고, 팬들은 그 색을 통해 자신들의 소속감을 확인했다. 같은 색의 풍선을 든 팬들은 공연장 안에서 자연스럽게 하나의 공동체처럼 움직였고, 서로를 알아보며 응원 열기를 공유했다.
특히 음악 프로그램 공개방송 현장은 팬덤 문화가 가장 뚜렷하게 드러나는 공간이었다. 팬들은 방송국 앞에서 오랜 시간 줄을 서며 입장을 기다렸고, 녹화가 시작되면 자신이 응원하는 가수의 이름을 외치며 풍선을 흔들었다. 무대 위에서 노래하는 스타를 향해 팬들이 보내는 응원은 공연장을 가득 채운 색의 물결과 함께 강렬한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공연장 내부에서는 색으로 구분되는 응원 구역이 형성되기도 했다. 어느 쪽 구역에 더 많은 팬이 모였는지가 자연스럽게 비교되면서 팬들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경쟁심도 생겨났다. 자신이 응원하는 가수를 위해 더 크게 외치고 더 많은 풍선을 흔드는 모습은 팬덤 문화의 열기를 그대로 보여줬다.
풍선 색을 둘러싼 신경전 역시 당시 팬덤 문화의 특징 가운데 하나였다. 특정 색이 이미 다른 그룹의 상징으로 자리 잡은 경우 새로운 그룹이 같은 색을 사용할 때 팬들 사이에서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팬들은 자신들이 지지하는 가수의 상징을 지키기 위해 목소리를 냈고, 이러한 과정 속에서 팬덤 내부의 규칙도 형성됐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팬덤은 하나의 문화 공동체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팬들은 공연과 방송뿐 아니라 다양한 활동을 통해 스타를 응원했다. 잡지 기사와 방송 정보를 서로 공유하고, 가수가 출연하는 프로그램에 맞춰 단체로 움직이는 모습도 흔히 볼 수 있었다.
연예 기획사 역시 이런 팬 문화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공식 팬클럽을 조직하고 응원 색을 지정하면서 팬덤의 결속을 강화했다. 콘서트에서는 같은 색의 풍선과 응원 도구가 공연장을 가득 채우며 장관을 연출했고, 이는 팬들과 스타가 함께 만들어가는 공연 문화로 자리 잡았다.
걸그룹 팬덤에서도 이러한 문화는 이어졌다. 예를 들어 S.E.S.의 팬들 역시 공연장에서 응원 색과 구호를 통해 팬덤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아이돌 그룹이 늘어날수록 다양한 색과 응원 방식이 등장했고, 공연장은 마치 거대한 색의 물결처럼 변했다.
풍선 응원 문화는 팬덤의 규모를 보여주는 지표이기도 했다. 공연장에서 특정 색의 풍선이 얼마나 많이 보이느냐에 따라 해당 그룹의 인기와 팬덤의 결속력이 드러났다. 팬들은 이러한 행위를 큰 자부심으로 받아들여졌고, 자신들이 만든 응원 장면이 언론과 방송을 통해 소개되기도 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팬덤의 응원 방식은 점차 변화하기 시작했다. 풍선 대신 공식 응원봉과 LED 응원 도구가 등장하면서 공연장의 풍경도 새로운 모습으로 바뀌었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응원 방식 역시 더 화려하고 다양한 형태로 발전했다.
오늘날 K-팝 팬덤은 온라인 플랫폼과 SNS를 중심으로 활동 범위를 전 세계로 넓혔다. 팬들은 스트리밍과 온라인 투표, 글로벌 커뮤니티 활동 등을 통해 가수를 응원하며 새로운 팬덤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과거 공연장 중심이었던 팬덤 활동은 이제 디지털 공간에서도 활발하게 이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풍선으로 상징되던 1990년대 팬덤 문화는 한국 대중음악 역사에서 중요한 장면으로 남아 있다. 공연장을 가득 채운 색색의 풍선은 그 시절 팬들이 만들어낸 독특한 문화였고, 많은 이들에게 강렬한 기억으로 남았다.
서로 다른 색의 풍선을 들고 같은 무대를 바라보며 응원하던 장면은 K-팝 산업의 시작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순간이었다. 지금의 글로벌 팬덤 문화 역시 그 시절 공연장을 물들였던 팬들의 열정 위에서 성장해 왔다.
뉴스컬처 이준섭 rhees@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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